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밖 일회용품 ‘협약’을 비웃다

61억개(횐경부ㆍ2015년 기준). 한국인이 연간 사용하는 플라스틱 일회용컵(이하 일회용컵) 개수다. 단순 계산으로 국민 1인당 매년 122개 이상의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셈이다. 환경부가 지난해 커피전문점ㆍ패스트푸드점과 자율협약을 맺고 매장 내 일회용컵 규제에 나선 이유다. 갑작스런 규제에 혼란도 잠시, 성과는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종이컵, 빨대 등 규제 밖 일회용품은 여전히 자율협약을 비웃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일회용품 줄이기 자율협약 1년의 성과를 취재했다.

일회용품 줄이기 자율협약 1년이 지났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회용품 줄이기 자율협약 1년이 지났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매장 내에선 일회용품 안 써요.” 환경부가 지난해 5월 커피전문점ㆍ패스트푸드점 업계(21개 업체)와 ‘(플라스틱) 일회용품 줄이기 자율협약’을 맺은 지 1년여가 지났다. 환경부가 ‘자율협약 1주년’ 성과 발표를 앞둔 지난 1일 서울 시내 일부 커피전문점엔 ‘일회용컵 집중 단속기간’ 안내판이 나붙었다. “6월 1일부터 매장 내 일회용컵 집중단속 기간입니다. 집중단속 기간 매장 내에선 머그잔 이용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 매장 안에서 일회용컵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어쨌거나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려는 업계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서울 주요 상권 커피전문점에선 다회용컵(머그잔ㆍ유리잔) 사용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자율협약을 체결한 업체에서 수거한 일회용컵은 지난해 7월 206톤(tㆍ이하 환경부)에서 올해 4월 58t으로 72%가량 감소했다. 아울러 업체마다 재질이 달라 재활용에 어려움을 겪던 일회용컵의 재질이 페트(PET)로 단일화됐다.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는 고객도 증가했다. 업체마다 개인 텀블러 사용 고객에게 100~400원 할인혜택을 제공한 효과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경우, 지난 1년간(2018년 5월~2019년 4월) 개인 텀블러 사용 건수가 1081만건에 달했다. 전년 대비 178%가량 증가한 수치다. 

매장 밖 일회용컵은 난제 

자발적으로 빨대 없는 리드(빨대 없이 음료를 음용할 수 있는 컵투껑)나 종이빨대를 도입하는 업체도 나타났다. 엔제리너스ㆍ던킨도너츠ㆍ배스킨라빈스ㆍ투썸플레이스 등은 빨대 없는 리드를, 스타벅스는 빨대 없는 리드와 종이빨대를 도입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관계자는 “플라스틱 빨대 대비 종이빨대의 단가가 5배가량 비싸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저감을 위해 종이빨대를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율협약 이후 기업의 자발적 변화까지 이끌어낸 셈이다.

하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테이크아웃을 포함한 전체 일회용컵 사용량은 전년 대비 14.4%(7억137만개→6억7729만개) 감소한 데 그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관련 통계가 자율협약을 맺은 업체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일회용컵 사용량은 되레 늘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커피전문점 수가 9만여개(업계 추정치)에 달하지만 자율협약을 맺은 매장 수는 1만360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율협약을 맺지 않은 중소 커피전문점은 일회용컵 재질이 여전히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폴리스틸렌(PS), 폴리프로필렌(PP) 등으로 제각각이다. 육안으로 재질 구분이 어려운 탓에 선별장에서도 분류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숱하다.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고객이 밖으로 가지고 나간 일회용컵은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물질이 묻은 채, 분리수거되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환경부는 밖에서 버려지는 일회용컵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ㆍ스타벅스커피코리아 등과 함께 17개에 이르는 전용수거함을 설치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까진 일회용컵 전용수거함에 다른 쓰레기를 함께 버리는 경우가 많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회용품 문제가 심각한 만큼 6~7월 전용수거함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규제 밖에 있는 ‘종이컵 꼼수’도 여전하다. 종이컵은 플라스틱컵과 달리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서 빠져있기 때문이다. 다회용컵 대신 종이컵에 음료를 일괄 제공하는 프랜차이즈업체가 숱하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이컵 꼼수가 난무하는 건 2008년 정부가 재활용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종이컵을 규제에서 해방시켜준 결과다.

플라스틱컵과 달리 종이컵‧빨대 등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사진=뉴시스]
플라스틱컵과 달리 종이컵‧빨대 등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일반적 인식과 달리 종이컵 재활용은 까다롭다. 안쪽에 플라스틱 코팅처리가 돼있어서다. 종이컵만 따로 모아서 버리지 않는 한 재활용이 불가하다는 거다. 김현경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종이컵은 규제 대상이 아닐 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플라스틱컵과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업체들은 소비자를 앞세워 항변한다. 익명을 원한 패스트푸드 업체 관계자는 “일부 소비자가 위생상 이유로 다회용컵을 거부하고 종이컵을 원하는 경우가 있어 불가피하게 제공하기도 한다”면서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해야 하는 업체로선 난감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규제 밖에 있는 건 종이컵뿐만이 아니다. 플라스틱 빨대도 일회용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여전히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부 커피전문점에선 빨대 거치대를 없앴지만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효과는 미미하다. 정부가 지난해 9월(자원순환기본계획) 2027년까지 빨대를 단계적으로 규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김현경 활동가는 “플라스틱 빨대가 일회용품이라는 법적 근거가 없는데, 규제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면서 “플라스틱 빨대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오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플라스틱 폐기물’도 골칫거리다. 인터넷 신선식품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포장재 폐기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스티로폼박스ㆍ아이스팩ㆍ완충재 등 한번에 버려지는 양만 비교하면, 일회용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현재로선 포장재 폐기물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1월 ‘과대포장 방지 및 포장재 감량을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강제성이 없어 별다른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얼 보완해야 할까. 생각보다 해법은 많지 않다. 일회용품을 쓰다가 적발됐을 때 과징금을 매기는 제도는 소비자에게 거부감을 줄 게 분명하다. 현행법은 소비자가 매장 안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다 적발됐을 경우, 과태료(최대 200만원ㆍ매장 면적별 상이)를 점주에게만 부과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부활시키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플라스틱컵뿐만 아니라 종이컵도 아우를 수 있는데다, 거부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증금 제도가 그나마 최선

이 제도는 일회용컵을 매장에 되가져올 경우 보증금을 환급해주고, 일회용컵을 한데 모아 재활용한다는 취지다.[※참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2002년 도입됐지만 업계 자율협약에 근거하고 있어, 효과가 미미해 2008년 폐지됐다.] 

하지만 법제화 과정은 더디기만 하다. 관련 논의가 수년째 이어졌음에도 정부는 지난해 5월에야 재활용폐기물관리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보증금 제도를 언급했다.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문진국(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ㆍ보증금 전담관리센터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묶여 있는 상태다”고 말했다.

일회용품 자율협약은 1년 전 ‘설거지옥(설거지+지옥)’의 혼란에서 벗어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만족하기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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