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랑의 새로운 관점
공간의 넓이보단 편안함의 넓이

한국인에게 집은 ‘삶의 공간’이 아니다. 개발과 투기, 욕망의 대상이 됐다. 사람을 위해 집이 있는 것인지, 집에 사람을 맞추는 것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집에 살아야 할까. 정예랑 건축가가 집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집의 가치는 “공간의 넓이가 아니라 편안함의 넓이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더스쿠프(The SCOOP)의 새 기획 ‘정예랑의 좋은 집’, 첫번째 편이다.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 줘야 할 집은 우리 삶의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사진=게티미이지뱅크]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 줘야 할 집은 우리 삶의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사진=게티미이지뱅크]

지난 7월 17일, 대학로 이앙갤러리에서 ‘사고와 발현4 : 2029展’이 열렸다. 26명 건축가들이 ‘미래의 주거’를 떠올리며 만든 여러 작품이 전시됐다. 26개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었다. 공통된 주제라곤 ‘미래의 주거’가 전부였고, 정해진 틀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맘껏 뽐낼 수 있던 자리였다. 너무 먼 미래의 공상이 아닌, 2029년쯤 우리가 접할지도 모를 집의 미래 말이다.

필자도 26명의 건축가 중 한명으로 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만든 작품은 다음과 같았다. 투명한 아크릴 박스 안에 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식탁이나 의자, 침대, 식물 자전거 등이다.

물론 이걸 미래 주거문화라고 부를 순 없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와 방향, 조명, 거리 등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변하게끔 연출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섬세하게 바뀔 수 있도록 말이다. 작품명은 이렇게 붙였다. ‘집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 시시각각’.

이 기획의 배경엔 우리 사회가 집을 바라보는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에 있다. 한국의 집은 환금성과 재테크에 집중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특히 아파트 선호가 두드러진다. 아파트가 갖는 생활의 편의성도 있겠지만,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영향이 크다. 부동산 투자로 수배의 수익을 남기는 ‘신화’가 곳곳에서 목격됐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 이제 집의 본질을 떠올려보자. 집은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누이는 곳이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해질 무렵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어김없이 돌아와 쉼이 되는 장소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단순히 ‘몇동 몇호’로 기억되는 집은 안타깝게도 이런 특성이 부족하다. 위치가 강의 남쪽인지 북쪽인지, 몇 ㎡인지, 자가인지 전세인지가 집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살기 편한 집보다 앞으로 값이 뛸 집을 선호하는 걸 당연한 흐름처럼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그로 인한 문제는 꽤 심각하다. 최근 기성세대의 이런 집착이 자녀세대로까지 이어졌다. 요즘은 학생들도 ‘어디,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로 편을 가른다고 한다.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 줘야 할 집이 오히려 우리를 괴롭히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셈이다.

이런 불합리함을 뛰어넘을 순 없을까. 진짜로 좋은 집의 정의는 뭘까. 필자가 설명하고 싶은 좋은 집은 다음과 같다. 먼저, 볕이 잘 드는 공간을 상상해보자. 따뜻한 온기에 스르륵 눈이 감기고, 언제든 기대어도 마음이 편한 그런 공간 말이다. 햇살에 살짝 눈을 찡그리다가도 불현듯 다가온 그림자 그늘이 반갑고 따뜻한 집. 이런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나만의 집’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넓은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만 떠올린다. 하지만 가치 있는 집은 공간의 넓이가 아니라 편안함의 넓이다. 황량하게 넓은 땅, 많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기능적으로 편한 공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건축의 목표는 집 속에 담기는 사람의 삶이라서다. 이에 따라 필요한 건축원칙은 3가可다. ‘가변성(정의되지 않은 영역)’ ‘가설성(가벼운 공간)’ ‘가용성(증축에 의해 변화하는 구조)’. 변화하는 시간과 생활방식과 일일이 대응할 수 있는 자유로운 건축이 반영된 집이다.

필자는 이런 집이 가까운 미래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집은 몸과 마음이 누이는 장소다. 이게 좋은 집의 충분조건이라면, 집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자가 아파트’에 한정되지만은 않을 거다. 단순히 아파트에 큰 창을 낸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안락함도 아니다. 필자의 건축이 이런 관습을 끊기 위한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  
정예랑 정예랑건축사무소 대표 yerangchung.kr | 더스쿠프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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