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의 시대❷ 쇼루밍

미래 시장은 ‘무無’의 시대일 것이다. 많은 유통기업들이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면서 매장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방법에 골몰하는 이유다. 여기에 통용되는 기술은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등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 없이도 ‘무의 시대’에 동참할 수 있다. 쇼루밍으로 작은 매장 시대를 활짝 연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재고 없는 매장의 비밀을 취재했다. 

매장을 혁신하는 데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사진=뉴시스]
매장을 혁신하는 데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사진=뉴시스]

전세계의 유통 소비시장은 ‘무인無人 스토어, 무재고無在庫, 줄 서기 없는 매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무인스토어 ‘아마존고’가 인기를 끌자 기존 유통 경영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매장’ ‘상품 재고’ ‘판매원’의 개념도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빅데이터ㆍ사물인터넷(IoT)ㆍ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집약된 기술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첨단 기술만 필요한 건 아니다. 전략을 살짝 바꿔도 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기본 바탕은 ‘무無’다. 미국 백화점의 대명사인 ‘노드스트롬(Nordstrom)’의 혁신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백화점은 2017년 10월 매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실험적 매장’을 시작했다. ‘노드스트롬 로컬(Nordstrom Local)’이란 이름의 매장이었는데, LA에서 첫 매장을 열었다. 면적은 280㎡(약 84평)로 다른 노드스트롬 매장의 평균 넓이 1만3000㎡(약 3940평) 대비 2% 수준에 불과했지만 특징이 있었다.

상품의 재고를 절대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점포를 방문한 소비자는 온라인 주문상품을 수령하거나 반품할 수 있다. 하지만 매장엔 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은 일종의 견본품이다.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는 개인 스타일리스트들이 나서 의견을 준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 LA 지역 9곳의 노드스트롬 매장이나 웹사이트 등을 통해 결과를 알려준다.

‘쇼루밍(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본 뒤 실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것)’ 방식을 적극 접목한 것이다. 기대효과는 세가지다. 무엇보다 온라인 구매에 익숙한 소비자를 매장에 끌어들일 수 있다. 새로운 판매 방식으로 도입하면서도 매장 공간을 최대한 작게 만들 수 있다. 무재고를 채택해 매장 효율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노드스트롬이 도입한 ‘쇼루밍’ 방식의 쇼핑은 온라인 남성의류 전문업체 ‘보노보스(Bonobos)’와 흡사해 보인다. ‘보노보스’는 2017년 6월 ‘월마트’가 3억1000만 달러에 인수한 온라인 중심의 쇼핑사업을 하는 업체다. 이 업체 역시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셔츠ㆍ재킷ㆍ바지 등을 입어볼 수 있는 일종의 쇼룸 매장을 개점하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노드스트롬과 보노보스의 사례에서 보듯, 시장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쇼루밍’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방식이고, 두 회사가 도입한 건 ‘쇼루밍’에 흥미로운 관점을 붙인 것뿐이다. 늘 그렇듯 생존의 기술은 ‘첨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 더스쿠프 전문기자 tiger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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