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걷다❶ 아현동 웨딩거리와 가구거리

도시는 길로 연결되고, 길은 변화를 품는다. 낡은 건물이 해체되면 도시의 새로운 상像이 형성된다. 서대문구·중구·마포구의 끄트머리와 닿아있는 아현동은 경계에 있는만큼 다양한 변화가 서로 부대끼고 있다. 웨딩거리는 웨딩거리대로, 가구거리는 가구거리대로 시대흐름에 발을 맞추거나 몸을 낮추고 있다. 국내 최고령 고가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우린 아현동에서 어떤 변화를 볼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곳을 걸어봤다. 

사는 모습이 변하면 사람이 만드는 건물이 달라지고 거리의 모습이 바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는 모습이 변하면 사람이 만드는 건물이 달라지고 거리의 모습이 바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도로가 서대문구와 마포구를 나눴다. 여기는 신촌로. 지하철 2호선 이대역 4번 출구다. 신촌을 등 뒤로 하고 걸으면 웨딩타운이 나온다. 이 길은 ‘아현동 가구거리’까지 이어진다. 장장 1.6㎞. 천천히 걸으면 약 30분이 걸린다.

기자는 8년 전인 2011년에도 이 길을 걸었다. 그때 대학 선배들은 “저녁엔 이대역에서 아현역을 걸어서 가지 말라”고 충고하곤 했다.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신입생들은 신촌에서 술을 자주 마시고 서울 동쪽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대역까지 걸었고 가끔 말이 길어지거나 과제를 망치거나, 썸을 타는 사람이 있으면 시청역이 목적지가 되는 일도 있었다. 한시간이 꼬박 걸리는 길이었다.

그때는 고가도로가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고가도로였다. 차를 타면 ‘길’이지만 걸을 땐 ‘벽’이었다. 고가도로가 중앙에 있어 양쪽 건너편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됐다. 길은 항상 반쪽이었고 좁아 보였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고가도로 한쪽을 두고 다른 한쪽은 웨딩타운, 다른 한쪽은 술을 파는 방석집이 있었다는 거다. 대낮에도 고가도로에 가려져 그늘이 졌던 술집의 음침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가도로는 2014년 보행에 방해가 되고 낡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그로부터 5년여, 그곳에 다시 섰다. 도로의 양옆은 여전히 ‘웨딩타운’, 여기서부터 걸어보기로 했다.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 2011년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로드뷰’와 지도회사 맵젠의 조한별씨가 만든 서울 건물 나이 지도다. 누군가는 물을 거다. 왜 다시 섰느냐고. 그래, 목적을 분명히 해야겠다. 옛 모습이 그립거나 끔찍해서 다시 선 게 아니다. 향수 따위를 팔고 싶은 생각도 없다. 기자는 웨딩타운에서 가구거리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 도시의 개발과 변화, 그리고 그 속의 삶을 보고 싶었다. 자, 이제 걸어보자.

■1975년 10월 23일생 = 지하철 2호선 이대역은 북쪽의 서대문구와 남쪽의 마포구가 맞닿는 곳이다. 신촌로를 경계로 두 공간은 자치구가 나뉜다. 양옆이 모두 ‘웨딩타운’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시작점부터 다르다. 지퍼를 잘못 끼웠을 때의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리이다 보니 ‘시작점’도 제각각이었다.

서대문구 웨딩타운은 지하철 코앞에서 시작되지만 마포구 웨딩타운은 아래로 300m쯤 더 가야 했다. 7월 16일 아침 8시쯤 찾은 거리에서는 보도블록을 새로 까는 일이 한창이었다. 이른 시간인 탓에 거리를 걷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흙먼지가 날렸다.


거리의 변화, 그 속의 삶

지하철 2호선 이대역 4번 출구 앞에서 조금 위로 향하니 웨딩타운임을 알리는 전광판이 입구에서 깜빡였다. 이곳부터 메이크업숍과 드레스, 맞춤양복, 한복을 파는 가게가 이어졌다. 이미 1990년대 최전성기를 맞은 이후 쇠락하는 곳으로 꼽혔지만 여전히 웨딩타운 가게들의 내부는 깔끔했다. 벽을 맞대고 드레스숍이 붙어있던 2011년과 비교하면 듬성듬성한 상태가 됐지만 때맞춰 가게를 열 준비가 돼있었다.
 

