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1] 버냉키 QE3 리스크

▲ 벤 버냉키 FRB 의장이 9월 13일(현지시각)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3차 양적완화(QE3)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이 3차 양적완화(QE3) 실시를 전격 선언했다. 글로벌 시장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나 버냉키는 속이 타들어간다. QE3의 경제적 효과는 물론 정치적 역학관계까지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버냉키 리스크를 분석했다.

헬리콥터 벤의 시작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헬리콥터를 띄워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 2002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이사였던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침체기 대응법을 단호하게 밝혔다.

시장 사람들은 환호했다. 버냉키가 FRB 수장이 되면 ‘침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침체를 극복하는 데 ‘돈’만큼 좋은 약은 없다. 시장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별명을 선물했다. ‘헬리콥터 벤.’

롬니 의식해 QE3 카드 던졌나

 
버냉키는 시장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자 그는 공언했던 데로 2조 달러가 넘게 실린 ‘헬리콥터’를 두 차례 띄웠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말 1차 양적완화(Q1)조치로 1조7500억 달러, 2010년 11월 2차 양적완화 때는 6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소심해진 버냉키 “소심해졌다.”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가 터지자 국제금융시장의 눈이 버냉키에 쏠렸다. 3차 양적완화(QE3)를 실시해 달라는 구원의 눈초리였다. 하지만 버냉키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헬리콥터에 올라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했다. QE1·2의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2%에 머물렀다. 실업률은 8%를 웃돌았다. 미국경제가 FRB의 통화정책만으로는 회복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수치였다.

하지만 버냉키가 QE3 카드를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올해 11월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통화정책을 함부로 썼다간 대선정국에서 ‘나라 곳간을 탕진했다’는 비판을 받을 게 뻔했다. 더구나 미국은 재정절벽(fiscal cliff)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재정절벽이란 정부의 재정 지출이 갑작스럽게 줄거나 중단돼 경제에 충격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버냉키의 행보를 위축시키는 보고서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월 5일 ‘스필오버 보고서’를 통해 미국에 ‘재정절벽’이 발생할 경우 세계경제는 물론 미국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재정절벽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2012년 경제성장률이 현재 2.3%에서 0%로 떨어진다. 특히 재정절벽의 ‘꼬리위험’(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충격을 주는 위험)이 현실화된다면 미국경제는 정체국면을 보이고, 내년 초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때만 되면 ‘헬리콥터’를 외쳤던 버냉키가 2011년 이후 QE3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QE3 효과 두고 갑론을박

▲ 롬니 미 공화당 대선후보는 “대통령에 오르면 버냉키부터 자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랬던 버냉키가 9월 13일(현지시각) QE3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헬리콥터를 띄우기 위한 ‘시동 걸기(jump start)’를 선언한 셈이었다. 버냉키는 9월 12~13일 이틀간 열린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실업률 상황에는 여전히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가 남아 있다”며 QE3를 실시해 월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는 한편 초저금리 기조도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도 노동시장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주택저당증권(MBS)을 계속 사들이고 추가 자산 매입에 나서는 동시에 또 다른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버냉키가 말한 중대한 우려는 이런 내용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잃어버렸던 800만개의 일자리 가운데 아직 절반도 회복하지 못했다. 8.1%에 달하는 실업률은 올해 초부터 거의 변화가 없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QE3의 세부내용은 경제전문가들조차 깜짝 놀랄 만했다. 커먼펀드의 수석 투자전략가인 마이클 스트라우스는 “이번 조치는 경제에 추가적인 탄환을 제공할 것”이라며 “시장이 기대하던 것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TD 아메리트레이드의 수석 파생상품 전략가인 J.J. 키너한은 아예 찬사의 말을 던졌다. “오늘은 버냉키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자. 그는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했는데, 오늘 확실히 그렇게 했다.”

 
시장은 환호했다. 국제금융 이코노미스트들은 QE3 규모가 5000억 달러에 달할 경우 실업률은 0.1%포인트 떨어지고 국내총생산(GDP)은 0.2%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경제의 화려한 부활을 QE3가 도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버냉키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첫째는 정치적 이유에서 QE3를 실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 리처드 피셔 총재가 QE3 실시 직전인 9월 6일 언론을 통해 밝힌 경고 메시지를 들어보자.

“FRB가 대선을 앞두고 경기부양책을 내놓는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 QE3를 실시해 미국경기가 회복되면 당연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다.

