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빅데이터, VR 현장에 도입
우리나라는 왜 현신기술 도입 더딘가

한국 건축ㆍ건설 산업의 위상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빅데이터ㆍ가상현실(VR) 등의 기술을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 현장에 적극 도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밋밋한 2D 도면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공기를 맞추는 것도 어려운데, 태평하게 그런 기술을 언제 배워 접목하느냐”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건축세상은 이미 변했다. 스케치업이란 3D 프로그래밍 솔루션과 BIM이란 기법이 그 중심에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혁신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설왕국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3D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스케치업은 BIM 툴로도 활용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3D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스케치업은 BIM 툴로도 활용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은 고객(클라이언트)이 본인이 원하는 집의 구조를 3D로 만들어서 건축가에게 내미는 시대입니다. 그분들이 쓰는 프로그램이 ‘스케치업’이고요. 건축가마다 설계툴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오토캐드로 도면을 그리고 스케치업으로 3D 모델링을 합니다. 비전문가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죠.”

2000년대 초반, 설계업계에 3D 모델링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3차원의 생생한 입체모델을 건축주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 프로그램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D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모형을 제작하는 데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만성 공기工期 부족에 시달리는 설계업체로선 3D 모형 사진에 시간을 투자하는 건 난감한 일이었다. 

그때 등장한 혁신기술이 바로 ‘스케치업’이다. 이는 고민에 빠진 건축가들에게 훌륭한 솔루션이 었다. 무엇보다 간단하고 직관적이었다. 면을 잡아끌면 붙일 수 있고, 선을 긋기만 하면 잘라낼 수 있었다. 당연히 모형을 제작하는 시간도 크게 단축됐다. 국내 건축업계가 스케치업을 두고 “3D 모델링의 접근장벽을 낮췄다”고 평가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를 씁쓸하게 보는 이들도 있다. 스케치업의 활용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됐다는 이유에서다. 한 중견 건축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세계 첨단의 건설업체들은 기획과 설계를 할 때 3D 모델링을 넘어 빅데이터까지 활용한다. 설계분야에서도 가상현실 시스템이 사용된다는 얘기다.” 그는 여기서 활용되는 기술을 ‘빌딩정보모델링(BIMㆍB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라고 정의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흥미롭게도 첨단기술인 BIM도 스케치업으로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선 스케치업을 활용하는 이들이 드물다. 건축가들이 스케치업의 활용범위를 ‘3D 모델링’ 정도로 좁혀놓은 결과로 보인다.” 

자! 이제 질문을 던져야 겠다. 스케치업이 3D 모델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란 건 알겠는데, BIM은 대체 뭘까. BIM은 말 그대로 건축의 정보를 다루는 기법이다. 가령, 한 건물의 3D 모형을 예로 들어보자. 건물의 외형뿐만이 아니라 벽ㆍ기둥ㆍ바닥ㆍ창호ㆍ덕트ㆍ배관 등 디테일한 설비도 훤히 보인다. 3D이니까 별 새로울 건 없다. 

그런데 각각의 설비를 누르면 자재ㆍ물량ㆍ설치비용 등과 같은 현실적인 수치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BIM’이다. 기초ㆍ구조ㆍ설비ㆍ외장ㆍ마감 등 건물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한눈에 보여주는 기법이다. BIM은 모든 게 연결돼 있다. 하나의 정보를 바꾸면, 다른 정보에도 영향이 간다. 오차를 하나만 수정해도 모든 설계에 적용된다는 얘기다. 당연히 완공 후 건물을 유지ㆍ관리하는 데도 유용하다. 

빅데이터 활용하는 선진국 건설사들 

BIM은 선진기술은 맞지만 낯선 건 아니다. 국내에서도 공공사업 위주로 보급되고 있다. 2009년 용인시민체육공원 턴키사업에서 BIM이 처음 도입됐고, 2012년부터 조달청에서 발주하는 5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BIM 적용을 의무화했다. 

2016년엔 맞춤형서비스로 집행되는 모든 공사에 BIM을 쓰게 했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발표한 제6차 건설기술진흥기본계획(2018~2022)에도 ‘BIM 기술 활용 유도’가 비전으로 설정돼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BIM의 수준은 높지 않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시공현장에선 여전히 2D 기반의 설계 방식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BIM을 프로그래밍하는 솔루션 중 하나인 스케치업의 활용범위가 3D 모델링으로만 좁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에서 2D를 사용하는데, 3D를 굳이 활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의 설계 담당자는 “스케치업으로 만든 BIM을 두꺼운 영화 시나리오에 비유하면, 2D 도면은 쪽대본에 불과한데도 국내 건설 현장에선 쪽대본만 붙잡고 영화를 만드는 상황”이라면서 “새로운 혁신이 ‘내 역할을 뺏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일부에선 “스케치업이 BIM 툴로서 기능이 부족하다”면서 불만을 터뜨린다. 하지만 이는 스케치업의 현주소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스케치업의 역사를 살펴보자. 2000년 스타트업 앳라스트 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해 발표한 스케치업은 2006년 구글이 인수했다. 당시 구글은 유료버전인 ‘프로’와 무료버전인 ‘메이크’를 출시했는데, 국내에선 무료버전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무료버전은 기능에 한계가 많았다. 이때만 해도 스케치업은 BIM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BIM은 정말 어렵나

하지만 2012년 글로벌 3D BIM 솔루션 기업 ‘트림블’이 스케치업을 인수한 지금은 다르다. 트림블의 여러 솔루션과 연계되면서 다양한 BIM 기능이 추가됐다. 한국 스케치업 공식총판인 빌딩포인트코리아의 강소연 부장은 “BIM을 둘러싼 업계의 두려움을 스케치업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금방 배울 수 있고, 기본 원리가 간단해 응용이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BIM 시장의 규모는 40억 달러(2016년 기준)나 된다. 202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19.3%에 달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시장에서 뒤처지면 한국의 건축ㆍ건설 산업의 위상도 흔들릴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이 어렵고 두렵다”는 건 핑계다. 

스케치업이란 간단한 솔루션이 이미 시장에 있고, 스케치업으로 만들어지는 BIM은 3D 설계의 기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가 BIM과 스케치업의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 건설업도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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