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기차 충전 인프라 문제

여기 100세대가 살고, 100면의 주차구획을 갖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다른 한쪽엔 9000세대가 거주하고, 주차구획수는 9000면이다. 그런데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개수는 똑같이 10개다. 현행 규정이 1개 아파트 단지에 설치할 수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최대 10개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전기차 충전시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탁상행전만으로는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를 확대할 수 없다.[사진=뉴시스]
탁상행전만으로는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를 확대할 수 없다.[사진=뉴시스]

전기차 시대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다. 올해 말 국내에 보급된 전기차 누적대수는 10만대에 이르고, 내년 말엔 20만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수치만 따져보면 매년 두배씩 전기차 보급량이 늘어나는 셈이다. 민간 차원에서 전기차를 보급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기차의 보급량만 중요한 건 아니다. 실과 바늘 관계인 전기차 충전기 보급도 활성화해야 한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가지 인정할 건 있다. 전기차 활성화와 함께 충전시설도 공공용 급속ㆍ완속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보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충전기 관련 업무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한 게 사실이다. 관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적도 많지 않다. 현재 충전기 관리사업은 환경공단에서 자동차환경협회로 이관돼 진행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다 보니, 업무파악이나 집행 등 여러 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개선점을 하나씩 설명해보자. 우선 보조금 집행이 늦어지면서 관련 중소기업의 애로가 커지고 있다. 충전기를 생산하고 설치공사를 진행ㆍ완료했음에도 보조금이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숱하다.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그래왔다. 이 때문에 자금난에 시달리는 충전사업자들이 수두룩하다. 불가피하게 대출 등을 받아 당장의 자금난을 해결하는 곳도 적지 않다. 보조금 집행에 속도를 붙여야 하는 이유다. 지급이 지연되는 이유도 이 참에 따져봐야 한다. 

둘째, 비현실적인 요구가 많다는 점이다. 가령, ‘자갈밭’에 친환경차 표시를 요구하는 식이다. 주차공간이 아스팔트 등으로 포장돼 있지 않은 곳에 충전기를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는 충전기를 설치하면서 아스팔트까지 해달라는 ‘이중요구’라 할 수 있다. 환경부와 주무기관이 설치 규정을 손봐야 하는 이유다. 

셋째, 주무기관이 충전기 설치와 관련 불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예가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충전기 보조금 행정업무는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충전기를 신청한 고객정보와 입력정보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전산자료만 있어도 되는데, 주무기관은 서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신청ㆍ설치와 관련된 일체의 서류를 종이 문서(사본)로 제출하도록 했다. 이것도 모자라 방대한 서류자료를 이미지 파일로 정리해 추가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충전사업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불필요한 중복 업무를 하게 되면서 자체 인력을 비능률적인 업무에 배치하게 된 탓이다. 아울러 외부공간을 별도로 임대하거나 외부업체에 종이서류를 임치하는 비용까지 감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넷째, 일정 주차면 개수에 미달하는 소규모 공동주택이나 건물의 경우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충전기 사각지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현재 규정은 주차단위 구획수(주차면 개수)를 과도하게 제한해 대규모 단위 아파트와 대규모 건물에만 국가보조금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 보급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서울시와 수도권의 예를 살펴보자. 서울시는 44면, 경기도는 70면, 인천시는 86면의 주차면 개수를 확보해야 충전기가 설치 가능하다. 그러나 연립주택이나 빌라에 사는 국민의 약 30%는 충전기를 설치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얘기다. 다섯째는 주무기관에서 선정하는 충전기 검수업체의 능력 문제다. 충전기 검수업체는 특성상 전국적인 서비스망과 숙련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몇몇 충전기 검수업체는 서비스망도, 인력수준도 미흡하다.  검수업체 선정과정의 불투명성, 지연 선정, 선정업체의 검수능력부족 등 이유도 여러개다. 이는 충전기의 신속한 사용을 희망하는 전기차 이용자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속한 처리가 절실하다. 

마지막은 충전기 설치개수 제한의 문제다. 가령, 1개 아파트 단지에 충전기 설치개수(최대 10개)가 제한돼 있는 식이다. 이는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00세대 100면 주차구획수를 가진 아파트와 9000세대 9000면을 가진 아파트의 충전기 설치 최대 개수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9000세대를 가진 서울시 송파구의 헬리오 시티의 경우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이처럼 전기차 충전기 문제는 사각지대가 많다. 충전기 설치업체들은 주무기관에 불만을 토로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부는 물론 주무기관이 충전기 관련 문제점을 개선하고 전기차가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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