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의 제언

“국민연금 때문에 삶이 행복해졌다”는 주변인의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거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덕분에 주가가 올랐다”면서 웃는 이를 본 적은 있는가. 십중팔구 ‘그렇다’고 답할 거다. 이상하지 않은가. 국민연금의 활약상을 국민 삶의 현장이 아니라 왜 자본시장에서 목격해야 할까. 이제 국민연금의 의미와 타당성을 엄격히 살펴봐야 할 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민연금의 개혁 방안을 살펴봤다. 김의철 네이처인터내셔널 상무가 제언했다. 

기금고갈 이슈는 국민연금의 진짜 문제가 아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금고갈 이슈는 국민연금의 진짜 문제가 아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연금의 개편방향을 놓고 백가쟁명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기금 고갈’ 이슈다.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추계가 내다본 고갈 시점은 2057년. 제3차 재정추계(2013년) 때 2060년이었는데, 이번에 3년 당겨졌다. 원인은 ‘저출산ㆍ고령화ㆍ저성장’이다. 셋 다 모두 국민연금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자연스레 연금 개혁 논의도 고갈시기를 늦추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더 걷고, 덜 주자는 거다. 앞서 두차례에 걸친 국민연금의 개혁 방향이 그랬다.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국민연금 제도는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공포 앞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다. 기금 고갈은 예상치 못한 변수나 리스크가 아니다. 1988년 출범 당시부터 기금은 반드시 바닥나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험료율은 3%,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급여 비율)은 70%였다. 소득의 3%를 내면, 소득의 70%를 퇴직 후 사망할 때까지 준다는 조건이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니 고갈은 당연한 일이다. 개정을 통해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로 수정됐지만, 이 역시 후하긴 마찬가지다. 매달 9만원의 돈을 내면, 40만원의 돈을 돌려받는 셈이라서다.

그렇다면 이제 한발 뒤에서 생각해보자. 국민은 왜 국민연금을 불신하는가. 혹시 목적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국민연금법 1조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좋은 목적이다. 이번엔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 나온 ‘국민연금이 필요한 이유’를 보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인인구가 늘고 있다.” “출산율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다.” “부모를 모시는 가정이 줄고 있다.”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적다.” “사회적 위험에 대비한 생계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노인인구가 늘고 출산율이 하락하는 건 모든 국가가 겪는 구조적인 일이지만, 한국은 유난히 그 속도가 빠르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노인 비중 7%)에 진입한 뒤 17년 만에 고령사회(노인 비중 14%)로 들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엔 전례가 없다. 저출산도 심각하다.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꼴찌 기록을 몇년째 이어가고 있다. 

기금 고갈론의 허상

이런 위협에 국민연금은 안전한 울타리가 됐는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이 수치는 OECD 평균 빈곤율 12.6%의 약 4배다. 젊은 세대는 어떤가. 청년실업률은 치솟고,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국민연금이 제대로 작동됐다면 한국이 이런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리 없다.

필자는 과감히 주장한다. 국민연금이 필요할 만큼 사회적 위험이 늘어난 배경엔 아이러니하게도 ‘막대한 국민연금 기금’이 있다고 말이다. 국민연금은 ‘저축의 역설’을 피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론 돈을 아끼는 게 불황을 견뎌내는 좋은 방법이지만 모든 소비자가 저축을 늘리면 경제 전체적으론 수요가 부족해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게 저축의 역설이다. 총 소득의 9%를 기금에 적립하는 국민연금 역시 ‘저축의 역설’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 기금 전체(99.9 %)를 금융투자에 쏟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국민이 종사하는 내수 부문에서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그 줄어든 소득을 금융시장으로 옮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이 우리 경제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내 주식시장엔 기금의 10%만 투자하고 있는 데도, 국민연금은 대적할 상대가 없는 큰손이다. 그런데도 자금이 없어 투자와 고용이 힘든 중소기업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주로 한국의 수출 대기업이 기금의 투자 타깃이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자산 상위 10대 그룹 상장사의 주식 가치는 올해 상반기 기준 약 73조원. 이중 삼성전자의 비중이 38조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업종과 종목은 시장의 가장 큰 관심거리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국민 노후를 보장하겠다는 국민연금이 우리 경제의 주요 폐해로 꼽히는 ‘재벌 집중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가.

국민도 모르는 국민연금

“국민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선 기금을 불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대기업에 투자하는 게 안전하지 않은가”란 반론이 적절한지 냉엄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일본과 노르웨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의 연금은 적립 방식이 아닌 부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적립금을 쌓지 않고, 젊은이들이 그 해에 필요한 보험료를 내서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별 잡음 없이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단은 ‘기금 고갈’을 이유로 ‘재정 안정’이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로 유지할 수 있는 건 한국의 자본시장뿐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을 내는 국민 누구도 이런 방식에 동의한 적이 없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어디에 투자를 해서 어떤 업종이 유망해졌다”가 아니라 “국민연금 덕분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얘기해야 한다.

진정한 국민연금 개혁은 이런 방향에서 시작돼야 한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민연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의철 네이처인터내셔널 상무 dosin4746@natureincorp.com | 더스쿠프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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