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의 시대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는 온라인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오프라인에도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오프라인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다. 귀찮아서도, 기다려서도 안 된다. 맞춤형 제품도 있어야 한다. 이는 매장, 판매원, 재고라는 유통의 전통적 3요소를 부정하는 트렌드다. 더스쿠프(The SCOOP)와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가 무인無人, 무재고無在庫, 줄 없는 매장의 비밀을 취재했다.

아마존고 매장엔 판매원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트렌드의 매장이다.[사진=뉴시스]
아마존고 매장엔 판매원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트렌드의 매장이다.[사진=뉴시스]

세계 최고 유통기업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아마존’이 2016년 12월에 선보인 무인스토어 ‘아마존고’. 매장 크기는 170㎡(약 51평)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크지 않은 매장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컴퓨터 센서와 딥러닝 기술이 결합된 첨단 스토어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저스트 그랩 앤 고(Just Grab and Go)’다.

사고 싶은 물건을 집은 다음 집으로 가라는 것이다. 번거로운 ‘결제과정’, 계산대 앞 ‘줄서기’는 이들에게 용납되지 않는 일들이다. 매장 안에는 판매원이나 계산원은 없다. 대신 매장 천장에는 검은색 블랙박스 모양의 센서 100여개가 바삐 움직인다. 이 블랙센서들은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쇼핑하는 소비자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아마존고의 간단한 이용방법은 많은 언론에서 다뤘기 때문에 생략한다. 

다만, 필자가 주목하는 건 미래 스토어의 방식, 그리고 거기에 숨은 경영요소다. 아마존고의 모습을 형상화했던 건 2011년이다(정확하게 말하면 아마존고가 아니라 미래 스토어다). 그해 12월 세계적인 경영 관련 전문 잡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는 미래 스토어의 가상 시나리오를 언급하면서 가장 중요한 3가지 경영 요소를 손꼽았다. 그 세가지는 ‘특별한 경험, 여유, 편리함’이었다.

이 요소를 아마존고에 빗대보자. ‘아마존고’는 소비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결제를 위해 기다릴 필요 없으니 여유롭기도 하다. 현금을 굳이 가져갈 이유도 없어 편리하기까지 하다. 어떤가. 필자가 지금 말하려는 대목이 이것이다. 무인스토어, 그거다. 필자가 몇 년 전 어떤 책에 썼던 글 한토막을 소개한다.

전세계의 유통 소비시장은 ‘무인無人 스토어, 무재고無在庫, 줄 서기 없는 매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무無’의 시대다. 그런데 무의 시대는 함의가 크다. 기존 유통경영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매장’ ‘상품 재고’ ‘판매원’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어서다. 이래도 될까 라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고전하는 걸 보니 믿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의 시대가 열린 까닭은 뭘까. 일부 전문가는 ‘세대 변화’에서 답을 찾는다. 이젠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 generation). 이 세대는 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다. 주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기기와 친숙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개인적이고, SNS 공간을 즐긴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부분은 다른 데 있다. 소비 행태다. 스마트기기를 어떤 세대보다 일찍 접했으니 온라인에만 집착할 것 같은 데 그렇지 않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쪽 채널을 쉽게 오간다. 이를테면 크로스 쇼핑이다. 이는 이들의 톡특하면서도 자기맞춤형 성향과 궤를 함께한다. 남들과 다른 뭔가를 찾을 수 있다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상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2018년에 출간된 「마이크로 트렌드X」라는 책에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를 묘사해놨다. 필자가 이 묘사를 보고 생각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젊은 소비자에게 결제시간은 가치 없는 타임에 불과하다.[사진=뉴시스]
젊은 소비자에게 결제시간은 가치 없는 타임에 불과하다.[사진=뉴시스]

기존 세대들은 ‘포드 시스템과 포드경제’에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꾀했다. 하지만 맞춤형 소비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스타벅스 시스템’과 ‘스타벅스 경제’를 선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동안은 자동차는 흑색, 흰색 따위만 가능할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온갖 색깔로 만들어진 맞춤형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바로 여기에 ‘무의 시대’가 열린 이유가 숨어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더 성장할수록 오프라인은 ‘온라인화’해야 한다. 판매원이 귀찮게 하는 건 절대 금물이고, 결제를 위해 줄을 서거나 기다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매장은 클 필요도 없고, 재고를 쌓아놓을 필요도 없다. 그저 소비자가 슬쩍 왔다 갈 만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제시한 미래 스토어, 아니 지금의 아마존고처럼 말이다. 실제로 수많은 글로벌 유통업체들은 매장은 매장인데 이전과 다른 매장을 만들고 있다. 스웨덴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의 사례를 들어보자. 대형 매장을 갖고 있는 이케아는 2017년 가을 ‘이케아 플레이스’ 앱을 론칭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방을 비추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가구를 실제처럼 배치해볼 수 있는 방식의 앱이었는데, 기술은 다름 아닌 증강현실(ARㆍAugmented Reality)이었다. AR을 활용한 앱의 효과는 상당했다.

소비자는 굳이 매장에 가지 않아도 가구의 크기와 색상은 물론 가구와 방이 어울리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가구를 놓을 장소와 크기를 줄자로 재서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야 하는 번거러움도 사라졌다. 이케아도 이점이 있었다. 매장에 가구를 줄줄이 디스플레이할 필요가 사라졌다. 매장의 크기보단 효율성을 강조할 수 있게 된 것도 변화였다. 

다른 사례도 있다. 미국의 대형 유통채널 ‘노드스트롬’은 2017년 노드스트롬 로컬(Nordstrom Local)이란 독특한 이름의 매장을 냈다. LA에서 첫 매장을 열었는데, 면적은 280㎡(약 84평)에 불과했다. 노드스트롬 매장의 평균 넓이 1만3000㎡(약 3940평)의 2% 수준에 불과했지만 특징이 있었다. 상품의 재고를 절대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곳에 들른 소비자는 주로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수령하거나 반품한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은 모두 ‘견본품’으로, 소비자에게 ‘쇼잉의 기회’만 준다. 만약 소비자가 원하면 개인 스타일리스트들이 나와 의견을 주고, 원하는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른바 소비 트렌드 중 하나인 ‘쇼루밍showrooming(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본 뒤 실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것)’ 방식을 오프라인 매장에 적극 접목한 것이다. 

규제 탓할 때 아니야 

한때 유통업계를 호령하던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디스플레이 방식을 바꾸는 등 애쓰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니 대형유통채널 사람들을 만나보면 규제가 어쩌니, 정부가 어쩌니 불만도 불평도 많다. 그들의 불평불만이야 들어줄 수 있지만 안타까운 것도 있다. 

그 누구도 오프라인 매장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화하겠다, 오프라인 매장을 혁신하겠다고 밝힌 유통그룹 총수나 CEO가 있었는지, 필자는 가물가물하다. 지금의 무의 시대다. 없어야 살고, 줄일수록 생존력이 생긴다. 우린 과연 이 콘셉트를 읽고 있을까.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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