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보복까지 나설까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보복에서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시장에선 일본이 수출 규제에 이어 금융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그런 악수惡手를 두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대책은 세워놔야 한다”고 꼬집었다. 겁 먹을 필요는 없지만 철저한 대비책은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경제학자 4인에게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을 물어봤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가능성은 낮지만 대비책은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사진=뉴시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사진=뉴시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 지난 1일, 일본은 대한對韓 수출관리 규정을 수정해 발표했다.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리지스트 등을 규제했는데, 한일 무역분쟁의 서막이었다. 상황은 극단적으로 흘렀다. 지난 12일 양국 실무진의 회의가 열렸지만 입장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한국에선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방국)에서 제외하는 추가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아베의 전략’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처음엔 참의원 선거 승리를 노린 아베의 정치적 꼼수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이는 오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아베가 노리는 건 경제다. 수출 보복 조치에 경제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2010년 이후 우리나라의 대일對日 무역수지 적자폭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한일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설득력이 없지 않다. 실제로 2010년 361억1198만 달러(약 42조3000억원)을 기록했던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적자 규모는 지난해 240억7516만 달러(약 28조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일본의 입장에선 흑자폭이 감소하는 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인환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폭이 감소한 국가 중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의 수출 제제에 경제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 상위국은 중국·사우디라이비아·아랍에미리트·호주·카타르·러시아 등이다”면서도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분쟁에선 이기기 힘들고, 나머지 국가는 대표적인 원자재 수출국이라 무역분쟁을 일으키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금융보복까지 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금융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일본은 금융보복까지 단행할까.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버텨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풀기 위해선 국내에 풀린 일본계 자금의 규모를 살펴봐야 한다. 금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진출한 일본 은행의 여신 규모는 5월 말 기준 24조6877억원에 이른다. 전체 외국계 은행 여신 규모 98조868억원의 25.2% 수준으로, 적지 않은 규모다.

국내 진출한 16개국 은행 중 두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전체 금융으로 범위를 넓히면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말 기준 예금은행의 총여신 규모는 1637조770억원이다. 일본계 은행의 여신규모 24조6877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보유 주식의 규모도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6월말 기준) 1656조원의 0.78%로 전체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6월말 기준 일본 투자자가 보유한 국내 상장증권 규모도 12조9860억원으로 전체 외국인 주식 보유액의 2.3%에 머물러 있다. 일본의 금융 보복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가 많지 않은 이유다. 금융보복의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인교 인하대(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일본의 금융 보복 가능성을 쉽게 예단하긴 어렵다”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상황에서의 금융제재가 국내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일본도 반일 감정만 악화시킬 수 있는 악수를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소영 서울대(경제학) 교수도 “한일 무역분쟁 금융 보복으로 번지는 등 단기간에 악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일본의 금융 보복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자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일본자금 차입 규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되지 않는다”며 “자금유동성·리스크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거래가 중단되더라도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며 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일본의 금융 보복 가능성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일 무역분쟁이 장기화하면 국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산업경영학과)의 말을 들어보자.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가 보유한 외환이 충분해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관건은 한일 무역분쟁이 본격화·장기화했을 때다. 일반적으로 외환거래 규모는 무역의 10배 이상이다. 그만큼 많은 돈이 오간다는 의미다. 무역분쟁의 장기화로 크레디트라인(신용공여)에 이상이 생기면 자금을 굴려야 하는 기업은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국내 실물 경기의 둔화가 금융 보복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으로선 더 큰 파급효과를 노릴 수 있어서다. 정인교 교수는 “금융 보복의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금 회수·만기연장 거부 등”이라며 “금융 공격의 시점은 시장의 불안이 높아졌을 때”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거나 다른 산업으로 확대할 경우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대를 밑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공급차질로 3분기 반도체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은 0.19%포인트 감소할 것”이라며 “공급차질이 1분기만 발생해도 올해 GDP 성장률은 2.0%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경영학부) 교수는 “가장 큰 우려는 일본의 금융 보복을 신호탄으로 다른 국가의 자금이 동요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한일 무역분쟁의 여파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면 외국계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전세계 최대의 순채권국(2017년 기준 약 3519조원 규모)인 일본이 한국시장을 이탈하면 글로벌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할 수도 있다는 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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