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해운동맹 효과

현대상선이 오는 2020년 4월 세계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에 합류한다. 20척의 초대형 선박을 발주해 몸집을 키운 게 효과를 본 셈이다. 업계 안팎에선 현대상선에 청신호가 켜졌다며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숱하게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현대상선의 과제와 미래를 취재했다. 

해운동맹사들과 선복을 공유하면 노선을 확대해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해운동맹사들과 선복을 공유하면 노선을 확대해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덩치 큰 놈이 유리하다’는 말은 해운사들 간의 경쟁에서도 통용된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벌크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물동량이 줄고, 운임이 하락하면서 단가를 낮추는 게 곧 경쟁력이 됐기 때문이다.  

대형 해운사들은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기 시작했고, 중소형 해운사들을 흡수해 몸집을 불려나갔다. 대형 해운사들 간의 해운동맹이 본격 강화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단독 운항으로는 배에 화물을 채워 넣기가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해운시장에서 가장 큰 해운동맹은 ‘2M’ ‘오션얼라이언스’ ‘디 얼라이언스’다.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 기준(선복량) 세계 1ㆍ2위 해운사인 머스크(덴마크)와 MSC(스위스)가 결성한 동맹이 2M이다. 오션얼라이언스엔 3위 코스코(중국), 4위 CMA CGM(프랑스), 7위 에버그린(대만) 등이 회원사로 있다.  

디 얼라이언스엔 5위 하팍로이드(독일)와 6위 ONE(일본), 8위 양밍(대만)이 있다. 3개의 해운동맹이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각각 99%, 82%가량이다. 이는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 1일 현대상선이 디 얼라이언스의 정식 회원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업계 안팎에 ‘희망가’가 울려퍼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기간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던 현대상선이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거다. 엄기두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은 “최악의 경우의 수만 아니면 현대상선은 2020년 하반기에 흑자로 전환할 거라 예상된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내놨다. 
 

2011년 이후 내리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현대상선이 2020년 변곡점을 맞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인데, 지나친 낙관론은 아니다. 해운동맹에 가입한 현대상선이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적지 않다.

해운동맹의 핵심은 선복(화물적재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노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선박을 회원사들이 나눠서 운항한다는 얘기다. 가령,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운항하는 노선에 12척의 선박이 필요하다면 4개 회원사가 3척씩 운영하는 셈이다. 당연히 선복량은 사전 협의에 따라 나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얻는 효과는 상당히 크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2만3000TEU(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발주했다. 12척과 8척은 유럽과 미주 노선을 독자적으로 운항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선박수였다. 


그런데 20척에 이르는 선박들을 동맹사들과 공유한다면 1개 노선밖에 만들지 못할 것을 2~3개 노선으로 늘릴 수 있다. 화물을 동맹사의 선박에 나눠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관계자에 따르면 디 얼라이언스 회원사들은 큰 틀에서 미주 동안과 서안, 북유럽, 지중해에 노선을 만들기로 합의를 봤다. 여기에 추가 논의에 따라 노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선복 공유하면 노선 2~3배 확대 

노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 품질이 좋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미국 노선만 운항하는 항공사와 미국~유럽~동남아를 오가는 항공사의 차이와 같다. 그만큼 현대상선으로선 화주를 확보하기에도 용이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상선이 홀로 모든 선복량을 메워야 한다는 영업부담도 줄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혹자는 “현대상선은 디 얼라이언스보다 훨씬 큰 2M과도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면서 회의론을 펼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현대상선이 2017년 4월 2M과 체결한 건 전략적 협력관계(2020년 4월까지)다. 해운동맹의 핵심이 ‘선복공유’인 반면, 전략적 협력관계는 ‘선복매입’이다. 현대상선과 2M이 전략적 협력관계였다는 말은 현대상선이 2M의 선복량 일부를 매입해 썼다는 얘기다.  

더 쉽게 말하면, 2M의 동맹사가 갖고 있는 선복의 일부를 임대해 사용했다는 거다. 선복을 전략적으로 공유하는 해운동맹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당연히 해운동맹 회원사들과 협의한 비용보다 비쌀 공산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전략적 협력관계가 ‘임대료를 내고 장사하는 것’이라면, 해운동맹은 ‘자기 건물에서 장사하는 격’이다”면서 “현대상선이 2M과 체결한 계약과 지금의 계약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리스크도 많다. 해운시장은 여전히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상선은 용선료 리스크를 털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운동맹을 통해 시너지를 내도 외부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참고 : 해외 해운사들은 경기가 어려울 때 값싸게 배를 만들어 원가를 낮춘 반면, 국내 해운사들은 배를 팔아 몸집을 줄였다. 다시 호황이 찾아왔을 때 국내 해운사들은 비싼 값에 배를 빌려야 했고, 당시의 비싼 용선료는 지금까지 리스크로 남아 있다.] 

현대상선이 풀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지난해 발주했던 20척의 초대형 선박이 2020년부터 인도된다. 문제는 늘어난 선복량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다. 유럽 노선만 따졌을 때 새로 투입되는 선박은 2만3000TEU급 12척이다. 기존에 현대상선이 유럽에서 운용한 선복량은 5000TEU급 11척에 2M에 빌린 게 전부다. 다른 동맹사들이 할당량을 더 받는다고 해도 간극을 메우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년간의 부진 씻고 회생할까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전보단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한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화물 확보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오히려 이제는 상황이 명쾌해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동안 선복량을 높이고, 해운동맹에 가입해야 하는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지만 이제는 화물을 확보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도 “2만3000TEU급 새 선박이 언제 나오냐고 묻는 화주들이 많은데, 이는 운임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해외의 본부장들도 화물을 채우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자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2M과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끝나는 2020년 4월부터 디 얼라이언스에 본격 합류한다. 해운동맹 결성과 선복량 확보, 환경규제에 따른 대비책 등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췄다. 이제 실적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 업계 안팎에선 2020년 하반기 흑자전환을 예상한다. 현대상선은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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