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시대와 알뜰폰의 미래

5G 시장이 본격 개화하고 있다. 이통3사는 ‘사물인터넷(IoT) 연결’ ‘최신 단말기’ 등으로 무장하면서 5G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을 활용해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전체 통신비 가운데 단말기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걸 떠올리면 무기가 ‘저렴한 요금제’ 뿐인 알뜰폰 업계에겐 깜깜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5G 시장을 휘감은 ‘돈바람’에 가뜩이나 어려운 알뜰폰이 또 위기에 처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5G 시대와 알뜰폰의 미래를 취재했다. 

알뜰폰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이통3사의 저가요금제 출시ㆍ5G 출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알뜰폰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이통3사의 저가요금제 출시ㆍ5G 출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올해 4월 알뜰폰 가입자가 810만명을 돌파했다. 역사를 따져보면 성장 속도는 놀랍다. 2011년 7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인 이듬해 10월 100만명의 가입자를 모집했다. 2017년 4월엔 가입자 700만명, 이동통신 시장점유율 11.4%라는 성적을 냈다.

알뜰폰이 승승장구하는 핵심 경쟁력은 ‘저렴한 요금제’다. 알뜰폰 사업자는 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의 통신망을 임대료를 내고 빌려 사업을 한다. 막대한 네트워크 투자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다. ‘알뜰폰 1000만 시대’가 머지않은 상황.

그럼에도 업계는 “시장이 생존 기로에 섰다”고 호소한다. 근거 없는 볼멘소리가 아니다. 위기 증후군은 뚜렷하다. 올해 4월 기준 알뜰폰의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은 12.2%로 1년 전과 비교하면 0.1%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까지 연평균 1%포인트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알뜰폰에서 이통3사로 이탈하는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1~5월 알뜰폰에서 이통3사로 번호변경을 한 사용자는 28만6574명. 이 수치는 2016년 20만2298명, 2017년 23만7422명, 2018년 25만2974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이통3사에서 알뜰폰으로 이동하는 숫자가 더 많았다”면서 “이 흐름이 역전됐다는 건 이통3사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성장세가 주춤한 이유로는 이통3사의 요금제 개편이 꼽힌다. 지난해 이통3사는 가격은 낮추되 데이터의 제공량을 늘리는 요금제를 앞다퉈 내놓았다.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이통3사가 2만~3만원대 저가요금제 구간에서 데이터 제공량을 늘린 건 알뜰폰 사업자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됐다. 저가요금제가 이들의 주요 수익원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값이면 결합 할인과 멤버십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이통3사가 경쟁에서 유리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입자 매년 늘었지만…

더 큰 문제는 미래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거다. 알뜰폰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콘텐트가 부족하고 커버리지가 좁아 가입자 확보가 더딜 거라 판단했던 5G 서비스가 상용화 69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한 걸 두고 놀랐다.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내 12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스마트폰도 공짜로 만드는 이통3사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전체 가계 통신비에서 단말기 값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생각하면 이통3사의 망을 저렴하게 빌려와서 다시 판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솔직히 이런 공룡 사업자와 같은 시장에서 대등한 경쟁을 벌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현재 알뜰폰 업계는 5G 시장에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5G 서비스의 도매제공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5G 도매제공도 곧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5G 알뜰폰’을 언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막대한 망 투자를 한 이통3사가 이를 쉽게 도매가로 내줄 리 없어서다. 

하창직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새롭게 개편된 요금제 중에서 알뜰폰 사업자에게 도매로 제공되는 요금제는 단 1개뿐”이라면서 “이통3사가 ‘5G는 망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이제 서비스 초반이기 때문에 도매로 내줄 수 없다’고 버티면 뾰족한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향후 알뜰폰 사업자가 5G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점유율을 늘리긴 쉽지 않다. 지금처럼 보조금 경쟁이 판을 치면 자금력이 부족한 알뜰폰 업계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알뜰폰 사업자가 도매로 산 5G 요금제를 고객에게 싸게 팔아도, 단말기 값을 크게 낮춘 이통3사와의 전체 가계통신비 경쟁에선 우위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현배 박사(카이스트 통신공학)는 “알뜰폰을 소수 저가상품을 이용하는 고객만을 위한 ‘틈새시장’으로만 포지셔닝한다면 지속가능한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저가시장 역시 언제든 이통3사가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정부의 대처다. 알뜰폰은 정책 사업의 일환으로 출발했다. 알뜰폰 출범 당시 정부는 “이통3사의 독과점으로 가계통신비가 치솟았다”는 지적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장 경쟁 활성화를 고민하던 정부는 기존 통신사의 망을 빌려 사업을 벌이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육성’ 카드를 꺼냈다. ‘대국민 공모전’을 벌여 알뜰폰이란 이름을 붙이곤 “알뜰폰으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효과가 있었다”고 외쳤다. 그 덕에 “통신비 문제 해결 왜 못하나”란 비난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솔직히 답이 없다”

시장을 열어젖힌 게 정부인 만큼 활성화를 위한 묘책도 정부가 꺼내드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전파사용료 면제 연장’ ‘우체국 판매 채널 확대’ 등 땜질식 처방에 머물러 있다. 통신업계에선 “솔직히 털어놓으면 지금의 정책과 구조로는 답이 없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출구전략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과기부는 올해 초 알뜰폰의 중장기 로드맵을 논의하는 전담반을 출범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알뜰폰 업계가 추정하는 사업자 누적 적자는 3500억원 이상이다. 급변하는 이동통신시장에 발맞출 전략이 없다면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이통3사의 비싼 요금을 피해 알뜰폰을 구입한 국민 800만명이 또 다른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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