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저축은행·대부업체 돈 뺄까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엔 일본계 자금이 대거 유입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를 활용한 금융보복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자금회수 등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우려다. 일본계 자금이 서민금융을 흔들 것이란 주장은 공포론에 가깝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일본계 저축은행·대부업체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일본 금융보복의 타깃이 저축은행‧대부업체 등 서민금융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일본 금융보복의 타깃이 저축은행‧대부업체 등 서민금융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한일 무역분쟁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제외에 이어 꺼낼 수 있는 카드가 금융보복이라는 이유에서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의 금융보복은 한일 전면전을 의미하는 선전포고일 수 있어서다. 국내에 풀린 일본계 자금의 규모도 크지 않다.

일본 투자자가 보유한 국내 상장증권(6월 말 기준)의 규모는 13조원이다. 전체 외국인 투자금액 559조8000억원의 2.3% 수준이다. 일본 투자자의 채권 투자 규모는 1조6000억원으로, 외국인 전체 상장채권 투자(6월 말 기준 124조5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다.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이유다.

그럼에도 우려 섞인 시각은 재생산되고 있다. 한편에선 금융보복의 타깃이 저축은행·대부업체 등 서민금융에 맞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일본계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이 김종석(자유한국당) 의원과 김종훈(민중당) 의원에게 제출한 일본계 금융회사 여신 현황에 따르면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국내 대출 잔액(지난해 기준)은 17조4102억원으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의 전체 여신 76조5468억원의 22.7%를 차지했다. 꽤 높은 비중인데, 그렇다면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서민금융을 흔들 수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국내 저축은행 79개 중 일본계 저축은행은 4곳뿐이지만 이들의 여신 규모(2018년 기준)는 10조7347억원에 이른다. 전체(59조1981억원)의 18.1% 비중이다. 자산 규모도 크다. 지난해 저축은행 전체 자산 69조5157억원 중 일본계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조2692억원(19.08%)에 달했다. SBI저축은행(1위), JT친애저축은행(7위), OSB저축은행(8위), JT저축은행(18위) 등 일본계 저축은행이 모두 상위권 차지한 결과다.

끊이지 않는 금융보복 가능성


대부업에서 일본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높다. 전체 대부업체 8310개 중 일본계 대부업체는 19개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여신 규모는 6조6755억원으로 대부업체 전체 여신 규모의 38.5%(17조3487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금융보복의 일환으로 돈줄을 죄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관건은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실제로 금융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느냐다. 금융당국은 “경제보복에 따른 영업축소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일축했다. 

업계의 반응도 비슷하다. 임승보 한국대부금융협회장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 금융자금 회수 가능성 및 파급 영향 점검’ 긴급 좌담회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부업계는 영업자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일본계 대부업체가 자금을 회수해도 다른 업체가 이를 대체할 수 있고, 구조적으로 자금을 곧바로 회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막대한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금융보복에 나설지도 의문이다. 일본계 저축은행 4곳이 지난해 1989억원(SBI저축은행 1309억원·JT친애저축은행 264억원·OSB저축은행 240억원·JT저축은행 1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였다. 전체 저축은행의 순이익 1조1185억원의 17.7%에 달하는 금액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만일 일본계 은행과 저축은행 등이 국내 경제에 충격을 주기 위해 여신을 회수하면 연체율 증가 등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무리하게 대출을 회수할 경우 큰 폭의 손실을 입을 뿐만 아니라 향후 국내 영업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금융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주주가 일본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가 손해를 감수하고 자금회수에 나서긴 쉽지 않다”며 “금융보복이 아닌 제살 깎아 먹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수년간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다”면서 “금융보복에 나섰다간 어렵게 선점한 국내시장을 경쟁업체에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계 서민금융 22.7% 차지


일본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도 금융보복 가능성보다는 불매운동의 여파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일본계 대부업계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불매운동이라는 악재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며 “시장의 과도한 우려가 일본 불매 운동에 기름을 붓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대비책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본 금융보복의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금융 보복이 다른 국가의 자금 이탈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계 금융기관의 자금 회수가 인해 외국인 자본유출이 촉발된 사례가 있다”며 “일본계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과 대응 여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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