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원의 사람] 현대차 정의선과 청운동 자택
[성태원의 사람] 현대차 정의선과 청운동 자택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350
  • 승인 2019.07.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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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적장손임을 대내외에 선포하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체취가 묻어있는 ‘청운동 자택’이 3세 정의선(49) 현대차 수석부회장에게 넘어갔다. 지난 3월 정몽구 회장의 증여를 통해서다. 이는 상당한 의미가 내포돼 있는 증여다. 정 부회장의 가업家業 승계시기에 가문과 역사를 상징하는 창업주의 집을 물려받았다는 건 ‘적장손嫡長孫’임을 대내외적으로 선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 ‘청운동 자택’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청운동 자택의 상관관계를 취재했다. 

정의선 시대가 활짝 열렸다. 사진은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넥쏘 절개차를 설명 중인 정 부회장.[사진=뉴시스]
정의선 시대가 활짝 열렸다. 사진은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넥쏘 절개차를 설명 중인 정 부회장.[사진=뉴시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할아버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38년간 살았던 집을 물려받아 화제다. 아버지 정몽구(81)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지난 3월 이 집을 증여받은 사실이 최근 밝혀진 것. 18년 전인 2001년 상속받았던 이 집을 정 회장이 다시 아들 정 수석부회장에게 넘겨준 것이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이 집은 정주영 생전에 ‘정주영 청운동 자택’으로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가옥이다. 원래 정주영 사가私家로 출발했지만 나중엔 현대가家를 대표하는 ‘상징성’과 한국 현대사의 일부를 장식했던 ‘역사성’을 함께 간직한 사연 많은 집으로 변신했다. 

불세출의 기업인 정주영은 1990년대에 이르자 현대에선 후선으로 물러났지만 정ㆍ재계에 걸쳐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생의 마지막 정열을 불살랐다. 10년 안팎에 걸쳤던 그의 말년 활동이 자신의 집을 사가 이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손자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번에 대를 이어 이 집의 소유자가 됨으로써 단순히 집 한채 이상의 의미를 선물로 받았다고 봐야 한다.   

1962년 7월에 지어진 이 집은 지상 1층 169.95m²(약 51평), 2층 147.54m²(약 45평) 규모다. 평가액은 공시지가 기준 33억원 정도. 이 액수로만 보면 재벌가 주택치고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평소 검소했던 정주영의 스타일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전에 정주영은 “우리 집은 청운동 인왕산 아래에 있는데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 소리가 좋은 터”라고 자랑할 정도로 이 집을 아꼈다고 한다. 그는 1962년부터 약 38년간 이 집에서 살았다. 


타계 1년 전인 2000년 3월, 정주영은 아들 정몽구 회장에게 이 집을 넘겨주고 인근 종로구 가회동에 다른 집을 구해 이사했다. 당시 정주영은 증인이 있는 곳에서 아들 정몽구 회장에게 집을 물려줄 뜻을 밝혔다고 한다. 장남 정몽필씨가 일찍 유명을 달리했던 관계로 2남인 정몽구 회장은 사실상 장남 위치에 있었다. 

아버지 정주영의 뜻을 알게 된 정 회장이 사양하고 나오자 “이 집은 기氣가 있는 집이니 네가 살아라”고 권했다는 후문이 당시 재계에 돌았다. 정주영이 55억원을 주고 새로 산 집은 대지 1980㎡(약 600평) 규모의 2층 양옥으로 화신백화점 창업주였던 박흥식씨가 살았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 구한 집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다시 청운동 집으로 돌아와 생활했을 정도로 그는 이 집에 애착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타계했을 때 유족들이 빈소를 그가 치료 받았던 아산병원이 아닌 이 집에 차렸을 정도였다. 유족들은 2015년까지는 이 집에서 매년 3월 20일 정주영의 제사를 지냈다. 2016년부터는 정몽구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정주영은 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고, 자고, 쉬는 것 외에도 사업 구상을 많이 했다. 작고(2001년 3월 21일 86세) 직전엔 2세들 간에 숨가쁘게 전개됐던 소위 ‘형제의 난’을 수습하는 터로도 삼았다. 비단 경제뿐만 아니다. 체육계나 정계 활동에 필요한 주요 결심을 이 집에서 해나갔다. 그는 이 집에서 88서울올림픽 유치에 골몰했고, 정계 진출 선언을 하고, 금강산 관광과 소떼 방북을 구상하고, 연해주 등 러시아 사업을 궁리했다.

