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대형화 리스크

인수·합병(M&A), 유상증자…. 국내 증권업계에 대형화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 최초로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8조원을 넘어선 증권사도 등장했다. 그런데 커진 덩치만큼 질적인 성장을 이뤘는지는 의문이다. 수익구조는 중소형 증권사와 다를 게 없고 자본의 건전성은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어서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심각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증권사 대형화 트렌드에 숨은 리스크를 취재했다. 

국내 주요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위한 자본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주요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위한 자본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증권업계에 대형화 바람이 불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56조5649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 40조4787억원 대비 16조862억원(28.4%)나 증가한 수치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의 투자은행(IB) 육성 정책과 증권사의 대형화 니즈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2013년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선정하면서 투자은행 육성에 공을 들여왔다. 2016년에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증권사에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했고, 자기자본이 8조원 이상이면 고객이 맡긴 예탁금을 운용할 수 있는 종합투자계좌(IMA·Investment Management Account)를 허용했다.


정부의 IB 육성정책이 구체화하자 꿈쩍하지 않던 증권업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4년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의 합병(현 NH투자증권)을 시작으로 2016년 대우증권·미래에셋증권(현 미래에셋대우), 2017년 현대증권·KB투자증권(현 KB증권) 등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이 단행됐다. 그 결과, 2016년 국내증권사의 자기자본은 사상 처음으로 50조원대(54조3192억원)를 돌파했다.

덩치를 키우려는 증권사의 ‘쩐錢 전쟁’은 최근 들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자기자본 규모 1위인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7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업계 최초로 자본금 8조원(8조2352억원)을 달성했다. 신한금융투자도 5월 6600억원의 유상증자에 나설 예정이다. 신한금투는 지난해 말 기준 3조3641억원인 자기자본을 4조원대로 높여 발행어음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에선 하나금융투자(자기자본 3조2159억원)의 증자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조9000억원의 증자를 실시하면서 자기자본을 단숨에 3조원대로 끌어올린 여세를 올해에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증자와 관련해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하나금융투자가 중위권 증권사다 보니 증자의 필요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건 사실”이라는 말로 가능성을 열어뒀다.

몸집 키우기 나선 국내 증권사


하지만 몸집을 키운 증권사가 ‘글로벌 IB’로 불리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미래에셋대우(8조2352억원), NH투자증권(5조108억원)을 제외하곤 몸집이 4조원대에 멈춰있다. 금융당국의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 기준만 넘어선 업체가 대다수라는 얘기다. 증권사가 발행어음 등 초대형 IB에 허용되는 사업을 위해 맹목적으로 자본을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초대형 증권사 IB부문의 수익이 다른 증권사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도 아니다. 금감원이 발표한 ‘2018년 중 증권사 영업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자기자본 1조원 이상 증권사의 IB부문 수수료 비중은 25.4%를 기록했다. 자기자본 1조원 이하의 중형증권사(32.4%), 자기자본 3000억원 미만의 소형증권사(27.4%)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반면, 수탁 수수료의 비중은 48.3%로 중형증권사(43.8%)와 소형증권사(43.9%)에 비해 5%포인트가량 높았다. 증권업계의 벌크업 속도에 비해 사업구조의 변화는 빠르지 않은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IB부문 수익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위탁수수료 중심의 영업이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IB부문도 신용공여와 같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부문에 쏠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주요 증권사의 자본 확충이 증권업계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면서 “덩치 싸움에서 밀려난 중소형 증권사는 고사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급격하게 몸집을 불린 만큼 리스크가 커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초대형 증권사가 불어난 자본을 고위험자산에 투자하면서 우발부채·대출채권 등의 신용위험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한국신용평가는 3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대형증권사의 신용위험액이 2013년 대비 5.4배(지난해 말 기준)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조짐은 초대형 증권사의 순자본비율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 참고: 순자본비율은 총위험액대비 영업용순자본을 나타내는 것으로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자기자본 상위 7개 초대형 증권사(지난해 기준)의 순자본비율은 2016년 1433.87%에서 지난해 1165.89%로 267.98%포인트(-18.68%)나 하락했다. 증권업계 전체 평균인 545.1%보단 두배가량 높지만 그 폭이 가파르다는 점은 시장의 우려를 살 만하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선임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대형 증권사는 자본에 상응하는 위험을 보유하고 있어 자본완충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규모 거래와 고위험 투자는 위기 시 손실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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