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조의 퇴직연금 길라잡이❷

우리나라에 퇴직금 제도가 도입된 지 60년이 넘었다. 이후 법 개정과 보완을 거쳐 2005년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됐다. 2005년 163억원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지난해 190조원으로 늘었지만 퇴직연금제도가 노동자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자의 니즈보다는 금융회사의 잇속을 챙기는 데 훨씬 더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퇴직연금이 금융사의 전유물이 된 까닭을 취재했다. 엉클조의 퇴직연금 길라잡이, 두번째 편이다. 

2005년 노동자의 노후를 책임질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됐지만 노동자의 니즈는 여전히 뒷전이다.[사진=뉴시스]
2005년 노동자의 노후를 책임질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됐지만 노동자의 니즈는 여전히 뒷전이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에 퇴직금 제도가 도입된 것이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퇴직에 관심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된 2005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퇴직금 제도의 역사는 이보다 더 긴 1953년 5월(근로기준법 제정)이다. 따지고 보면, 퇴직금 제도가 등장한 지 66년이나 흐른 셈이다. 다만, 그때 제도는 권장사항일 뿐 의무규정이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퇴직금을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었다. 그러던 1961년 근로기준법을 개정, 30인 이상 사업장에 강제로 적용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퇴직금 제도의 근본이 바뀐 건 1997년 외환위기였다. 20세기 최대 국난이었다는 외환위기의 후폭풍은 거셌다. 한보철강부터 대우·쌍용·해태·진로·뉴코아·거평 등 내로라하는 그룹이 줄줄이 무너졌다. 30대 기업 중 11곳도 버티지 못했다. 방파제를 잃은 노동자는 허허벌판으로 쫓겨났다.

퇴직금은 언감생심, 그나마 조금이라도 받은 사람이 부러움을 샀다.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기업이 사내에 쌓아둔 퇴직금을 기업운영자금이나 토지·건물·기계 등 생산시설을 매입하고 유지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퇴직금이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퇴직금 중간정산 등으로 퇴직금이 생활자금으로 소진되는 예도 숱했다. 퇴직금이 노동자의 노후 소득원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거다.

퇴직연금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커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2000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7.2%에 달하면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서 퇴직연금제도의 필요성이 커졌다. 실제로 2004년 10.6%에 불과했던 연봉제 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2017년 21.3%로 두배 이상 커졌다. 반면, 임금노동자의 평균근속 연수는 6.08년(73개월·통계청 근로형태별 평균근속기간 2018년 8월 기준)에 불과했다.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퇴직연금제도를 논의하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노사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2003년 7월 합의에 실패한다. 그러자 정부 주도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됐다.

그 결과물이 2004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2005년 12월 1일부터 시행)’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시작된 퇴직금제도 고민의 결과물이 퇴직연금제도인 셈이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쉽게 정착되지 않았다. 대기업은 적립해야 할 퇴직금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중소기업은 자금의 한계를 이유로 퇴직금의 사외 예치를 거부했다. 법적 강제가 없었다면 퇴직연금제도는 지금까지 정착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퇴직연금제도가 이렇게 힘들게 구축됐음에도 노동자의 관심은 여전히 낮다. 자신의 퇴직금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 어떻게 쌓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엔 정부의 미흡한 정책이 한몫했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초기, 은행·증권·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관심을 가졌다.

기존 퇴직보험 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이전하는 영업이 활발했던 이유다. 하지만 ‘꺾기’ 등 불법과 편법을 가장한 영업이 지속되면서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정부가 201 2년 7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을 통해 퇴직연금 모집인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보험설계사 조직을 공식적으로 동원해 퇴직연금제도를 알리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 퇴직연금 모집인이 받는 수수료가 연 0.2%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단순계산으로 연 10억원의 퇴직연금을 유치해야 2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는 얘기인데, 수수료에 민감한 설계사들이 퇴직연금을 등한시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 퇴직연금제도의 취지를 노동자에게 제대로 알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영업조직 확대 등 정부가 법적으로 관리하기 좋은 방법으론 퇴직연금제도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노동자)의 니즈를 전혀 건드릴 수 없어서다. 현재 퇴직연금사업자로 지정된 금융회사가 퇴직연금 관리에 소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직연금 홍보 제대로 안 된 이유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연 0.2~0.6%(DB형 기준)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서다.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을 잘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기보다 퇴직연금 규모만 늘리는 데 열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금융회사만 배를 불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쉽게 말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니 퇴직연금의 수익률이나 노동자 인식 변화 등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퇴직연금이 노동자의 노후를 책임지는 든든한 대비책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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