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으로 휘황찬란한, 어지러운 곳

❶홍성우, APT-W-1, 2019년 ❷최은정, Untitled, 2019년
❶홍성우, APT-W-1, 2019년 ❷최은정, Untitled, 2019년

독일의 이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근현대의 도시를 어지럽고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환등상)에 비유했다. 19세기 말 등장한 대도시 파리의 면면을 통해 근대 도시의 문화·정치·사상을 집대성한 그의 미완작 「아케이드 프로젝트(Arcades Project)」는 후대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빛과 색, 꿈과 신비, 소비욕망 충족 장소로서의 대도시에 대한 벤야민의 시적 서정과 환영적 시각이 담겨 있다.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팬텀시티 Phantom City’전은 도시를 테마로 하는 세화미술관의 연례 기획전 중 두번째다. 첫번째 전시였던 ‘원더시티’전에서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제시한 목적 없이 배회하며 내면 환상에 집중하는 ‘도시 산책자’ 개념이 반영됐다. 이번 전시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빛과 색으로 대표되는 환영 도시를 전면에 내세웠다.

최은정의 ‘Tropical City’, 정정주 ‘Grand Figure’, 혜자 ‘Hauptbahnhof’, 이창원 ‘네 도시 : 바그다드, 후쿠시마, 평양, 서울’, 러봇랩 ‘AVENUE I’, 홍성우 ‘APT-W-1’, 최성록 ‘Scroll Down Journey’, 이희준 ‘A Shape of Taste No.110’, 권용래 ‘Vision Light’ 등 9팀의 작가가 49점을 선보인다.

❸정정주, Grand Figure, 2019년 ❹혜자, Hauptbahnhof, 2011년
❸정정주, Grand Figure, 2019년 ❹혜자, Hauptbahnhof, 2011년

참여 작가들은 태생적으로 거대해져만 가는 시각적 환영幻影 덩어리인 도시에 주목한다. 소비 열망으로 채워진 유토피아적 환상 도시 이미지를 각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작품에 담아냈다.

이번 전시는 우리의 시각을 유혹하는 현대 도시의 빛과 색의 환영을 관찰하고 조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시각 너머에는 어떤 현실의 풍경과 삶이 실재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다양한 시선으로 도시를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도시 풍경의 스펙터클을 감상하고 한 사람의 도시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시각과 실제 삶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9팀의 작가들이 펼쳐 보이는 각각의 도시 이미지들은 도시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안내서가 돼 사유의 길로 안내한다. 빛의 환영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도시 이미지와 실제 눈으로 경험하는 도시 풍경의 부조화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다. 도시를 더 이상 피상적인 이미지로만 보지 않고 우리의 시각을 유혹하는 환영 너머 어떤 삶과 존재가 실재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7월 21일까지 개최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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