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BEMS 현황 살펴보니…

전기요금이 다른 집보다 많이 나온다고 치자. 상식적인 집주인이라면 어떤 가전기기가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지 살펴보고, 그 기기의 사용량을 줄일 거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두꺼비집을 내리진 않는다. 하지만 현재 공공기관에 의무 설치된 BEMS는 에너지사용량이 많으면 ‘에너지 먹는 하마’를 골라내지 않고 두꺼비집을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공공기관 BEMS의 현황을 살펴봤다. 

공공기관에 도입된 BEMS는 에너지사용량 절감 시스템이 아니라 에너지사용량 모니터링 시스템이다.[사진=뉴시스]
공공기관에 도입된 BEMS는 에너지사용량 절감 시스템이 아니라 에너지사용량 모니터링 시스템이다.[사진=뉴시스]

2016년 공공기관 신축 건물에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을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가 개정됐다. 이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BEMS를 도입한 공공기관 신축 건물은 총 8곳이다. 이곳에 설치된 BEMS는 과연 ‘에너지사용량 절감’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총 8곳 중 끝내 연락이 되지 않은 3곳을 제외한 5곳과 일부 설치업체를 취재한 결과, BEMS를 이용해 실질적으로 에너지사용량을 절감한 공공기관 건물은 단 1곳도 없었다. 

애초에 BEMS를 도입할 때 에너지사용량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지도 않았다. 이들 공공기관 건물에 도입된 BEMS는 특정 화면을 통해 전기나 가스 등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준이고, 목적도 딱 이 정도였다. 에너지사용량이 줄었음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도 없다. 다시 말해 현재 공공기관 신축 건물에 의무 도입된 BEMS는 ‘에너지사용량 절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당초 정부(산업통상자원부)가 공공기관 신축 건물에 BEMS를 의무화한 첫번째 목적은 건물 전체의 에너지사용량 절감이다. 따라서 BEMS가 제 역할을 하려면 몇가지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건물 내 설비별(조명이든 냉난방기든 공조기든)로 에너지사용량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는 게 가능하느냐다.

 

당연히 에너지 소비기기별로 어떤 사용 패턴을 나타내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설비로부터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절감되는지 알 수 있어서다. 예를 들면 시스템 에어컨의 경우 개별 에어컨마다 전력사용량이 얼마인지, 사용 패턴은 어떻게 되는지 등이 수집돼야 한다는 거다. 

둘째, BEMS 가동 전과 후를 비교할 상식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사용량이 줄었는지, 줄었다면 얼마나 줄었는지 등을 검증할 수 있어서다. 셋째, 에너지사용량을 적극적으로 줄여주는 장치가 있느냐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쓸데없이 조명이 켜졌다면 즉각 꺼줘서 에너지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사용량을 줄인 대신 인건비가 늘어나선 안 되기 때문에 자동제어가 돼야 한다.

설비업체 프로그램보다 못한 BEMS

하지만 공공기관에 의무 도입된 BEMS 가운데 이런 전제조건을 갖춘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다. 한 공공기관 시설담당자는 “모니터로 볼 수 있는 건 각 설비별 전체 에너지사용량 정도”라면서 “조명을 예로 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전등의 전력소모가 얼마나 되는지 이런 건 모니터링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스템 에어컨이나 공기정화설비 등은 BEMS와는 별도로 설치업체가 기본적으로 세부적인 모니터링과 제어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면서 “과연 BEMS가 이런 설치업체의 제공 프로그램보다 더 나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BEMS 설치업체 관계자들도 “각각의 기기별로 에너지사용량을 수집하고 있지는 않고, 각 설비별 에너지사용량만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수준의 데이터를 이용해 에너지사용량 절감량 비교를 할 수 있을까. BEMS 설치업체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BEMS 설치업체 담당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에너지사용량 절감량은 알 수 없다. 비교군이 없어서다. 물론 1년 후에 BEMS 초창기 때부터 누적된 데이터로 비교 가능하도록 만들 수는 있다.”

BEMS 전문가 K씨의 견해는 달랐다. K씨는 “기존 데이터를 갖고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서 비교기준을 역으로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에너지사용량 절감 정도를 알 수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반론의 여지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BEMS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가 각 개별기기의 상황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데이터로는 제대로 된 비교군을 만들어낼 수 없다. 만약 초기 데이터와 단순히 비교하겠다는 거라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변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에너지사용량 절감 분석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거나 다름없다.” 

“개선하겠다”는 뻔한 공수표


의문은 또 있다. 현재 설치된 BEMS를 통해 에너지사용량을 줄일 순 있는 걸까. 복수의 BEMS 설치업체 관계자들은 “BEMS를 전체적으로 온오프(껐다 켰다) 하는 정도”라면서 “특정 수치를 입력해서 그 이상 에너지를 사용하면 차단되는 프로그램을 추가로 설치할 순 있다”고 말했다.

K씨는 이 부분에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전체를 차단해서 에너지사용량을 줄이는 식이라면 뭐하러 비싼 돈을 들여 BEMS를 설치했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추가적인 비용은 또 어쩔 텐가. 쓸데없는 일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공기관 BEMS의 설치를 확인(사실상 인증)하고 이 사업의 관리감독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에너지공단의 관계자는 “당시 BEMS 기술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점차 개선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기술’이라는 게 고작 2년 전의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만한 기술도 아니면서 BEMS를 밀어붙이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K씨는 “이미 선진국에서 BEMS를 설치한 걸 보고 와서 그걸 따라 한 건데, 정말 기술이 없어서 못했겠나”면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황당한 건 지금부터다. 공공기관 BEMS 도입을 의무화해도 설치 5년 후엔 ‘설치확인 연장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BEMS 덕에 에너지절감이 됐는지 그렇지 않은지 조차 확인할 수 없다. BEMS에 헛돈이 쓰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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