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우조선해양 데자뷔
2018년 호반건설, 뜻밖의 손실에 낭패
무실사 M&A 가능성, 리스크 따져야

2008년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M&A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화컨소시엄의 현장실사를 저지했다. M&A는 좌절됐고, 대우조선해양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2018년 호반건설은 대우건설 M&A 플랜을 완전히 접었다. 실사에서 뜻밖의 손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19년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실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에선 무실사 M&A 가능성을 내놓는다. 전례前例를 보면 가능성이 없지 않고, 리스크도 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무실사 M&A 가능성과 리스크를 취재했다. 

현대중공업은 두차례 대우조선해양의 현장실사에 나섰지만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사진=연합뉴스]
현대중공업은 두차례 대우조선해양의 현장실사에 나섰지만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사진=연합뉴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이 본계약(3월 8일)을 체결한 지 3개월여가 흘렀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면 ‘실사’와 ‘기업결합심사’라는 두 중요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실사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영ㆍ자산ㆍ재무 상태 등을 조사하는 것, 기업결합심사는 국내와 해외 관련국에 독과점 여부를 심사받는 것을 말한다. 

현대중공업의 계획은 6월 안에 실사를 끝내고, 이후 기업결합심사를 준비하는 거였다. 통상 기업결합심사에 소요되는 기간은 6개월여. 이 플랜을 따라야 “올해 안에 인수를 마무리 짓겠다”는 현대중공업의 목표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산업은행과 합의한 10주간의 실사기간도 지난 6월 14일까지였다.

실사는 서류를 먼저 검토한 뒤에 현장을 확인하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하지만 실사기간 현대중공업이 확인한 건 서류뿐이다. 현장에 해당하는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에는 발도 들이지 못했다. 노조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온몸으로 실사를 막아내겠다”는 뜻을 밝혀왔고, 이는 엄포에 그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실사단은 지난 3일과 12일 두차례 옥포조선소를 찾았지만 노조가 조선소를 봉쇄한 탓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막다른 길에 몰린 현대중공업은 플랜B로 돌아섰다. 기업결합심사를 먼저 받고 실사를 진행하겠다는 거다. 현대중공업 실사단을 이끈 조영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산업은행과 계속 실사를 협의하겠다”면서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종결되기 전에 반드시 실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매각 철회를 요구하는 노조와 인수를 밀어붙이는 현대중공업 사이엔 ‘중간 합의점’이 없기 때문이다. 노조와 대화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고 해도 인수를 서두르는 현대중공업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매각을 철회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노조를 두고 기업결합심사부터 진행하겠다는 건 노조를 설득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중공업이 현장실사 없이 인수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득력이 없는 얘기가 아니다. 실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아서다. 현대중공업이 ‘무실사 인수’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조가 실사를 반대할 거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본계약 이전부터 두 회사의 인수ㆍ합병(M&A)을 두고 ‘밀실야합에 따른 특혜매각’이라면서 강하게 비난해왔다. 더구나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2008년 한화컨소시엄(한화석유화학ㆍ㈜한화ㆍ한화건설 등)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실사를 저지한 전례가 있다. 이번 합병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실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합병이 틀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실사 없이 인수했을 때의 리스크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다. 무엇보다 서류엔 없는 부실문제가 뒤늦게 발견되면 현대중공업의 재무상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초 인수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공산도 크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시너지를 통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할 거란 산은의 의도가 빗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사를 꼼꼼히 진행하지 않아 문제가 된 경우도 숱하다. 지난해 매각이 무산된 대우건설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의 예비실사를 진행했을 때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대우건설의 해외사업에 부실 문제가 드러났고, 인수 직전까지 갔던 호반건설은 급하게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우연히도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모두 정부가 주도한 M&A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산은이 주도하는 M&A는 산업논리보단 성과를 내기 위한 경우가 많다”면서 “졸속매각이라는 오명을 듣는 것도 그 때문인데, 무리하게 서둘렀다가 되레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이 무산됐을 때, 다양한 실패 원인이 거론됐다. 그 중 하나가 현장실사 없이 무리하게 M&A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M&A가 그때의 데자뷔로 보이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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