‘웨딩타운’의 ‘숍’은 대부분 1층에 있다. 단층 건물이거나 높아도 5층 이하의 건물이 대부분이다. 새 건물은 많지 않다. 거리의 나이는 어느 정도나 됐을까. 서울 건물 나이 지도를 이용해 신촌로 면에 접한 건물들의 나이를 대략 추정해봤다. 가장 나이가 많은 건물은 한국전쟁 이전인 1941년에 만들어져 올해로 79살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은 2018년생으로 올해 2살이다. 계산해보니 평균 ‘생일’은 1975년 10월 23일. 나이는 마흔 다섯쯤이다. 마포구의 웨딩타운 건물도 비슷했다. 1980년 11월 7일생. 마흔. 거리는 중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재건축은 30년이 된 건물부터 시작한다. 그 점을 고려하면 이 거리는 충분히 바뀔 만했다. 실제로도 웨딩타운의 반쪽이 있는 마포구 염리동은 지난해부터 땅이 뒤엎어졌다. 재개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변화가 눈으로도 보였다. 철거와 건설을 위한 가림막이 세워졌고 그 옆에는 미용실이 사라지고 전에 없던 ‘함바집’이 생겼다. 함바집과 공사장 사이에서 덤프트럭 두어 대가 몰려나왔다.


덤프트럭이 아현역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포털 ‘로드뷰’로 확인했던 2011년 10월의 풍경과 달라진 게 뭐가 있나 살펴봤다. 지난 겨울에 있었던 드레스숍 두곳은 건물 리모델링 때문인지 자리를 내줬다. 알루미늄 창틀이 끼워져 있던 빌딩은 흰색 PVC 창틀로 바뀌었다. 리모델링 후 ‘아네스’라는 간판이 붙었던 매장에는 ‘임대문의’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팍팍한 자영업의 현실이 밀려들어왔다.
 

그렇다고 거리가 마냥 죽은 것 같지도 않았다. 새롭게 만들어진 건물 1층엔 다시 들어온 드레스숍도 있었다. 새 빌딩의 고층은 학원과 병원으로 채워졌다. 어떤 매장은 이대 근방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 문구를 달아두기도 했다. 혼인 인구 자체가 줄어들어 시장이 작아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불혹’의 거리, 새 옷을 입다


웨딩타운의 시작은 명확하지만 끝은 불분명했다. 대신 가구거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전, 교집합처럼 등장하는 가게가 있다. 도배나 장판을 취급하는 대리점이다. ‘쇼윈도’에는 ‘한화L&C’ 테이프가 붙어있지만 간판을 보면 ‘현대L&C’다. 2018년 현대리바트는 한화L&C를 인수했다. 인테리어 시장이 커지는 것을 예측하면서였다.

맞은편 거리를 보니 인테리어 시장의 기대가 높은 것은 당연해 보였다. 웨딩타운 뒤편으로 새로 만든 원룸, 투룸 건물이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노란 바탕의 현수막이 바람에 날렸다. ‘임대 문의’. 새로운 집이 눈을 뜨면 생기는 데다 이 거리에 모인 건물들은 ‘중년’에 접어들었다. 고칠 구석도, 인테리어 수요도 많았다.


■바뀌지만 바뀌지 않은… = 왜 가지 말라는 만류에도 무리를 지어 이 길을 자주 걸었을까. 걷다 보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대역부터 아현역까지는 완만한 언덕길이다. 경사가 심하지 않다 보니 높은 굽을 신어도 무게 중심이 앞으로 크게 쏠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한 평지도 아니다. 걷는 데 지루함이 덜하다.
 

❶웨딩타운의 시작점은 도로를 사이에 놓고 서로 달랐다. ❷리모델링한 빌딩은 새 임차인을 찾고 있었다. ❸새 건물 1층에 다시 드레스숍이 들어왔다. ❹방석집이 있던 건물의 전력 계량기는 아예 돌아가지 않았다. ❺이대역부터 아현역까지는 완만한 언덕길로 연결된다. ❻3년 후면 가구거리는 주상복합 상가 안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❶웨딩타운의 시작점은 도로를 사이에 놓고 서로 달랐다. ❷리모델링한 빌딩은 새 임차인을 찾고 있었다. ❸새 건물 1층에 다시 드레스숍이 들어왔다. ❹방석집이 있던 건물의 전력 계량기는 아예 돌아가지 않았다. ❺이대역부터 아현역까지는 완만한 언덕길로 연결된다. ❻3년 후면 가구거리는 주상복합 상가 안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웨딩타운에 있는 건물들은 폭이 좁다. 구획이 넓지 않아 짧게 걸어도 가게의 종류가 계속 바뀌었다. 게다가 웨딩타운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해선 ‘쇼윈도’가 필요하다. 밖으로 드러나는 내용물이 있다 보니 눈이 심심하지 않다. 건축가 유현준이 자신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언급한 “자주 변할수록 보행자가 걷는 데 흥미를 느낀다”는 설명 그대로다.

