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새 3번의 경제보복, 처참한 ‘쳇바퀴’ 
3년새 3번의 경제보복, 처참한 ‘쳇바퀴’ 
  • 김정덕 기자
  • 호수 349
  • 승인 2019.07.29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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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역대 정부와 경제보복

일본의 수출 규제에 한국경제가 흔들린다. 그러자 정부를 향한 비판도 거세다.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3년새 3번의 경제보복을 당할 정도로 우리는 ‘무역보복’에 시달려왔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일부 국제경제 전문가는 “급한 불만 꺼지면 정치권이 숱한 대책을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벌어졌다”고 꼬집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경제보복의 실태를 취재했다. 

보호무역이 확산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전문가 조언은 이미 2013년에 나왔다.[사진=뉴시스]
보호무역이 확산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전문가 조언은 이미 2013년에 나왔다.[사진=뉴시스]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놓고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전망이다. 지난 7월 4일 일본은 한국으로 수출하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ㆍ불화수소ㆍ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을 규제한 데 이어 12일 한일 실무급 회담 이후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화이트리스트는 무기개발에 사용할 수 있는 물자나 첨단기술 등 전략물자를 해당국가에 수출할 때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목록이다. 쉽게 말해 수출 규제 품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아쉽게도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일본을 어르고 달래 수출 규제 중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맺은 위안부 문제 합의 이행이나 지난해에 있었던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등에 불만을 갖고 이번 수출 규제에 나선 게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일본은 정확한 근거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북한으로 전략물자가 넘어갔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일본이 ‘정치적 문제’를 트집 잡아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는 거다.

이 때문에 과거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행태를 꼬집은 현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일본 역시 대화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적극적으로 제소하거나,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거나, 소재산업을 육성하는 정도다. 정부는 지난 7월 23~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치기도 했다. 반도체 소재ㆍ부품ㆍ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 이상 투자해서 소재산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는 대안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이런 비판을 제기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미봉책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는 거다. 

시계추를 5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3년 1월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은 ‘세계경기침체로 불어닥친 보호무역주의 한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이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억제되는 듯했지만, 잠재돼 있던 보호무역주의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G20 국가들이 2010년 4분기부터 2011년 1분기까지 6개월간 122건의 무역제한조치를 취했다. 이전 6개월(54건)보다 2배 이상 많다. 2011년 4분기부터 2012년 1분기까지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124건의 조치를 취했다.” 연구원은 이를 근거로 “WTO의 관할 범위를 벗어난 보호무역주의 조치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호무역 경고한 보고서

연구원은 또한 “WTO와 별도로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 동향을 분석하는 민간기구 GTA(Global Trade Alert)에 따르면 현재 외국의 상업적 이익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조치 건수는 총 1878건이며, 가장 최근 G20 정상회의(2011년 11월) 이후 도입된 조치만 해도 361건”이라면서 “우리 상품을 막는 보호무역주의 조치도 2010년 225건에서 2012년 467건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의 결론은 “무역규제의 타깃이 한국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이미 6년여 전에 무역 최전선에 있는 전문가들이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분위기가 감지되니 대비하라’고 조언한 셈이다. 

그로부터 3년 후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6년 중국, 2018년 미국, 2019년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무역규제책을 발동했다. 명분은 모두 자국의 이익이었다. 중국의 무역규제조치 앞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가 있었고, 미국의 무역규제조치 앞에는 전면적인 보호무역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있었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 앞에도 과거사 관련 재판이 있었다. 이는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선 끔찍한 상황이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조심하라”고 조언했음에도 세계 각국의 무역규제조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무역규제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정확히 조사 발표한 자료는 없지만, 여러 기관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중국이 한국 관광을 규제정책을 폈던 2017년 한해에만 최소 10조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미국이 지난해 1월 철강제품에 25%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하자 또 피해를 봤다. 우리나라는 관세 대신 2015〜2017년 70% 수준으로 수출물량을 조절하는 쿼터제에 합의했는데, 그게 되레 독毒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워싱턴 무역관이 올해 2월 미국 상무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쿼터제 대신 관세를 택한 중국과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수출량이 더 감소했다. 미국의 철강제품 규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경고음 누가 무시했나

다시 시계추를 현재 시점으로 돌려보자. 우린 지금 일본의 수출 규제에 직면해 있다. 재계와 정치권은 “맞대응하자”“조율하자” 등 제각각의 목소리를 낸다. 문제는 지금의 선택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느냐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수출이 근간인 우리나라에 무역규제는 위험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무역규제 리스크를 줄일 방법은 너무나 많다. ‘각국의 상황을 수시로 모니터링해서 정확한 판세를 읽어야 한다’ ‘수출입 다변화로 특정 국가에 집중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기술경쟁력을 확보해 제품과 서비스를 고도화해야 한다’ ‘외교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 ‘다자간 무역협정이 필요하다’ ‘FTA와 같은 무역협정을 꼼꼼히 살펴 협정에 보장된 장치를 적극 활용해 규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 ‘내수를 늘려야 한다’ 등 수많은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와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만 해결한다고 무역규제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사진=뉴시스]
일본의 수출 규제만 해결한다고 무역규제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사진=뉴시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새롭게 등장한 대안들이 아니다. 중국발 무역규제가 있었을 때도, 미국발 무역규제가 있었을 때도, 무역규제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한번쯤은 다 나왔던 얘기들이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이 급한 불만 꺼지면 이 대책들을 뒷전으로 미뤄놨을 뿐이다. 

무역규제 상시 준비 필요

그렇다면 이런 대책들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는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 직속의 무역규제 전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입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무역규제로든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WTO와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각종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이제는 이 질서가 깨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과연 정부 차원에서 모니터링을 해보기는 했나. 아니다. 무역협회와 같은 민간에서 해왔을 뿐이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하려하니 근시안적인 대응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역규제가 있을 때 그때그때마다 무슨 대책을 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뀐 후에도 흔들리지 않을 무역규제 대응조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이 조직을 운영하려면 각 부서별 협력도 필요하기 때문에 최소한 국무총리 직속기관이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를 보면서 “경제보복 지긋지긋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3년새 3번의 보복을 당한 한국, 이젠 대책을 세울 때도 되지 않았는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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