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지수 객관적인가
허점 많은 평가 방법ㆍ기준
법 어겨도 우수기업으로 둔갑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수준이 개선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매해 발표하는 동반성장지수 결과를 두고 나오는 얘기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와 동반위의 평가에 따라 상생협력 이행 수준이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 대기업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의문이다. 결과를 왜곡하는 허점이 너무 많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동반성장지수에 숨은 착시현상을 취재했다.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에 따라 최우수 등급을 받는 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업들의 상생협력 수준이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다.[사진=연합뉴스]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에 따라 최우수 등급을 받는 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업들의 상생협력 수준이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다.[사진=연합뉴스]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밑단이 단단해야 한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기 전에 전제돼야 하는 조건이다. 건축물이든 산업구조든 마찬가지다. 중소기업들이 밑단을 단단히 지탱하지 않으면 작은 위기에도 산업 전체가 흔들리게 마련이다.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만들려면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는 건데, 최근 산업 안팎에 ‘상생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생경영의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거다. 당연히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을 끊고, 중소기업을 육성ㆍ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매해 5월 발표되는 ‘동반성장지수’의 추이를 유심히 봐야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지수가 대기업들의 상생경영 수준을 가늠할 만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2011년 처음 발표된 이 지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을 촉진하고, 그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었다. 대기업들의 공정거래협약 이행 수준(공정거래위원회 평가)과 중소기업들의 체감도(동반성장위원회 조사)를 합산해 산출한다. 그 결과에 따라 평가대상 기업들은 최우수ㆍ우수ㆍ양호ㆍ보통ㆍ미흡 등 5개 등급으로 나뉜다. 

2011~2018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를 놓고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수준은 크게 개선됐다. 최우수ㆍ우수 등급을 받은 대기업 수가 매해 증가한 게 그 근거다. 최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은 2011년 6개에서 지난해 31개로, 우수 등급 기업은 20개에서 64개로 늘었다.

동반위 관계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수준은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참고 : 2011~2012년 우수ㆍ양호ㆍ보통ㆍ개선으로 구분됐던 등급은 이후부터 최우수ㆍ우수ㆍ양호ㆍ보통으로 변경됐다. 2016년엔 미흡 등급이 추가됐다.]

하지만 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 기업들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상대적’이라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최우수 등급은 전체의 15%가 받고, 우수 등급과 양호 등급은 각각 35%가 받는다. 나머지 하위 15%는 보통 등급으로 구분된다. 평가대상 기업이 늘어날수록 최우수ㆍ우수 등급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1~2018년 최우수ㆍ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은 평가대상 기업의 증가량과 비례해 늘었다. 

동반위와 공정위는 “동반성장지수 평가가 또다른 제약을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는 건 기업별로 줄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동반성장을 촉진하려는 거다. 등급이 낮더라도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보단 상생의지가 강한 기업들이다.”

이렇게 되면 최우수ㆍ우수 기업이 증가한 만큼 상생 수준이 높아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상생 수준이 향상됐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악화됐을 가능성도 있어서다. 이를 정확히 따져보려면 동반성장지수의 구체적인 수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상생 수준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순 있다. 중소기업들의 체감도를 통해서다. 공정위의 대기업 공정거래협약 이행 평가 점수는 공개되지 않지만 동반위의 중소기업 체감도 점수는 공개된다.

동반위에 따르면 중소기업 체감도는 2013년(75.9점) 이후로 증가하다가 2015년(82.3점)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심지어 지난해(79.3점) 중소기업 체감도는 2013년 이후 최저점을 기록했다. 최우수ㆍ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은 늘었지만 중소기업의 평가는 달랐다는 거다. 

 

동반성장지수 평가에 따라 분류된 기업 등급을 신뢰하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결격 사유가 있어도 손쉽게 우수기업으로 둔갑할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에 1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2013~2016년 27개 하도급 업체에 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금을 낮게 책정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하도급법을 위반한 행위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해당 기간인 2013~2014년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에 따라 우수 등급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뿐만이 아니다. 2016~20 17년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두산인프라코어도 같은 기간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무단으로 유용한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동반성장지수를 산출하는 데 허점이 있다는 방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를 “정량 평가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기반으로 평가를 한다. 해당 기업이 법을 위반해도 감점을 받는 데 그친다. 감점을 받은 건 다른 항목에서 메우면 그만이다. 문제는 상생 관련 직원 교육처럼 실질적인 효과를 알 수 없거나 실제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도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선지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는 실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 수준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에선 평가대상기업 중 79.8%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사용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표준계약서를 쓴 중소기업은 53.3%에 불과했다. 현금성 결제수단으로 대금을 지급한다는 곳도 각각 93.4%와 70.0%로 차이가 컸다.
 
공정위의 설명처럼 ‘이미 잘하고 있는 기업들’만 평가 대상에 올랐기 때문일지, 아니면 허점이 많은 평가 방법과 기준이 만든 왜곡일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상생협력 수준이 한단계 높아졌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중소기업이 느끼는 온도차는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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