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국립민속박물관 현수막 논란

경복궁 인근 국립민속박물관 건물 돌계단에 걸린 현수막이 지탄을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과의 차별철폐를 주장하며 내건 현수막이 관람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일부에선 왜 강제철거를 안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이 현수막을 단지 미관상의 이유만으로 없애야 하는지 혹은 없앨 수 있는 것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립민속박물관 현수막 논란의 사실관계를 확인해봤다. 문체부도, 민노총도 잘 한 게 없었다.  

국립민속박물관 돌계단에 설치된 민주노총의 현수막에 관람객은 눈살을 찌푸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국립민속박물관 돌계단에 설치된 민주노총의 현수막에 관람객은 눈살을 찌푸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관광지에다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해도 너무한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건물 외벽 돌계단 앞에 걸린 현수막을 두고 이런저런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도 “현수막이 박물관을 점령했다” “박물관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관람까지 방해하는 이기주의”라는 이유를 들면서 불을 지폈다. 

논란의 현수막은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가 설치했다. 교섭노조연대는 문체부 소속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한 민주노총 소속 4개 노조(공공연대노조ㆍ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ㆍ전국대학노조ㆍ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가 문체부와의 교섭을 위해 뭉친 조직이다. 현수막엔 정규직과의 차별을 없애 달라는 취지의 요구들이 적혀 있다. 

강한 어조의 투쟁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고풍스러운 박물관과 어울리지 않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현장에서도 현수막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혀를 끌끌 차는 한국인 관람객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수층 일부에선 “민주노총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면서 “왜 문체부는 강제철거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합당한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현수막이 눈에 거슬리는 건 사실이지만, 정당성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팩트체크❶ 불법인가 = 길을 가다 보면 널린 게 현수막인데도 민노총 현수막이 유독 눈에 거슬리는 건 국립민속박물관의 위치와 외관 탓이다. 이 박물관은 경복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에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재로 오해할 만한 외형까지 갖고 있다.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의 현수막은 문체부 소속기관 곳곳에 걸려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의 현수막은 문체부 소속기관 곳곳에 걸려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재가 아니라 문체부 소속 공공기관이다. 일부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교섭노조연대가 고궁에 현수막이 건 게 아니라는 얘기다. [※ 참고: 1966년 국립민속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설계안을 공모했을 때, 다양한 문화재를 본뜬 설계안이 당선됐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보은 법주사 팔상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경복궁 근정전 등을 본떠 지어졌다. 그러다보니 마치 문화재 옆에 현수막을 설치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수막 게시의 정당성

게다가 교섭노조연대는 현재 문체부를 상대로 노동쟁의 중이다. 지난해 6월 ‘문체부가 사용자’라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온 이후 각 소속기관별 노조는 교섭노조연대를 꾸려 문체부에 처우개선 관련 교섭을 수차례 요구했다. 교섭이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않자 교섭노조연대는 찬반투표(4월)를 거쳐 노동쟁의에 들어갔다. 지난 5월부터 문체부 소속 공공기관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린 이유다. 

신영 노무법인의 양우연 노무사는 “사업장에서의 현수막 게시는 일상적인 노조활동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현수막 게시는 사용자의 시설관리권과 충돌하기 때문에 현수막 부착장소와 시설의 성질, 시설의 정상적 운영 지장 여부, 문구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당성 유무를 따진다. 이번 사안의 경우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따져 볼 때 정당성에 배치되지 않는 듯하다. 특히 교섭이 결렬된 후의 노동쟁의에 따른 거라면 더욱 그렇다.” 현재 문체부 측이 현수막을 쉽게 철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칫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될 수 있어서다. 

■팩트체크❷ 현수막 vs 광화문 천막 = 일부에선 “보수단체가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천막은 기를 쓰고 치우면서 왜 민주노총의 불법 현수막은 그대로 두느냐”면서 형평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잘못된 비교다. 광화문 광장 천막은 불법이지만, 교섭노조연대가 자신들의 일터인 박물관에 현수막을 건 것은 합법이다. 

똑같은 박물관에 문체부 소속기관 노조가 아닌 일반인이 현수막을 걸면 어떻게 될까. 문체부 관계자는 “한두차례의 계고를 거쳐 강제철거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보냐 보수냐의 기준이 아니라 불법이냐 아니냐가 관건이며, 이에 따라 박물관 현수막의 정당성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손 놨던 문체부도 실책

그렇다면 박물관 돌계단의 현수막은 정당성도 있고, 불법도 아니니 그저 관람객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고 강요하면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서울지방노동위가 자신들을 ‘사용자’로 규정했다면 문체부는 교섭노조연대의 교섭 요구에 응했어야 한다. 하지만 관람객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장소에 현수막이 내걸릴 때까지 문체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교섭노조연대와 현수막을 옮기는 방향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정작 현수막이 문제로 대두되자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교섭노조연대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아무리 자신들의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다른 공공기관과 성격이 다르다. 시민들이 관람을 하는 곳인데다, 문화재로 오인할 소지도 크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직전 정부들과 달리 친親노조 성향을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의 눈엔 민노총의 ‘초법적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교섭노조연대가 대외선전을 위해 선택한 현수막 전략이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렇게까지라도 하니까 관심을 가지니 어쩌겠나”면서 “문체부와 교섭이 되면 당연히 뗄 것”이라 말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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