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프리미엄 전략

애플이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공개 현장에서 사회자는 여느 때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장점을 열거하며 분위기를 돋았고, 곳곳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발표되자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니터 스탠드 가격만 999달러(약 100만원)가 훌쩍 넘었기 때문입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애플의 고가정책을 살펴봤습니다.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2017년 11월,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X의 가격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64GB 모델의 가격이 142만원, 256GB 모델은 163만원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가격대가 90만~100만원 선에서 정해졌던 것을 감안하면 10주년 기념 스마트폰이라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이었습니다.

애플이 처음부터 프리미엄을 전략으로 내세웠던 건 아닙니다. 2008년 출시했던 ‘아이폰3G’의 국내 가격은 68만원(8GB)이었습니다. 아이폰X(64GB)과 비교하면 가격이 2배 더 쌉니다. 2013년 출시한 ‘아이폰5C(549달러·64만9000원)’는 후면이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는데, 같은 시기에 선보인 ‘아이폰5(649달러·76만7000원)’와 성능 면에서 차이가 없음에도 가격은 100달러 더 저렴했습니다.

충성고객과 프리미엄 전략

아이폰5C를 끝으로 애플은 저가형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습니다. 최신기술로 무장한 고가폰과 가성비가 뛰어난 중저가폰을 번갈아 출시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다른 노선을 택한 셈입니다. 지난해 10월 공개한 최신작 ‘아이폰XS’의 가격도 만만찮습니다. ▲1200만 화소의 듀얼 카메라 ▲4K 동영상 ▲최대 512GB 저장공간 등을 제공하는 이 모델의 가격은 137만원부터입니다(64GB 기준). 비슷한 성능에 용량은 2배 더 많은 삼성의 ‘갤럭시S10’이 105만6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가격 차이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은 스마트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령, 모니터와 PC가 결합된 형태의 ‘아이맥 프로’ 가격은 630만원입니다. 5120X2880 해상도, 메모리 32GB, 저장공간 1TB 등이 주요 성능으로 꼽힙니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서 아이맥 프로와 거의 동일한 성능의 부품을 선택해 PC의 견적을 내본 결과, 가격은 285만6000원(모니터·마우스·키보드 포함)에 불과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케이스·충전 단자·키보드 등 주변 기기나 액세서리도 고가에 속합니다. “애플 제품들의 가격에 거품이 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합니다.

그럼에도 애플은 업계의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손가락 압력을 감지하는 ‘3D터치’, 얼굴을 인식해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는 ‘페이스ID’ 등 최신 기술을 꾸준히 선보이며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브랜드 평가업체 브랜드파이낸스에 따르면 애플은 글로벌 500개 기업 중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가장 가치 있는 기업’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2017년 이후론 구글·아마존에 밀려 2위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막강한 파급력을 갖고 있죠.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다릅니다. 애플의 고가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발단은 지난 6월 4일 열린 ‘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였습니다. 애플은 WWDC에서 2019년형 PC·모니터 등을 선보였는데, 모니터(프로 디스플레이 XRD)를 쓰려면 이를 지탱하는 스탠드를 별도 구매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 스탠드(프로 스탠드) 가격이 무려 999달러(118만원)나 된다는 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모니터를 벽에 걸 수 있게 해주는 ‘베사 마운트’는 작은 부품임에도 가격이 199달러(23만5000원)에 달했습니다. WWDC 영상이 공개된 이후 온라인에선 “스탠드 값이 스마트폰보다 비싸다”며 스탠드의 가격을 조롱하는 글이 끊이질 않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이번 애플이 발표한 PC와 모니터가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라는 겁니다. PC 가격은 5999달러(709만6000원), 모니터는 4999달러(591만3000원)로 성능도 가정용 제품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고성능의 전문가용 제품인 만큼 가격도 비싸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애플의 프로 스탠드는 기능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애플의 프로 스탠드는 기능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럼 스탠드의 기능은 어떨까요? 우문愚問일지 모르지만 스탠드 역시 전문가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스탠드엔 자석이 내장돼 있어 모니터를 자석의 힘만으로 지탱합니다. 상하조절이 가능하고, 가로에서 세로로 모니터를 회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스탠드 기능의 전부입니다. 스탠드에만 100만원이 넘는 값을 매겼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폰 재구매율 높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애플이 고가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로 충성고객 기반이 탄탄하다는 점을 꼽습니다. 가격이 비싸도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는 얘기죠. 이를 잘 보여주는 설문조사도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7월 스마트폰 사용자 1002명에게 ‘향후 스마트폰을 바꾼다면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본 결과, 아이폰 이용자의 77.0%가 ‘아이폰을 구매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삼성 갤럭시(61.0%)’ ‘LG(47.0%)’에 비해 아이폰 사용자의 재구매 의사가 높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비싼 애플 기기를 언제까지 구매해줄지는 의문입니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WWDC에서 스탠드 가격을 발표하자 객석에서 술렁임이 멈추지 않았던 건 ‘애플 프리미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IT전문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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