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 철강업 흔들어
격화하는 미중 무역전쟁
보호무역주의 심화 기조

극일克日 이슈가 뜨겁다. 일본의 무역보복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이슈는 한일 경제전쟁만이 아니다. 철강업을 흔드는 관세폭탄, 미중 무역전쟁, 보호무역주의의 격화 등 우리 경제를 뿌리부터 흔들 만한 변수는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극일에 묻힌 이슈를 취재했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한국산 제품에 적용되는 수입규제가 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한국산 제품에 적용되는 수입규제가 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일 경제전쟁이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ㆍ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겠다고 밝힌 지 20여일이 지났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결정은 오는 28일 효력을 발휘한다. 

22일엔 우리나라 정부가 맞불을 놨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ㆍ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일본이 백색국가 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면서 지소미아 종료 이유를 밝혔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불러올 여파는 작지 않다. 특히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탄소섬유ㆍ공작기계 등 일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선 당장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국내 관련 산업을 육성해 이를 대비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국내외 경제분석기관에서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수도 있다”며 전망치를 낮춘 것도 일본과의 갈등이 국내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극일克日 이슈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분명 한일 경제전쟁은 국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다. 해결책을 서둘러 찾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이슈에만 매몰되면 다른 리스크를 놓칠 우려가 커진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는 한일 경제전쟁만이 아니다. 문제는 그중 대부분이 뒷전으로 밀려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극일 이슈에 가린 경제 이슈를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강 때리는 관세 폭탄 = 지난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철강업계를 강타한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다.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수입산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물량에 제한(쿼터)을 걸었다. 우리나라는 관세를 면제 받는 대신 수출량을 지난 3년 평균치의 70%로 감축하는 쿼터제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미국에서 시작한 철강수입 규제조치가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데 이어, 지난 8일엔 러시아ㆍ벨라루스ㆍ카자흐스탄ㆍ아르메니아ㆍ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으로 구성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이 열연제품을 대상으로 한 세이프가드를 확정했다. 

인도는 한국산 알루미늄ㆍ아연코팅 제품 등에 반덤핑 관세 예비판정을 내렸고, 베트남도 한국산 컬러강판을 두고 반덤핑 여부 조사에 들어갔다. 이는 수출량 감소로 이어졌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출한 철강제품은 1519만톤(t)으로, 지난해 상반기 수출 실적(1564만t)보다 45만t가량 줄었다.

이마저도 더 악화할 여지가 많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이후 수익률과 수출량 모두 줄어들고 있는데, 쿼터로 물량 제한을 받고 반덤핑 관세로 수익률이 하락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나마 무역확장법ㆍ세이프가드 이슈가 막 터졌을 땐 제품 가격이 급등해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가격까지 떨어지고 있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철강 관세 이슈가 터졌을 땐 크게 주목을 받았는데 이후 자동차, 일본 문제가 잇따라 터지면서 뒷전으로 밀렸다”면서 “정부에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 = 보호무역주의가 철강업에만 위협을 가하는 건 아니다. 수입규제 조치는 전산업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료에 따르면 한국산 제품에 적용된 수입규제조치(반덤핑ㆍ상계관세ㆍ세이프가드)는 지난해 하반기 194건에서 올 상반기 200건으로 늘었다. 올해 16건의 규제조치가 종료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 적용된 규제는 22건이다. 

규제국가도 25개국에서 27개국으로 증가했다. 특히 미국ㆍ인도ㆍ중국 등 주요국 외에 신흥국들 사이에서도 규제가 늘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 총 194건의 규제 중 신흥국이 취한 수입규제 조치는 126건(64.9%)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200건 중 135건(67.5%)으로, 신흥국 규제 비중이 2.6%포인트 늘었다.

업계에선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수출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판로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라면서 “미국과 EU 등의 수입규제로 밀려난 제품이 자국으로 몰려들 것을 우려해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는 신흥국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시화하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 = 지난해 불거진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에 국내 경제가 휩쓸리고 있다. 당장 수출실적이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 연속 감소세다. 미국이 중국제품을 사들이는 양이 줄어든 만큼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대중對中 수출량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해 1~7월 누적 대미對美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4억 달러(약 2조9100원) 증가한 430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중 수출액은 929억 달러에서 771억 달러로, 158억 달러가량 쪼그라들었다. 총 수출액은 3485억 달러에서 3174억 달러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중국산 제품의 수요가 줄면서 중국 제품에 들어가는 우리나라 중간재의 수출 규모가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운업에서도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여파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이 줄어들면서 미주노선 운임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미주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평균 833에서 올 7월 802로 떨어졌다. 그만큼 수요가 줄었다는 건데, 이는 해운사 실적과 직결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악영향을 받을 거란 우려는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피해는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분위기는 다르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 보호무역주의 등 국내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굵직한 리스크가 숱하다. 어느 이슈 하나 소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리스크에 경중은 없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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