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R&D 혁신하고 기업연구소 불 밝히자
[양재찬의 프리즘] R&D 혁신하고 기업연구소 불 밝히자
  • 양재찬 편집인
  • 호수 347
  • 승인 2019.07.15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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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 한국 R&D 투자의 패러독스
한국은 정량적인 기준으로 연구성과를 평가한다. 시간이 걸리는 기초연구는 홀대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 R&D 투자 우선순위를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다.[사진=연합뉴스]
한국은 정량적인 기준으로 연구성과를 평가한다. 시간이 걸리는 기초연구는 홀대받을 수밖에 없다. 국가 R&D 투자 우선순위를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다.[사진=연합뉴스]

대다수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우리 과학기술계의 민낯이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세계 1위다. 정부와 민간을 합친 R&D 비용 총액은 세계 5위, 인구 1만명당 연구원 수도 세계 3위권이다.

그렇다면 연구개발의 질적 성과 및 혁신가치 창출 성과는? 부끄럽게도 하위권이다. SCI(국제과학논문인용색인)급 논문 게재와 특허등록 건수가 각각 10위, 4위인 반면 연구원 1인당 논문 인용 수는 35위, R&D 투자 대비 기술수출액 비중은 30위에 머물렀다.

투입은 많은데 질적 성과는 별로인 이른바 ‘코리안 패러독스’의 대표적 사례다. R&D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많은데, 왜 일본이 수출규제에 돌입한 반도체 소재ㆍ부품의 국산화는 진전이 없는가. 이 사례를 놓고 국가 R&D 사업 전반을 실증 분석해보자. 

학계는 관료주도형 연구통제의 한계를 지적한다. 논문 게재나 특허등록 건수 등 정량적이고 획일적 기준으로 연구성과를 평가하니 시간이 걸리는 기초연구는 홀대받는다. 실패하면 불이익이 주어지니 위험을 무릅쓴 도전적 연구는 외면당한다. 정부가 연구분야와 투자규모, 정부출연기관 인사까지 좌우하니 주문받은 과제를 폐쇄적으로 진행한다. 그 결과, 단기 성과를 내고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풀기 쉬운 R&D에 치우친다는 것이다.

산업계는 R&D에도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불화수소(에칭가스)도 국산화 작업이 진행됐는데 규제에 가로막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정부가 소재ㆍ부품 생태계 구축을 위한 120개 R&D 과제 중 하나로 뒤늦게 선정해 지난해부터 예비타당성(예타) 심사를 받고 있다. 그 첫단계인 기술성 평가를 얼마 전 통과했다. 예타 문턱을 넘어서도 예산 편성을 감안하면 2021년에야 R&D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 움직임은 강화된 환경규제에 부닥쳤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규제가 강화돼 취급시설 기준이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늘어났다. 국내 한 소재 가공업체가 불화수소 생산을 검토하자 반도체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환경규제로 어려우니 포기하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은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며 신규투자를 꺼리는 요인으로 꼽는 대표적 규제다. 청와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긴급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도 거론됐다. 정부는 화관법ㆍ화평법에 담긴 규제조항이 글로벌 추세에 비춰 과도한지 여부를 빨리 판단해 규제완화 여부를 결론내야 할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롱 리스트’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소재ㆍ부품은 한둘이 아니다.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우리의 급소를 찌르고 숨통을 조일 수 있음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및 롱 리스트의 국산화에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 조사하고 해결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기업 간 기술협력과 산업간 융합이 요구되는 신기술ㆍ신산업 분야의 ‘규제 불확실성’ 해소가 시급하다.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에서 R&D 분야를 예외로 인정해 달라는 산업계 건의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4만여 기업연구소가 참여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R&D 분야를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에 추가하거나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기간을 6개월~1년으로 확대해 달라고 건의했다. 

R&D는 과제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고 실험을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다. 핵심 연구자가 퇴근하면 대체인력 구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이런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주 52시간제를 일괄 적용하면 오후 6시에 연구소 불이 꺼지고 기술경쟁력은 저하될 것이다. R&D 분야에 대해선 주 52시간 기준을 월 단위(4주 208시간)로 환산하는 등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만나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적확한 조언이다. 4차 산업혁명이 그냥 우리 손에 잡힐 리 없다. 경제와 산업의 기초체력은 R&D에서 나온다. 국가 R&D 투자 우선순위를 재점검하고, 기업연구소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자.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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