밤에 걷기 꺼려졌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는 듯 보였다. 기다랗게 방석집이 늘어서 있던 건물은 문을 닫았다. 건물 가까이 가니 뜯겨 나간 전력계량기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방석집의 존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밤이 되자 검은 시트지로 가려진 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때때론 문을 살짝 열고 거리를 살피는 이도 있었다. 바뀌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모습 바꾸는 ‘가구의 메카’ = 다시 길을 따라 걸었다.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면 웨딩타운의 색이 옅어진다. 아현동 가구거리와 섞이는 지점은 지하철 2호선 ‘아현역’이다. 굴레방다리사거리가 나오는 동시에 가구거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살짝 안쪽으로 꺾인 골목길로 들어가면 그곳부터 시작이다. 앞서가던 커플이 한참 동안 주방 인테리어 매장의 쇼윈도를 들여다봤다. 신혼부부가 될 사람들에게는 알맞은 동선이다. 웨딩타운에서 가구거리로 이어지는 길의 흐름은 그만큼 자연스럽다.


그 바로 옆에는 일찌감치 개발이 끝난 아파트 단지 ‘e편한세상신촌’이 있다. 새 아파트 단지는 대부분 가구 업계에는 호재다. 아현동 가구거리 근방 1㎞ 내에 새 아파트 단지만 3년 새 3000가구가 넘게 생겼다. 가구거리는 봄바람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가구거리 상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가구거리가 시작되는 골목으로 불쑥 들어가 큰 간판끼리 붙어있는 매장을 찾았다. 일곱개 가구점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아현동 가구거리 상인 회장인 박인국 대표는 이 일곱개 매장 중 하나인 가구명장의 사장이다. 올해로 57년째 장사를 이어왔다.

매장에 들어서니 테이블이나 책장, 식탁에 놓인 화려한 모양의 말 장식품이 눈에 들어왔다. 박 회장은 여행을 다니면서 12지신과 관련된 장식품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사가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

 

“여기는 3개구가 맞물리는 곳이다. 저쪽은 마포구, 이쪽은 서대문구, 또 저쪽은 중구. 3개구에 가구거리가 걸쳐져 있다. 장사가 한창 잘되던 1980년대에는 전국에 가구를 날랐다. 아현동에서 여수까지 장롱을 배달했다. 우리 가게에만 트럭이 다섯대 있었다. 인사동에도 큰 가구거리가 있었지만 남은 건 우리뿐이다.”

웨딩타운에서 본 대로 이곳도 재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곳은 주상복합이 들어서고 새 임차인을 받을 상황이었지만 ‘가구의 메카’를 그대로 떠날 수 없다는 상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서대문구청이 방향을 틀었다. 몇년 후에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주상복합의 1~3층에 가구거리 상점이 그대로 들어선다. 이사를 가야하겠지만 새 장소를 찾기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곳곳에 빈 매장이 있었고 ‘임대문의’를 알리는 현수막이 많았다.


상전벽해까진 아니더라도…

가구거리에 가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둘씩 경기가 어려워지고 가구를 오프라인으로 사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빈 가게도 늘었다. ‘벌교꼬막’집은 그런 와중에 생긴 곳 중 하나다. 2018년에 문을 열었다. 이전까진 종합가구판매점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벌교꼬막집 역시 경기침체를 온몸으로 느끼는 듯했다. 매장을 줄인 듯 간판도 줄어 있었다. 그 요상해진 간판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 사장이 밖으로 나왔다. “꼬막은 철을 타는 재료라서 사시사철 장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치킨까지 팔게 됐다. 꼬막 장사는 2년을 했는데 그사이에 단골이 생겼다. 마니아가 있으니 꼬막 사업을 접기는 아쉬웠다.”

사람이 늙듯이 사회도 산업도 늙는다. 밤늦게 마포구 쪽 가구거리의 축대 위에서 불빛으로 들어찬 도로를 바라봤다. 시몬스갤러리가 있었던 건물에는 브랜드 디자인 회사가 새로 둥지를 텄다. 거창하게 건물을 세우지 않더라도 거리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이게 젊어진 건지 늙은 건지도 모른채.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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