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제력 집중 괜찮나

2007년 10대 재벌그룹은 500대 기업에서 43.8%의 매출 비중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10년여, 10대 재벌그룹의 매출 비중은 52.0%로 부쩍 늘었다. 10대 재벌그룹이 매출 비중을 높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경영혁신일 수도, 과감한 투자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대기업에 몰린 경제력이 또다른 부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소기업의 의지를 꺾는 대기업 비대증을 취재했다. 

기업 전체 매출에서 대기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하지만 실제 개별 기업들의 매출 격차도 줄었는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기업 전체 매출에서 대기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하지만 실제 개별 기업들의 매출 격차도 줄었는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2000년 이후 신생 대기업이 없다.” 국내 재계와 산업계 안팎에서 나도는 얘기다. 일부에선 이를 규제를 풀어달라는 기업들의 볼멘소리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르게 풀이할 수도 있다. 중소ㆍ중견기업들의 성장길이 막혔다는 건 그만큼 대기업에 집중된 경제력이 분산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500대 기업 동태적 변화분석’이란 보고서를 통해 이런 사실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과 2017년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비교했을 때, 순위가 높을수록 순위 변동이 적었다. 2000년에 50위권이었던 기업들은 96%가량이 2017년에도 500대 기업에 들었다. 51~100위 기업은 약 88%, 101~200위권은 74%로 떨어졌다. 201~300위권과 301 ~400위권은 40%대에 그쳤고, 401~500위권 기업들은 약 17%만이 500대 기업에 남았다.
 
같은 기간 신설된 법인 중엔 85개 기업이 500대 기업에 새로 포함됐다. 500대 기업 중 17%가량이 신생기업이니 적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중 기존의 재벌그룹 계열사와 금융그룹 계열사, 합작기업과 외국계 기업을 제외하면 순수 신생기업은 24개에 불과하다. 500대 기업 중 4.8%만이 2000년 이후에 신설된 기업이라는 거다. 

반면 10대 재벌그룹은 500대 기업 내 계열사를 106개(2007년)에서 139개(2017년)로 늘리며 세를 넓혔다. 그럴수록 매출 비중도 커졌다. 2007년 10대 재벌그룹이 500대 기업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43.8%였지만 10년 만에 52.0%로 부쩍 늘었다. 경제력을 보유한 곳은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가지지 못한 곳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선 반론을 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줄고 있다는 거다. 격차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체 기업 매출에서 대기업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65.5%)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6년엔 58.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대기업의 매출 비중이 감소한 게 중소기업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수에 따라 개별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12년 이후 대기업 매출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개별 중소기업의 평균 매출은 무작정 증가세를 띠진 않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 매출 차이는 2012년 7753억원에서 2015년 4806억원으로 좁혀졌지만, 2016년 다시 5585억원으로 벌어졌다.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개선되는 듯 보였던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을 위한 의지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무엇보다 제조원가의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던 비율이 줄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18년 제조원가가 오른 업체는 49.8%에서 53.8%로 4.0%포인트 늘었다. 하지만 그중 납품단가가 오른 곳은 17.8%에서 18.5%로, 0.7%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어음으로 결제하는 곳이 많다. 2017년만 해도 현금성 결제수단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대기업은 77.9%(어음 결제 21.8%)까지 늘었지만 2018년엔 다시 70.0%(어음 결제 28.7%)로 떨어졌다. 어음으로 결제한다는 건 대금을 받는 날짜가 늦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금성 결제수단의 경우 평균 32.0일이면 대금을 받지만, 어음은 106.4일이 걸린다. 법에서 정한 대금지급기일은 60일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어음으로 결제를 받으면 필요한 비용을 제때 조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면서 “그럴 땐 대부분 빚을 지고 자금을 미리 융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표준하도급계약서 없이 계약을 진행하는 것도 고질적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한 하도급업체는 53.3%에 그쳤다. 그 외에는 개별양식을 사용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계약을 맺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1차 협력사일 때의 얘기다. 2차 협력사는 표준계약서 사용 비율이 49.9%, 3차 협력사는 30.7%에 불과했다.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추후 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의 불공정거래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하도급업체는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다. 불공정거래 관행이 늘고,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노력이 줄면 그 피해는 중소기업에 돌아간다. ‘2000년 이후 신생 대기업이 없다’는 말은 기업생태계를 바꿔나가려는 대기업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는 건 전형적인 대기업 때리기”라는 일부 재계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여전히 경제력은 대기업에 집중돼 있고, 집중된 경제력은 또다른 부富를 부르게 마련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