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기생충의 엽기적인 사랑
[Economovie] 기생충의 엽기적인 사랑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51
  • 승인 2019.08.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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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기생충❺

“우리가 ‘I love you’라고 말할 때, 그 ‘I’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I란 독립적이고 누군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족自足적인 개체여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기생충에 불과하다. 기생충의 사랑은 무의미하다.”- 러시아 소설가 아인 랜드
 

‘정신적 기생충’의 사랑 방식은 지하실 남자의 그것처럼 불안하고 불온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정신적 기생충’의 사랑 방식은 지하실 남자의 그것처럼 불안하고 불온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 태생의 미국 여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인 랜드(Ayn Rand)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처럼 대단히 냉정하고 엄격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 ‘기생충’에서 문제적 인물인 ‘지하실 남자’는 자신이 기생하는 주인집 사장을 향한 일편단심 ‘민들레 사랑’으로 충만하다.

왜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지독하게 사랑한다.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지하실 남자의 존재 이유 자체로 보인다. 

사장님과는 물론 일면식도 없다. 일면식이 있었다면 지하실에 남아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침식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하실의 바퀴벌레처럼 몰래 생존한다.

그런데도 남자는 지하실에 박혀 시도 때도 없이 저 높은 지상의 사장님을 향해 “Respect!”를 외친다. 그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사장님이 귀가 후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의 전구를 모스 부호로 점멸시킨다.

‘그 짓’을 위해 지하실의 두꺼비집을 이마로 짓이겨가면서 이마에 피멍이 들도록 해댄다. 보삼三寶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팔꿈치, 무르팍이 모두 깨져가며 얼음 덮인 히말라야산맥을 도는 순례자와 같은 처절한 모습이다.

오체투지 순례자와 같은 그 ‘간절함’의 정체라도 알면 숙연해지고 눈물겨울 수도 있으련만, 지하실에서 이마로 두꺼비집을 들이박는 그 사랑과 ‘respect’의 정체는 도무지 알 도리 없으니 그저 딱하고 엽기적일 뿐이다. 

‘지하실 남자’는 일면식도 없는 주인집 사장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지하실 남자’는 일면식도 없는 주인집 사장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지하실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꿈틀대며 타오르던 지하실 남자의 사랑은 사장님에게 피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기택네의 등장으로 폭발하고 만다. 지하실 남자는 마침내 지하실에서 솟구쳐 올라와 사장님의 싱그러운 정원에서 펼쳐지는 가든파티에 식칼을 뽑아 들고 난입해서는 기택네를 향해 용암처럼 쏟아낸다.

그러나 결국 사랑해 마지 않던 사장님이 비명횡사하는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을 맞이한다. 사장님은 죽어서도 자신의 사망 전모를 파악하기 불가능할 만큼 황당하고 난해한 죽음이다. 종속적이고 자족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기생충의 사랑은 무의미하고 냉소했던 아인 랜드의 평가는 정확하지 못했다. 

기생충의 사랑은 무의미한 정도가 아니라 파괴적이다. 기생충의 ‘정신적인 사랑’은 무의미할 뿐이지만, 기생충의 ‘실천적인 사랑’은 파괴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녀 사랑과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여기저기서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를 외쳐댄다. 

많은 우리나라 부모는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를 외쳐댄다. [사진=뉴시스]
많은 우리나라 부모는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를 외쳐댄다. [사진=뉴시스]

부모가 자식 때문에 산다면 그 부모는 독립적인 개체도 아니고 자족적인 개체도 아니다. 슬프지만 자식의 정신적 기생충이다. 정신적 기생충의 사랑은 자식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자칫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 

정신적 기생충 같은 사랑이 부모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하다. 생업의 정체도 불투명하고 불분명한 ‘정치꾼’이거나 오로지 나라 걱정하기 위해 사는 듯한 분들이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몰려다니면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향해 지하실 남자처럼 터무니없는 ‘respect!’를 외치거나, ‘내 사랑’을 방해하는 누군가에게 비수를 겨눈다. ‘정신적 기생충’의 사랑 방식은 지하실 남자의 그것처럼 불안하고 불온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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