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무시, 허술한 대책 … 붉은 수돗물에 숨은 고질병
규정 무시, 허술한 대책 … 붉은 수돗물에 숨은 고질병
  • 김다린 기자
  • 호수 344
  • 승인 2019.06.25 0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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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수는 왜 흘러나왔나

담당자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한 당국은 골든타임을 놓친 채 ‘헛말’만 남발했다. 그 사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렇다고 소 잃고 외양간을 잘 고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관련 대책은 구멍이 뚫려 있기 일쑤고, 계획은 번번이 비틀어졌다. 인천시 붉은 수돗물 사태를 두고 너무도 뻔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붉은 수돗물에 숨은 고질병을 취재했다. 

서구 일대를 강타한 적수 사태가 25일 넘게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서구 일대를 강타한 적수 사태가 25일 넘게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5월 말부터 20일 넘게 이어지는 인천 붉은 수돗물(赤水ㆍ적수) 사태의 피해 현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보름간(5월 31일~6월 16일) 접수된 관련 민원만 2만2737건. 서구ㆍ영종ㆍ강화 일대 150여개의 학교는 생수급식을 하거나 외부에서 만든 음식을 공급받아야 했다. 인명피해도 있었다. 학생 중 일부는 식중독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피부질환이 발견된 100여명의 시민은 병원을 찾았다.

지역에서 식당ㆍ카페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붉은 수돗물 사태를 피하기 위해 시민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가계 살림이 팍팍한 시민들은 씻고 마시는 생수를 따로 구입해야 했고, 이물질을 걸러줄 값비싼 필터를 위해 지갑을 열어야 했다. 깨끗한 수돗물 공급이 도시의 필수기능이란 점을 떠올리면 피해가 막심한 건 당연한 일이다.

바꿔 말하면 인천 서구 일대 도시 기능이 멈췄다는 얘긴데, 정부 차원의 조사결과가 발표된 건 붉은 수돗물이 쏟아져 나온 지 20일이나 흐른 뒤였다. 발표 이후에도 시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여전히 붉은 수돗물이 나오고 있어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사태를 두고 “100% 인재人災”라는 결론을 내렸다. 불행과 불운이 겹쳐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인재에 반복되는 패턴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이드라인 무시 = 환경부의 조사 결과를 보자. 조사반은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무리한 수계전환’에 있다고 판단했다. 수계전환은 정수장들의 급수 구역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원래 인천의 피해 지역 수돗물은 서울 풍납취수장에서 취수해 성산가압장을 거쳐 인천 서구 공촌정수장으로 보내진다. 이들 취수장과 정수장이 전기설비 점검으로 가동을 잠시 중단한 사이 인천 남동구의 수산ㆍ남동정수장에서 수돗물을 대체(수계전환) 공급했는데, 사고는 이때 발생했다.

수계전환 시 가이드라인을 규정한 ‘국가건설기준’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명시돼있다. “유수방향 변경으로 녹물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배수를 실시해야 한다.” “제수밸브를 서서히 작동해 물때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물의 방향을 바꿀 때 물때나 녹물이 쓸려나올 수 있으니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배수하고 물의 흐름을 늦추란 소리다. 

하지만 인천시는 이런 절차를 무시했다. 10분 만에 밸브를 개방했다. 유량은 평소보다 2배(시간당 1700㎥→3500㎥)로 늘려 원래의 방향과 반대로 흘려보냈다. 유속이 초당 0.33m에서 0.68m로 배 이상 빨라졌다. 

이 때문에 관 바닥과 벽에 붙어 있던 물때와 녹물이 떨어져 나왔고, 수돗물에 섞였다. 기본적인 규정만 지켰더라도 시민들이 붉은 수돗물에 시달릴 일은 없었다.

■매번 놓치는 골든타임 =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건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더라도 이 사태가 20일 넘게 장기화할 이유는 없다. 수도관 내부의 물때가 붉은 수돗물의 원인이었다면 물때 섞인 물을 흘려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또 다른 문제점이 숨어있다. 인천시의 무능행정이다. 인천시는 적수를 방류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염된 물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적수 피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박남춘 인천시장이 적수 피해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수계전환이 이뤄진 5월 30일 공촌정수장과 이어진 서구 지역 배수지의 탁도는 평소(0.07NTU)보다 1.5〜3.4배(0.11~ 0.24NTU)까지 올라갔다. 그럼에도 인천시 공무원 중 이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탁도계가 고장 나있었기 때문이다. 고장난 탁도계는 배수지 탁도를 기준 이하로 측정했다. 인천시가 사건 발생 초기 “가정에서 수돗물을 계속 방류해 주고 아파트 공동 저수조 청소를 깨끗이 하면 붉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못된 처방이었다. 맑은 물로 걸러 가정에 보내는 역할을 하는 배수지가 되레 ‘적수 공급소’가 돼있었기 때문이다. 10만톤(t)에 가까운 물을 방류하고, 저수조 청소를 아무리 깨끗이 해도 적수가 계속 나왔던 이유다.

■인천시의 무능 행정 = 지난 4일, 인천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서구 일대 아파트 단지와 학교를 포함한 195곳의 수질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결과는 모두 적합. 수질검사를 실시한 아파트 단지엔 해당 내용의 게재를 독려했다. 하지만 이는 부메랑이 됐다. “수질분석 결과가 적합하다”는 발표와 달리, 붉은 수돗물은 여전히 철철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들이 인천시를 불신하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인천시가 시민들에게 “수돗물에서 이물질이 나오거나 필터가 바로 변색되는 경우 마시는 것을 삼가시기 바랍니다”는 문자를 보낸 건 그로부터 보름이나 흐른 19일일이었다. 인천시가 보름 동안 한 일이라곤 ‘수질분석 결과가 적합하다’란 말을 ‘수돗물 마시는 것을 삼가라’로 바꾼 것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1일엔 적수 발생 민원이 줄어든 걸 두고 “진정국면에 들어섰다”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오판이었다. 붉은 수돗물 사태는 지금 이순간까지 진정되지 않고 있다. 

■부족한 후속대처 = 정부 조사에 따라 사태 원인이 밝혀졌지만 ‘붉은 수돗물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약속한 해결 시점은 6월 말. 하지만 이 역시 목표일 뿐 달성 여부를 확신할 순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도시계획학 교수는 “1998년에 매설된 노후관로, 언제 고장날지 모르는 정수시설 등 핵심 수도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이라면서 “그렇다고 사고가 터졌단 이유로 체계적인 중장기 계획도 없이 개선에 나선다면 가뜩이나 복잡한 상수도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보상 문제도 난제다. 인천시는 정수기 필터 교체비용, 저수조 청소비용, 생수 구매비용 등의 증빙자료(영수증)가 있으면 실비를 보상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범위는 밝히지 않았다. 인천시 관계자는 “사태가 정상화된 뒤 보상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백억원대 보상비 역시 인천의 수돗물처럼 붉을 수밖에 없다. 혈세이기 때문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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