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우리 사회의 기생충님들
[Economovie] 우리 사회의 기생충님들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46
  • 승인 2019.07.11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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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기생충❶

‘기생충’이라는 말은 일단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토록 혐오스러운 영화 제목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도발적이다. 포스터의 글씨체도 ‘기생충체’로 꼬불꼬불 그려놓아 제목만 봐도 속이 스멀댄다. ‘기생충’에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프랑스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이나 프랑스 관객들은 꽤 비위가 좋은 모양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기생충들이 과연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 곳곳에 기생충들이 과연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회충·촌충·편충 같은 기생충들이 직접 출연하진 않으나 관람하는 내내 자연 도감에서 본 기생충들의 온갖 모습이 떠올라 떨치기 힘들다. 그 끔찍한 모습의 생명체들이 내 몸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고역이고 악몽이다.

‘무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의 관람을 주저하게 만든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아마도 계급의 문제를 다루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는 비좁은 기차간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의 모순과 투쟁을 적나라하게 다뤄 관람객들을 불편하게 했다.

후속작인 기생충 역시 제목부터 계급의 문제를 다루나 싶어 관람을 주저하게 한다. 계급의 문제는 인류 역사의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다. 끔찍한 기생충의 박멸이 어쩌면 인류의 종말까지 기대난망難望이듯, 끔찍한 계급투쟁의 종식 역시 우리 사회의 기대난망인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영화 속 '지하실 남자'는 부잣집의 양식을 몰래 먹으며 기생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속 '지하실 남자'는 부잣집의 양식을 몰래 먹으며 기생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기생충의 삶의 방식은 무척 독특하다. 대부분 자연 생태계나 세상의 삶의 방식은 ‘공생共生’의 관계이고 상호의존적이다. 벌과 나비는 꽃의 꿀을 따먹는 대신 꽃나무가 열매를 맺게 해주고 종족을 번식시켜 준다. 악어새와 악어의 관계도 상호의존적이고 상부상조相扶相助적이다. 인간들의 관계 역시 자연의 일부인 만큼 대부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적 생명체인 기생충만은 자연계의 상식에서 벗어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가 한국어와 영어를 이중국어로 채택하고 있는 듯, 영화 포스터에도 그것이 해외홍보용도 아닐텐데 한국어 제목 아래 영어 제목이 병기된다. 영화 기생충도 ‘PARASITE’를 친절하게 달아놓았다.

PARASITE의 그리스 어원은 ‘남의 식탁에 차린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기생충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듯하다. 몸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생충 먹으라고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은 없다. 기생충은 자신의 노력 없이 먹을 것을 얻지만, 그 보상으로 인간에게 해주는 것은 그야말로 전무하다. 말 그대로 ‘남의 식탁에 차린 음식’을 먹고 산다. 

기생충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과 같은 종種의 양분을 훔쳐먹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과 다른 종의 것을 훔친다는 것이다. 기생충은 기생충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인 동물들에 기생한다. 

의원 나리들은 국민의 세금을 자신들의 돈으로 오인하곤 한다. [사진=뉴시스]
의원 나리들은 국민의 세금을 자신들의 돈으로 오인하곤 한다. [사진=뉴시스]

영화 속 ‘지하실 남자’는 영양 상태 좋은 사람의 창자 속에 자리 잡은 기생충처럼 부잣집 지하 벙커 같은 지하실에 자리 잡는다. 자신과 같은 종인 ‘가난한 사람’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종인 부잣집의 양분을 꺼내 먹으며 산다. 사장님·사모님이 지하실 남자 먹으라고 열심히 장을 봐 냉장고를 채워놓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는 그것을 나눠 먹으며 살아간다. 워낙 부잣집 살림이라 우유 한 통, 소시지 한 통 정도 사라지는 것쯤은 표시도 안 난다. 당연히 기생충을 의심하지도 않고 구충제를 사러 약국으로 달려가지도 않는다.

기생충이 서식하는 곳이 우리 몸이나 영화 속 사장님 댁뿐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 ‘다른 사람 먹으라고 식탁에 열심히 차린 음식’을 먹고 살면서 아무런 보답도 안 하는 기생충들이 과연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 번 ‘피 같은 돈’을 국회의원 놀고 먹으라고 세금으로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의원·구의원님들 해외 유람 다니라고 내는 세금도 아닐 것이고, 기관장들 품위 있게 지내라고 내는 세금도 아닐 것이다. 

나라를 위해 차린 식탁이지 그들을 위해 차린 식탁이 아니다. 내 몸을 위해 먹은 음식이지 기생충 먹여 살리려고 먹은 음식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구충제가 필요 없는 사회일까. 우리 몸이 아직은 견딜 만한 걸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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