반규제법으로 규제, 공전의 허탈한 이유
반규제법으로 규제, 공전의 허탈한 이유
  • 김다린 기자
  • 호수 338
  • 승인 2019.06.13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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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발전법 뭐가 문제인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들어 39건이나 발의됐다. 하지만 입법화된 건 1건뿐이다. 나머지 38건은 ‘실효성이 없다’ ‘유통산업 발전을 저해한다’ 등의 이유로 소관위에 묶여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도 이 법은 갑론을박의 대상이었다. 태생부터 규제가 아닌 ‘산업 진흥’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반규제법으로 규제를 하고 있으니, 논의가 공전空轉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유통발전법의 태생적 한계를 꼬집어봤다.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유통산업발전법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이 법은 ‘월 2회 의무휴업’ ‘전통시장 인근 출점 제한’ ‘상권영향평가서 제출’ 등으로 ‘유통시장 양극화 완화’를 꾀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형 유통기업-소상공인 모두에게 질타를 받는 실정이다.

대기업은 이 법을 유통악법으로 규정했다. “시장 경제에 역행한다” “소비자 편익이 줄어든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매출이 동반감소했다” “오히려 유통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등의 이유에서다. 유통시장 경쟁 구도가 점차 온라인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프라인 유통채널 규제 자체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거세다.

골목상권의 입장은 정반대다. 현행법의 실효성이 적으니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형마트보다 규모가 크고 여러 업종이 입점한 복합쇼핑몰이 별다른 규제를 받고 있지 않은 건 대표적인 사각지대다. 규제 범위를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1㎞ 내에 대형마트 출점을 막은 것도 애매한 규정이다. 전통시장과 거리가 떨어진 골목상권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통 대기업의 필수 채널이 된 편의점이 골목 곳곳에서 몸집을 불리는 데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대규모점포 개설시 제출하는 상권영향평가서의 실효성 논란도 적지 않다. 이미 건축물을 다 짓고 영업을 앞둔 상황에서 사업을 되돌리거나 축소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권영향평가서의 작성 주체가 점포개설자인 대형 유통업체란 점도 문제다.

결국 법이 촘촘하지 않은 탓에 대기업의 유통시장 지배력만 강해졌다는 거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개, 백화점ㆍ대형마트 거래 중소기업 501개를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규제 강화 방향으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은 55.6%, 반대가 17.0%로 조사됐다. 그만큼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단 목소리가 높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20대 국회는 총 39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딱 1건뿐이다. 이마저도 유통 대기업이나 골목상권을 겨냥한 법은 아니다. 대규모점포 개설자의 선정 기준과 상가관리비 운영 관련 내용이개정됐다.

찬반 논란 거센 유통법 개정안

수많은 개정안 중 정부와 여당이 전략적으로 밀고 있는 안건이 있다. 지난해 1월 발의된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의 법안은 민주당 ‘10대 우선 입법과제’에 포함됐다. 여기엔 ‘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을 제한할 수 있는 상업보호구역 전통시장에서 상점가로 확대’ ‘상업진흥구역 신설’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상권영향평가서 대상업종 확대’ 등이 담겼다.

당초 업계에선 이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시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야당과 업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런 모습은 지난 19대 국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총 65건이 발의됐지만, 입법에 성공한 건 6건뿐이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이 미진한 이유를 법의 태생적 한계에서 찾는다. 최유경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통산업발전법의 기본 골격은 촉진법, 진흥법의 체계”라면서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의 설명처럼 이 법은 규제와 어울리는 법이 아니다. 1996년 제정 당시 목적은 ‘유통산업의 진흥’이었다. ‘대규모점포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 ‘직영비율, 분양제한, 시설설치 의무 폐지’ 등 각종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게 이 법의 역할이었다.

그러다 2012년 1월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SSM)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을 개정안에 포함하면서 규제법으로 전환됐다. 이후 여러 차례 규제 조항을 만들면서 개정된 게 지금의 유통산업발전법이다. 한쪽에선 규제를, 다른 한쪽에선 진흥을 하겠다는 혼란스러운 형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유통시장의 양극화 해소엔 역부족일 공산이 크다”면서 “복합쇼핑몰을 뛰어넘는 새로운 유통채널이 등장하면 또다시 법을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법이 느긋하게 잠든 사이 지역 곳곳에선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마트 노브랜드는 전주ㆍ제주 가맹점 출점을 앞두고 지역 소상공인과 도의회, 국회까지 들고 일어섰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복합쇼핑몰을 기획 중인 롯데는 전통시장 상인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창원시는 최근 스타필드 입점 여부를 두고 60일간의 공론화 과정에 돌입했다.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 회장은 “유통산업발전법이 규제법으로 돌아선 뒤에도 대기업의 무분별한 지역상권 진출은 계속됐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면서 “현행법의 실효성이 없다는 건 그만큼 더 섬세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한탄했다. 정부와 업계가 단순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찬반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통법만 쫓다가는…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다른 해결책도 있다. 일본ㆍ미국ㆍ독일 등의 국가에선 도시계획법제에 따라 도시계획단계에서 미리 대규모 점포의 입지를 제한하고 있다. 상권영향평가ㆍ 환경영향평가ㆍ교통영향평가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지 대규모 점포를 지을 수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용도지역 별로 건축 허용을 담당하는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대형 유통점포의 도심 진입을 막는 식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엔 이 법을 활용해 유통시장의 균형을 맞추려고 시도하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 어쩌면 지금이 유통시장 규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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