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대 코스닥기업 직장인 평균연봉, 근속연한 살펴보니 …

99.9%와 82.2%.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직장인의 비중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현주소를 파악하려면 중소기업 직장인을 살피면 되는 셈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300대 코스닥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의 사정을 들여다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직장인, 5년간 뼈 빠지게 돈을 벌고 나와도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중소기업 직장인의 얼굴은 곧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사진=연합뉴스]
중소기업 직장인의 얼굴은 곧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사진=연합뉴스]

중소기업에서 웹 디자인을 하고 있는 김정훈(가명ㆍ33)씨는 나이에 비하면 이 바닥에서 제법 잔뼈가 굵다. 2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든 직장인이다. 지인의 제안을 받고 스타트업에 발을 디딘 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용돈이나 벌 겸 경험을 쌓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보단 지금처럼 착실히 경험을 쌓아나가면 길이 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업난에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을 보며 나름 안도감도 느꼈다. 김씨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김씨는 300대 코스닥 상장기업에 이름을 올린 기업에 새 둥지를 틀었다. 직장을 세번이나 옮기고 나서였다. 두번은 회사가 문을 닫았고, 한번은 근무여건이 너무 열악한 게 이직의 이유였다. 더 늦으면 기회가 없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확실히 처우가 좋아졌다. 월급도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씨의 마음은 전보다 더 다급해졌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4년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지만 전세방에 살림살이라도 마련하려면 나아진 벌이로도 어림없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혼날짜를 미뤄왔지만 이젠 여자친구도 한계에 부닥친 모양이다. 

예전엔 좋은 회사로 이직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 벌써 한계치도 보이기 시작했다. 300대 코스닥기업이라고 허울 좋게 포장했지만 대기업의 손길이 끊기면 언제고 밀려날 수 있는 처지다. 5년을 채 못 버티고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도 숱하게 봤다. 5년 뒤 본인의 모습일까, 김씨는 벌써부터 초조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5년을 버티고 나가도 기다리는 건 칠흑 같은 어둠일 공산이 커서다.

우리나라엔 355만929개(2016년 기준)의 기업이 있다. 그중 345만7101개. 99.9%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은 전체(1747만명)의 82.2%다. 이들의 통계가 곧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300대(6월 30일 시가총액 기준) 코스닥기업 직장인의 근속연수와 급여수준을 집중 분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직장인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 5년, 통계 개선됐지만… = 결과부터 보면 이렇다. 300대 코스닥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2018년 평균근속연수는 5.63년, 평균연봉은 5098만원이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만족감과 안정감이다. 평균근속연수가 짧다는 건 근무여건이 열악하거나 회사 사정이 나쁘다는 걸 뜻한다. 연봉은 생활수준을 대변한다.

[※참고 : 300대 코스닥기업 내 평균을 높이는 대기업 계열사(GS홈쇼핑ㆍCJ ENM 등)를 제외하면 실제 평균연봉은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300개 기업 중 10곳이 직원들의 평균 연봉에 미등기임원 연봉을 포함했다는 점도 평균연봉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300대 코스닥기업의 평균근속연수와 평균연봉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대기업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같은 기간 80대 대기업의 평균근속연수와 평균연봉은 각각 11.1년, 8100만원이었다.

거의 두배 차이다.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근무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얘기다. 냉정한 현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을 단기간에 좁히긴 어렵다. 이는 장기적 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그보다 중요한건 얼마나 개선되고 있느냐다. 2013년과 2018년, 지난 5년간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사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거다.

이번에는 앞선 300대 코스닥기업의 2013년 통계를 들여다보자. 평균근속연수는 4.86년, 평균연봉은 4207만원이다. 지난 5년간 평균근속연수는 0.77년, 평균연봉은 891만원 늘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개선된 건 사실이다.

■연봉보다 서민물가 더 올라 = 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연봉이 오른 것보다 물가가 더 오르면 되레 연봉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흔히 소비하는 10개 품목의 물가를 따져본 바에 따르면 우려는 우려에 그치지 않았다.


대표적인 서민식품으로 꼽히는 소주와 김밥, 짜장면의 가격은 각각 20.6%, 33.3%, 11.3% 올랐다. 직장인들이 즐겨먹는 점심 메뉴인 냉면ㆍ김치찌개ㆍ빅맥은 18.2%ㆍ28.0%ㆍ15.4%, 야식 메뉴 치킨은 12.5% 인상됐다.

그밖에 택시비(58.3%)와 담뱃값(80.0%), 영화관람료(25.0%)도 무섭게 올랐다. 2013년 대비 2018년 10개 품목의 평균 물가가 30.3% 오른 셈인데, 이는 300대 코스닥기업 직장인들의 평균연봉 인상률인 21.2%를 한참 웃돈다.

■멀어지는 내집마련의 꿈 =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평균근속연수만큼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어도 정작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2013년 300대 코스닥기업 직장인이 한 푼도 안 쓰고 평균근속연수만큼 일을 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총괄수익)은 2억1578만원이었다. 지난 5년간 평균근속연수와 평균연봉이 오른 만큼 평균총괄수익도 3억37만원으로 늘었다.

