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노미와 미니제품, 간편소비학

소용량 제품 구입은 '간편한 소비' 추구 현상과 이어진다. [사진=연합뉴스]
소용량 제품 구입은 '간편한 소비' 추구 현상과 이어진다. [사진=연합뉴스]

작은 물, 작은 소주, 작은 파이, 작은 과자…. 미니제품이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들은 이를 ‘1코노미(1인가구+이코노미)’의 대표적 예로 꼽는다. 하지만 ‘가성비’ ‘가용비’를 좇는 기존 1코노미와는 조금 다르다. 미니제품의 가격은 결코 싼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통업계에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났다고 해석한다. 가성비가 아닌 가격 대비 ‘편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 ‘간편소비학’를 취재했다. 

# 롯데제과는 지난 1월 ‘쁘띠 몽쉘 생크림케이크’를 론칭했다. 두달 후인 3월엔 해태제과가 ‘오예스 미니’를 선보였다. 기존보다 ‘다운사이징’된 제품이었다. 다운사이징은 제품의 크기와 용량을 줄여 내는 방식이다. 

# 음료·주류업계에도 다운사이징 바람이 불고 있다. 오비맥주는 250mL 캔(카스 한입캔)을 출시했다. 하이트진로는 이보다 115mL나 작은 초미니 제품(기린이치방 미니캔 등)을 시장에 내놨다. 소주만이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지난해 10월 330mL짜리 제주삼다수를 론칭했다. 

# 이런 다운사이징 제품은 실적도 괜찮다. ‘아이시스 8.0(롯데칠성음료)’의 소용량 제품(200mL·300mL)의 지난해 매출은 170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늘었다. ‘칠성사이다 미니’ ‘펩시콜라 미니(이상 160mL)’의 올 1~4월 누적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0%, 150% 늘어났다. 

소용량 제품, 이른바 ‘미니제품’의 등장은 1인가구의 가파른 성장세와 무관치 않다. 1코노미(1인가구+이코노미)가 비즈니스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미니제품 시장이 확대됐다는 얘기다. 주목할 점은 이런 미니제품이 1코노미의 소비행태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1코노미의 소비성향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예를 들어보자.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 8.0’ 생수의 소용량 제품(300mL)의 100mL당 단가는 94원이다. 2L짜리 대용량 제품의 단가 33원보다 184.8% 비싸다(이마트 영등포점 기준). 해태제과의 오예스 미니 역시 마찬가지다. 오예스 미니의 그램(g)당 단가는 18.8원으로, 오예스 16.7원 대비 12.6% 비싸다. 쉽게 말해, 미니제품은 가용비는 물론 가성비도 좋지 않다는 거다. 

제과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각종 미디어들이 1인가구의 성장세와 맞물려 나타난 새로운 트렌드로 대용량 제품, 미니제품을 혼용해서 쓴다. ‘1인가구가 늘면서 대용량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1인가구 덕에 미니제품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식이다. 양쪽 모두 맞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결이 다르다. 대용량 제품은 가성비와 연관지을 수 있지만 미니제품은 가성비가 아닌 가치소비와 연결돼 있다.”

그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미니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이준영 상명대(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가성비나 가용비보다 소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 일부 1인가구는 조금 사서 덜 남기는 식의 효율적인 소비를 한다. 가성비를 위해 대용량 제품을 사는 1인가구와는 조금 다른 특성이다. 이를테면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간편 소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간편 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른 셈이다.” 

간편 소비는 시장의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밀레니얼(1982~2000년생)·Z세대(1995~2005년생)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가지 제품을 오래 쓰는 대신 적은 양의 제품을 여러개 구매해 빠르게 바꾸는 ‘호핑(hopping)족’이 등장한 건 이들의 성향이 잘 드러난 사례다.

노력을 줄이고 만족을 추구하는 특성도 있다. 이 교수는 “간편 소비는 ‘나홀로족’으로 대표되는 소비의 개인화와 이어져 있다”며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는 소비 형태는 ‘무노력(제로에포트·Zero Effort)’ 현상까지 확장된다”고 설명했다. 무노력 현상은 소비를 위해 최소한의 노력만 하는 형태다. 간편함이 소비의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간편함을 우선시하는 소비 형태는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준영 교수는 “최근 다인 가구에서도 이같은 소비 형태가 두드러진다”며 “개인의 만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로 구성됐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인구 구조의 변화도 간편 소비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허경옥 성신여대(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가구 수는 늘어나지만 가구당 인원수는 줄어들고 있다”며 “굳이 대형마트까지 가서 나르기도, 보관하기도 불편한 대용량 제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꼬집었다. 간편 소비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생태계가 조성됐다는 얘기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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