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과 한국차 업계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를 두고 자동차 분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적지 않은 일본산 부품을 활용하는 만큼, 한국차 생태계가 부실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더구나 차의 완성도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 아닌가. 하지만 우리 자동차 부품산업은 이번 사태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간 충분한 양적ㆍ질적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양국의 갈등이 한단계 더 성장할 계기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를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기로 삼아야 한다.[사진=뉴시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를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기로 삼아야 한다.[사진=뉴시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거세다.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ㆍ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도 제외되면서 수많은 업종의 소재ㆍ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처지에 놓여있다. 산업 전반이 일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라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본격 시행 전까진 완충기간이 있다. 그사이 정치ㆍ외교로 해결하는 게 우리 경제엔 가장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나리오다. 수입 지연ㆍ불허 등 모든 조치가 일본 입맛에 따라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극일克日을 강조하며 강대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갈등은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강대국 미국과 중국도 서로를 냉정하게 등지고 있다. 이제 국제사회는 냉엄한 약육강식의 시대다.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여러 국가들을 향해 호소하는 것도 제대로 먹히지 않을 만큼 ‘강국의 논리’가 정의가 됐다. 결국 우리가 우리 손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카드는 전략적인 활용을 이유로 어떤 분야든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수입ㆍ수출 다변화와 원천기술 확보는 물론이고 그간 소홀히 했던 소재ㆍ부품 국산화까지 숙제가 산적하다. 특히 자동차는 3만개의 부품이 필요한 첨단기술의 총아다. 자동차 제조업계 역시 분업화로 엮인 전세계의 가치사슬 안에 있기 때문에, 일본산 부품이 꼭 필요한 지점이 있다. 

업계에선 ‘전기 배터리용 파우치 필름’ ‘수소탱크용 탄소섬유’ ‘적층 세라믹 커패시터(MLCC)’ 등을 주요 일본산 부품으로 꼽고 이들의 존재를 리스크로 꼽는다. 이중에선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도 있고 20~30% 점유율에 머물러 있는 종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대부분 다른 국가에서 대체가 가능하고, 국내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한 기업도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에 많이 의존하던 20~ 30년 전과 달리, 한국 자동차 업계는 양적ㆍ질적 성장을 해왔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의 한축을 담당하는 완성차 업체로 성장했고, 국내 부품기업들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소재나 부품 국산화에도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당장의 큰 걱정거리는 아니라는 거다.

필자가 우려하는 건 자동차 부품사 등에서 사용하는 부품 및 소재 생산을 위한 정밀공작기계다. ‘NC 머신’이라 불리는 공장기계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도 상당수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일본의 조치로 당장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기계를 돌리다가 고장이 났는데, 부품을 수입할 때 문제가 생긴다면? 자동차는 철저한 수직 하청구조가 아닌가. 하나의 부품이 잘못되면 연쇄파장이 크다. 부품을 다른 부품으로 대체할 때도 문제다. 다른 시스템에 영향이 없는지 철저히 안전을 검증해야 해서다. 자동차의 고장은 단순히 가전제품의 고장이 아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 만큼 자동차 업계는 어떤 산업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4~5차 하청 부품업체까지 면밀히 파악해 국내 자동차 제조 생태계의 실태파악이 우선이고, 대체할 부품과 방법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지 모른다. 중소ㆍ중견 기업들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어쩔 수 없는 위기라면, 어떻게든 우리의 기회로 만들자. 일본의 기술적 종속을 벗어나는 기회 말이다. 

최근엔 극일에 동조하는 국민들도 많다.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속도는 더 빨라질 공산이 크다. 지금은 경제전쟁의 시대다. 우리 힘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전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점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