그럼 이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직장인들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내집마련이다. 특히 김씨처럼 결혼계획이 있거나 자녀가 있다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건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과연 늘어난 총괄수익으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부동산114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59.5㎡ㆍ약 18평 기준)은 2013년 말 2억9274만원에서 2018년 말 4억7719만원으로 치솟았다. 2013년 코스닥기업 직장인의 평균총괄수익을 감안하면 5년 전엔 아파트를 사기 위해 8000여만원만 대출하면 됐다. 하지만 이젠 1억8000여만원을 빌려야 한다. 전세로 눈을 돌려도 쉽진 않다. 전세 보증금 2억5942만원을 조달하려면 5.63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딩크족은 선택 아닌 강요 = 여차저차 집을 구하고 결혼을 해도 문제는 남는다. 중소기업 직장인에겐 양육이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라서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막대한 양육비를 생각하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딩크족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은 만만치가 않다. 보건복지부는 2003년과 2009년, 2012년에 자녀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22살까지 크는 데 들어간 비용은 2003년 1억9703만원에서 2009년 2억6204만원, 2012년 3억896만원으로 훌쩍 커졌다. 2012년 기준 총 양육비가 이미 2018년 중소기업 직장인의 총괄수익을 넘어섰다. 
 
더구나 이런 흐름이라면 요즘엔 더 많은 양육비가 필요할 공산이 크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근속연수를 채우고 나와서도 또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흔한 치킨집도… =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직장을 옮겨 다닐수록 근속연수도 줄어드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결국엔 창업이다.

전세계 맥도날드보다 많다는 대한민국 치킨집도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다.[사진=연합뉴스
전세계 맥도날드보다 많다는 대한민국 치킨집도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전세계 맥도날드보다 많다는 대한민국 치킨집 창업도 중소기업 직장인에겐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문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지난 2016년 15대 치킨 프랜차이즈의 창업비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4827만원이 필요했다. 특히 BBQ나 맘스터치 같은 경우엔 창업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여기엔 가맹비와 인테리어, 물품 구매비용만 포함돼 있다. 임대보증금과 권리금, 월세 등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자릿세는 빠져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한 창업비용에 1억~2억원은 거뜬히 추가될 수 있다. 이 역시 중소기업 직장인의 평균총괄수익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규모다.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부 = 세상의 흐름과 달리 ‘쩐錢’이 부족한 중소기업 직장인으로선 뭘 해도 제동이 걸린다는 얘기다. 사실 이는 아이러니다. 2013년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2만7178달러에 불과했지만 그로부터 4년 후, 1인당 GDP 3만 달러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어디 그뿐이랴. 기업은 부를 차곡차곡 쌓아 2013년 1534조원이었던 순자산을 5년만에 2385조원(55.5% 증가)으로 불렸다. 같은 기간 국부도 36.9% 증가해 1경5512조원을 달성했다. 이는 누구 하나의 힘으로 이룩한 게 아니다. 모두가 일등공신인 만큼 성장의 결실이 골고루 돌아가야 맞다. 하지만 유독 중소기업 직장인에겐 부의 인심의 사납다.

■기둥뿌리 부실한 중기 = 지난 5년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문제는 앞으로의 5년이다. 희망을 꿈꾸려면 겉통계뿐만 아니라 속사정도 나아져야 한다. 직장인들의 사정과 여건이 좋아지려면 우선 기업의 기둥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업력을 쌓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코스닥기업들이 업력이 짧고, 외풍에 쉽게 흔들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들은 대다수가 제약ㆍ바이오기업이거나 후방산업에 위치하고 있어서다.

제약ㆍ바이오기업은 신약 개발의 성공 여부에 좌우되는 만큼 미래가 불투명하다. 신약 개발 외에 성장동력이 부족한 것도 미래를 장담하기 힘든 리스크다. 후방산업 기업들도 전방산업에 위치한 대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스스로의 능력과 별개로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특징은 더스쿠프가 분석한 300대 코스닥기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300개 기업 가운데 제약ㆍ바이오기업은 총 53곳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여기에 의료기기ㆍ헬스케어기업까지 더하면 무려 78곳에 이른다. 대표적인 후방산업으로 꼽히는 장비업체와 부품업체도 43곳에 달했다. 반도체 제조업과 화학 및 각종 제조업 중에서도 후방산업에 위치한 곳이 적지 않다.

그밖에 게임과 소프트웨어, 방송ㆍ콘텐트 등 트렌드에 민감한 곳이 많다는 것도 코스닥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문제는 그만큼 예민하게 트렌드를 좇지 않으면 언제든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실제로 앞선 300개 코스닥기업 가운데서도 2013년의 정보가 없는 곳이 81곳에 달했다. 그만큼 업력이 짧거나,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기업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이는 지금 300대 코스닥기업명단에 이름을 올린 곳도 언제까지 업력을 이어나갈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기업의 99.9%를 차지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은 전체 직장인의 82.2%에 달한다. 이들의 현실은 곧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