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OP? STORY!] AMD의 반란

‘PC의 두뇌’로 불리는 CPU 업계의 1인자는 십수년간 인텔이 차지해왔습니다. 그런데, 만년 2등이었던 AMD가 최근 신제품으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인텔 못지않은 성능을 갖춘 데다 가격은 절반에 불과해 소비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죠. 잠잠했던 CPU 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두 기업의 이야기, 더스쿠프(The SCOOP)가 살펴봤습니다.

암드가 발표한 라이젠 시리즈는 뛰어난 가성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사진=뉴시스]
AMD가 발표한 라이젠 시리즈는 뛰어난 가성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사진=뉴시스]

1981년, 인텔의 ‘IBM’이 사무실에 처음으로 보급된 지 38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PC는 사무 업무부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죠. 다른 전자기기에 비해 PC 이용자 중에선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유독 많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부품들을 구입해 직접 PC를 만드는 ‘조립형 PC’가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PC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소비자는 CPU(Central Pro cessing Unit·중앙처리장치)를 꼽습니다. CPU는 사용자로부터 입력받은 명령어를 해석·연산하고 그 결과를 출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뇌’에 해당합니다. 가령, 사용자가 ‘1 더하기 1’을 입력하면 CPU가 이를 연산해 ‘2’를 모니터에 출력하는 방식이죠.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볼까요? CPU의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는 크게 ‘코어(Core)’와 ‘스레드(Thread)’로 나뉩니다. 코어는 CPU 가 맡은 작업을 처리하는 역할을, 스레드는 데이터가 지나다니는 ‘통로’ 역할을 맡습니다. 스레드는 코어가 일을 할 때 팔과 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코어와 스레드가 많은 CPU일수록 처리속도가 빠릅니다.

가령, 코어가 4개인 ‘쿼드코어 CPU’는 코어 1개가 4번 처리해야 할 일을 1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스레드가 많으면 코어는 데이터를 좀 더 빨리 보내고 받을 수 있죠.

CPU 제조사들은 CPU의 코어와 스레드 수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첨단 반도체 기술이 집약된 만큼 더 좋은 CPU를 만들기 위해선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필요합니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인 인텔이 올 1분기에만 33억3200만 달러(3조8701억원)를 R&D 비용으로 투자한 것을 보면 CPU 개발의 어려움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높은 진입장벽 탓인지 인텔은 CPU 업계의 ‘1인자’로 십수년간 군림해 왔습니다. 2005년 5월 업계 최초로 코어가 2개인 ‘듀얼코어 CPU’를 출시한 게 시작점이었습니다. 2006년 1분기 51.6%였던 인텔의 PC용 CPU 점유율은 이듬해에 66.7%(1분기)로 수직상승했죠. 이후 ‘코어2 쿼드(코어 4개·2007년)’ ‘인텔 코어 i7(코어 8개·2010년)’ ‘인텔 i7 6950X(코어 10개·2016년)’ 등을 업계 최초로 선보이면서 시장 점유율을 82.5%(2016년 3분기 기준)까지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인텔에 가려 오랜 암흑기를 보냈던 기업도 있습니다. 바로 업계 2위인 AMD입니다. 2005년 당시 이 회사도 인텔과 거의 같은 시기에 듀얼코어 CPU를 출시했는데, 불과 며칠 차이로 ‘업계 최초’의 타이틀을 놓쳤습니다.

이때부터 AMD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출시한 최초의 옥타(8) 코어 ‘AMD FX’는 흥행에 실패했고, 과한 구조조정으로 후유증을 겪기도 했습니다. 2012년엔 부채가 25억 달러(2조8987억원)에 달해 파산설에 휘말리기도 했죠. 그 결과, 한때 48.4%(2006년 1분기)였던 PC용 CPU 시장 점유율은 10년 뒤 20.1%(2016년 1분기)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인텔의 독주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2017년 2월 AMD의 반격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6년간의 연구 끝에 출시한 신제품 ‘라이젠’은 기본 4코어 4스레드, 상위 모델 8코어 16스레드로 구성됐는데, 성능 테스트에서 비슷한 라인업인 인텔의 CPU(인텔 코어 i7)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뛰어난 성능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착합니다. 799달러(92만6440원·기본 모델 기준)로 당시 인텔 CPU의 절반에 불과했죠. 이 정도면 ‘기술 혁신’으로 불릴 만합니다.

높은 가성비를 갖춘 라이젠은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PC견적 사이트 다나와는 2017년 초 1.9%에 불과했던 AMD의 CPU 판매 점유율이 9월엔 23.4%까지 치솟았습니다. 다나와 관계자는 “당시 사양 높은 온라인 게임이 대거 출시되면서 PC를 새로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았다”면서 “원활한 게임 구동을 위해 비싼 그래픽카드를 사는 대신 CPU는 가성비가 좋은 라이젠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도 AMD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난해 초 구글이 인텔 CPU의 설계에 결함이 있어 보안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설계 결함에서 파생된 문제이므로 CPU를 교체하지 않는 이상 보안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인텔로서는 치명적인 사건이었죠. 반면 AMD는 CPU 설계 자체가 인텔과 달라 이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비슷한 보안 취약점이 있었지만 프로그램 업데이트로 해결 가능한 수준이어서 피해가 적었습니다.

AMD의 기술 혁신은 실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6년 42억7200만 달러(4조 9632억원)였던 매출은 지난해 64억7500만 달러(7조5148억원)로 51.5%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4억4000만 달러(5107억원)의 영업적자도 흑자(4억3900만 달러)로 전환했습니다.

물론 인텔의 반격도 만만찮습니다. 2017년 8월, 인텔이 발표한 8세대 CPU는 기존의 7세대 CPU 제품군보다 코어 수가 2개씩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그대로 유지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가격보다는 성능 향상에 치중했던 인텔의 행보와 달랐는데, 업계에선 AMD의 약진을 견제하려는 의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올해 두 기업은 업계 1인자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고 있습니다. AMD는 9월 신형 라이젠(라이젠9 3950X)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16코어 32스레드를 갖춘 이 모델의 가격은 749달러(86만8765원)에 불과합니다. 고사양의 게임 유저와 그래픽 작업이 많은 이용자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입니다. 인텔도 이에 질세라 전력효율과 성능을 대폭 향상한 모델(i9-9900KS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라이젠9을 끝으로 AMD는 인텔의 최신 모델인 9세대 CPU에 대응하는 라인업을 모두 갖추게 됩니다. 절치부심으로 도약에 성공한 AMD와 업계의 오랜 강자인 인텔. CPU 업계의 왕좌는 뒤바뀔 수 있을까요? 시장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IT전문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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