버냉키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를 보면 피셔 총재의 경고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는 버냉키를 탐탁치않게 여긴다. 롬니는 폭스 비즈니스 네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은행 수장 자리에는 자신과 경제적 견해를 공유하는 어떤 이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버냉키를 재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달러 강세와 미국경제가 하강하고 있지 않다는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취할 인물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버냉키의 전략과 일치하지 않는다. 버냉키의 QE1·QE2 실시로 약弱달러 현상이 더 강해졌다.

▲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재임시절 경제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닷컴버블의 붕괴를 예상하지 못해 그 명성에 흠이 갔다. 버냉키가 그린스펀의 전철을 밟을지 주목된다.
그렇다고 미국경제가 확실하게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도 아니다. 버냉키로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던 2006년 1월 FRB 의장에 취임했으며 연임에 성공해 2010년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FRB 의장의 임기는 4년으로 버냉키 의장의 임기는 2014년 1월 만료된다. 만약 롬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버냉키는 졸지에 FRB 의장직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 그것도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퇴진하는 굴욕을 당하면서 말이다.

버냉키의 QE3 실시 이유로 롬니가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 공화당이 버냉키가 QE3를 발표한 직후 발끈하고 나선 까닭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 캠프는 “QE3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위한 구제금융”이라며 “QE3는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비난했다. 또 “더딘 성장과 저조한 국민소득, 심각한 실업난에 4년이나 시달려온 미국은 더 이상 인위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치를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부를 창출해야지 돈을 찍어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공화당 의원도 일제히 반발하며 QE3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고 나섰다.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의장은 “QE3는 거꾸로 말하면 오바마 행정부의 실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고 스펜서 바커스 의원도 “QE3는 오바마의 고용정책이 잘못됐다는 기소장”이라고 비판했다.

버냉키의 고민은 또 있다. QE3가 과연 효과를 발휘해 미국경제에 활력을 넣을 수 있느냐는 거다. QE2의 효과가 QE1에 비해 떨어졌던 것처럼 QE3의 효과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실제로 리먼사태에서 비롯된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았다는 QE1과 달리 QE2는 인플레이션 우려만 높여놨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QE3 실시로 유동성이 확대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질 것을 우려한다. 또한 풀린 유동성이 실물부문에서 투기 분위기를 조장하고, 달러화 약세에 따른 환율 전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정부의 부채문제도 버냉키로선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미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를 줄이지 못하면 국가 신용등급을 현재의 Aaa에서 Aa1으로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9월 현재 국가 총부채는 16조157억 달러(약 1경8000조원)에 이른다.

지난 10년 동안 거의 3배로 늘어났다. 올해 연말까지 대출 상한선인 16조4000억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빚을 내 ‘돈’을 뿌린다는 것은 폭탄심지에 불을 붙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미국 신용평가사인 이건-존스는 QE3가 실시될 경우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건-존스는 “QE3 실시가 실질 GDP 확대나 국가부채 삭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며 “물가를 상승시켜 미국 소비자에게 새로운 부담을 줄 것이며, (신용등급) 조치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도 버냉키의 앞길을 막을 수 있다. 이번 QE3는 유로존 재정위기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미국이 양적완화에 들어가면 달러가치가 급락하는 반면 유로화는 절상된다.

미국제품은 값싸게 수출돼 활로를 찾을 수 있지만 유로존 국가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QE3 효과가 미미해 미국의 신용리스크를 부추긴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인플레이션 유발 우려 많아

미국의 신용리스크가 유로존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커서다. 그러다 유로존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시 미국이 충격을 받는다. ‘삼각 부메랑’ 효과다. 한상훈 노무라증권 부사장은 이를 “월가에서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라고 했다. 미국과 유로존이 신용 리스크를 주고받으면서 경기가 동반 악화되는 것이다. 한국은행 정규일 국제경제연구실장은 “미국 사정만 놓고 보면 양적완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유로존 위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버냉키는 QE3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경기가 살아나면 영웅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FRB 의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정치적 상황도 혼란스럽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면 버냉키의 수명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롬니가 당선되면 버냉키의 퇴출은 시간문제다. 그의 카드는 ‘신神’의 한수가 될까, 희대의 패착으로 역사에 남을까. 버냉키는 미국이 그런 것처럼 ‘벼랑’에 서있다.

☞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란?
중앙은행의 정책으로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국채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것을 말한다. 2008년 말 실시된 미국의 1차 양적완화(QE1)는 1조7500억 달러를 풀었고, 2차 양적완화(QE2)는 2009년 11월 실시됐다. 6000억 달러의 유동성이 공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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