‘청운동 자택’은 개인 정주영의 집에 머물지 않고 외연을 확장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한국 역사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했던 많은 사건들이 이 집에서 잉태됐다. 이 시기에 언론사 기자들은 취재ㆍ보도를 위해 정주영의 청운동 자택을 쉼없이 드나들었다.

청운동 자택, 한채 이상의 의미 

정주영의 혈족으로는 직계 후손만도 2세 11명(8남 3녀), 3세 22명(11남 11녀)이 있다. 거기에다 형제자매 6명(5남 1녀)의 후손들까지 가세해 한국 재계 굴지의 범현대가를 형성하고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을 물려받은 게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 집이 갖고 있는 ‘상징성’과 ‘역사성’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할아버지 정주영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은 집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범현대가 내에서 그가 정주영을 잇는 적장손임을 공증 받은 걸로 볼 수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젊은 리더십을 지향한다. 사진은 2017년 소형 SUV 코나를 소개하고 있는 정 부회장의 모습.[사진=뉴시스]
정의선 부회장은 젊은 리더십을 지향한다. 사진은 2017년 소형 SUV 코나를 소개하고 있는 정 부회장의 모습.[사진=뉴시스]

정주영은 손자 정의선을 무척 아낀 나머지 그가 고등학생 때 청운동 집에서 함께 살게 했다고 한다. 정의선이 1995년 결혼한 뒤에도 이 집에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정의선은 지난 5월 어느 모임에서 할아버지 정주영과 관련된 추억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고등학생 시절 3년 정도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매일 아침 5시 할아버지 기상 시간에 맞춰 아침식사를 했다. 그때 수차례 말씀해주시기를 ‘시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의미를 약간 알 것 같다.”

생전에 정주영이 오전 5시면 청운동 자택 주변에 사는 자식들을 자기 집에 오게 해 아침을 함께 한 사실은 꽤 유명한 일화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은 함께 먹는다”는 원칙을 실천해 가족을 하나의 끈으로 묶었다. 아침 식사 후 그는 자녀들과 함께 인근의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으로 출근하곤 했다. 때론 함께 걸어서 출근하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세인들은 정 수석부회장에 대한 증여 시점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집 소유권 이전이 확정된 3월 19일은 올해 현대차 정기주주총회 사흘 전이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주총에서 현대차 사내이사로 선임된 뒤 곧바로 대표이사가 됐다. 또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도 올랐다. 할아버지 집을 물려받음과 동시에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가진 ‘정의선 시대의 탄생’을 함께 선언했다는 해석이다. 사실상의 가업 승계시기에 가문과 역사를 상징하는 창업주의 집을 물려받아 적장손임을 과시했다는 것.

3세 책임경영시대 활짝

지난해 9월 총괄수석부회장에 오른 이래 ‘혁신과 미래’를 표방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던 그가 올봄에 대표 자리까지 거머쥐면서 명실 공히 3세 후계자로서 책임경영에 나섰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청운동 자택을 ‘정주영 기념관’이나 그룹 수뇌부 회동 장소 등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처럼 외부인사 초청 장소로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올해 우리나이로 50이 된 그는 이제 3세 후계자로 아버지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회장’ 직함을 물려받을 일만 남겨두고 있다. 한국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의 미래와 범 현대가의 명예가 그의 두 어깨에 걸려 있어 보인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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