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가격인상인가
소비자의 허약한 가격 저항

식품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올해 들어 식품업체들은 제품가격을 5~20% 인상했다. 가격 인상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누굴 위한 가격 인상인가’라는 비판이 쏟아져도 식품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의 ‘구매 저항’ 심리가 3개월이면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식품가격이 무섭게 오르는 이유와 3개월의 법칙을 취재했다.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의 구매 저항 심리는 3개월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의 구매 저항 심리는 3개월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직장인 김정현(30)씨는 요즘 장보기가 겁이 난다. 혼자 사는 살림에 장바구니에 담은 건 즉석밥ㆍ라면ㆍ맥주ㆍ과자 몇봉지뿐인데 계산할 때마다 5만원 한장이 우습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격표를 일일이 보면서 구매하는 편은 아닌데, 계산할 때마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게 느껴져 흠칫 놀란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식품가격이 고공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유업계가 흰우유 가격을 인상하면서 우유를 원재료로 하는 커피류ㆍ베이커리류 가격이 잇따라 오른 데 이어 올해에는 가공식품 업계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포문을 연 건 식품업계 선도업체인 CJ제일제당이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21일 햇반ㆍ어묵ㆍ장류 등 7개 품목의 가격을 5.5~10.4% 인상했다. 햇반(210g) 가격은 1480원에서 1600원으로, 태양초 골드고추장(1㎏) 가격은 1만3500원에서 1만4700원으로 올랐다.

대상도 주요 장류 가격을 인상했다, 대상은 4월 1일 고추장ㆍ된장ㆍ액젓 등 일부 제품 소비자가격을 6~9% 올렸다. 같은날 롯데제과는 편의점용 월드콘ㆍ설레임 등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이들 제품 가격은 1500원에서 1800원으로 올라, 인상률이 20%에 달했다.

주류업계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맥주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오비맥주는 4월 4일 카스ㆍ프리미어OBㆍ카프리 등 주요 맥주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했다. 2016년 11월 가격을 인상한 지 2년5개월 만이다. 그 전 가격 인상이 2012년 8월에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상 주기가 빨라졌다. 5월 10일에는 하이트진로가 2015년 이후 소주 출고가를 6.45% 올렸다. 후발주자인 롯데주류도 뒤를 이었다. 롯데주류는 6월 1일 출고가 기준 처음처럼 6.5%, 클라우드 9%씩 인상했다.

주류 출고가가 인상되면서 소비자가격도 껑충 뛰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오비맥주의 카스프레쉬 소비자가격은 2192원(2019년 6월 6일 기준)으로 1년 전(2049원)보다 143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의 참이슬(360mL)은 5.7%(1300원→1375원), 롯데주류의 처음처럼(360mL)은 3.5%(1303원→1349원)씩 올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6월 1일에는 롯데제과가 비스킷 4종(빠다코코낫ㆍ야채크래커ㆍ제크ㆍ롯데샌드) 등의 가격을 3년 만에 7.1%(1400원→1500원) 올렸다. 최근에는 SPC삼립이 6월 10일부터 빵류 123종의 가격을 평균 6.9%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치즈후레쉬팡(14입)은 3800원에서 4000원으로, 실키크림빵은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오르게 됐다.

이승신 건국대(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식품은 소비자 생활과 밀접한 품목으로 6~10%대의 높은 인상률은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면서 “식품업계 영업이익률을 고려해도 과도한 가격 인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식품업체들이 내세우는 가격 인상의 근거는 한결 같다. “원ㆍ부재료비, 가공비, 관리비, 물류비 등 각종 제반비용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감내해왔지만 부득이하게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 하지만 식품업계가 수익성 악화 문제를 가격 인상을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소비자 지갑은 얇아졌는데, 이들 업체는 가격 인상 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가령, CJ제일제당의 가격 인상 품목은 지난해 5900억원가량의 매출(이하 키움증권 추정치)을 올렸다. 이번 가격 인상 효과로 해당 품목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5%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이중 판관비ㆍ원재료비 상승분을 감안해도 7.6%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가 기대된다.

식품업계 도미노 가격 인상으로,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사진=뉴시스]
식품업계 도미노 가격 인상으로,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사진=뉴시스]

지난 2월부터 바나나맛 우유 가격을 7.7% 올린 빙그레도 20%대(한국투자증권 전망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식품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발표할 때마다 주가가 들썩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격 올리자 주가 껑충 

하이트진로가 소주 가격을 올리겠다고 밝힌 지난 4월 24일 이 회사의 주가는 1만9600원으로, 전일(1만8600원) 대비 1000원이 뛰었다. CJ제일제당도 가격 인상 단행을 발표한 1월 31일 주가가 9000원(33만3500원→34만2500원) 상승했다. 실적 개선 기대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 셈이다.

혹자는 ‘소비자의 저항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에 주가상승, 실적증가 등은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소비자의 가격 저항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는다. 가격이 오르면 비판 여론에 불이 붙으면서 소비자가 해당 제품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나타나긴 하지만 ‘3개월이 지나면 사그라진다’는 게 통설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뿐만 아니라 신제품 출시 효과도 3개월이면 끝이 난다”면서 “가격 인상에 따른 거부감으로 소비자들은 한동안 해당 제품 소비를 줄이지만, 몇달이 지나면 회복되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식품업계가 손쉽게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세정 상명대(소비자주거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자는 대표성을 지닌 제품의 가격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예컨대 메이저 제조사가 A라면의 가격을 올리면, A라면의 가격대를 중심으로 라면 가격이 형성되는 일종의 앵커링 효과(최초에 제시된 숫자가 기준점 역할을 하고, 이후 판단에 영향을 주는 현상)가 나타난다. 결국 제품의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소비자는 가격 인상에 무뎌지게 되는 셈이다.” 가격 인상의 시대, 소비자만 또 울게 생겼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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