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은행의 권유로 파생상품에 가입했다가 돈을 몽땅 날렸다.” “은행이 추천한 파생상품에 가입했다가 기업이 망했다.” 최근 발생한 파생결합증권(DLS) 사태와 2008년 키코(KIKO)는 닮은 점이 많다. 시중은행이 무차별적으로 상품을 판매했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기업과 금융소비자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를 만나 키코 사태와 파생상품의 문제점을 물어봤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왼쪽)는 “키코 사태와 DLS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단기성과만 좇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고 꼬집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왼쪽)는 “키코 사태와 DLS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단기성과만 좇는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고 꼬집었다.[사진=뉴시스] 

✚ 키코 사태를 설명해 달라.
“키코는 시중은행이 2007년부터 국내 수출기업에 집중적으로 판매한 파생금융상품이다. 일정 환율 안에선 수익을 얻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손실이 발생하는 상품이다. 은행들은 환차손을 줄일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라면서 이를 팔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고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은 큰 피해를 봤다.”

✚ 피해 규모가 상당하다.
“그렇다. 919개의 중소기업이 키코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보거나 파산했다. 확인할 수 있는 피해 중소기업 471개 중 235개 기업이 도산했다.”

✚ 2013년 대법원 판결로 키코 사태는 일단락된 것이 아닌가.
“2013년 대법원은 키코를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7년 금융혁신위원회가 대법원 판결이 끝나지 않은 회사가 분쟁조정을 통해 피해구제를 요청하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이를 금융감독원이 받아들이면서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 현재 진행 상황을 알려 달라.
“올해 6월 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 등 4곳의 기업이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현재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결과가 8월에 나올지 9월에 나올지 알 수 없다.”

✚ 은행들은 배상을 할 경우 배임으로 몰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기업에 손해를 입히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배임의 전제는 고의성이다. 금융당국의 행정 절차인 배상 권고를 따르는 건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 행정절차를 따르는 것을 고의로 은행에 손해를 입히고 피해기업에 이익을 주는 행위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도 있다.”

✚ 뭔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은 국세청과 법인세 소송 중이던 2005년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였다가 배임 혐의로 기소됐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키코 피해 中企 중 235곳 도산

✚ 공소시효가 소멸해 은행의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기업의 공소시효는 남아있다. 게다가 행정적 사건은 시효 문제가 아니다. 금융당국의 권고를 따르면 되는 일이다. 2017년 청구 소멸시효 완료를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던 생명보험사도 금융당국의 제재로 보험금을 지급했다. 금융당국의 의지 문제다.”

✚ 금융당국의 판단이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건 아닌가.
“대법원이 판단한 건 은행의 불공정행위 여부다. 게다가 대법원은 (불공정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지만) 불완전판매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불완전판매는 기업마다, 사안마다 다르다. 법원의 판결은 소송을 진행한 업체에 한정돼 있다는 얘기다.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기업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충분히 따져볼 여지가 있다.”

✚ 키코 피해기업은 여전히 사기라고 주장한다.
“피해기업과 시민단체 등은 키코를 사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분쟁조정을 통해 배상을 받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피해를 입은 기업의 입장에선 배상을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해 기업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거다. 분쟁조정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사기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추가로 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

2008년 터진 키코 사태로 900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었다.[사진=뉴시스]
2008년 터진 키코 사태로 900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었다.[사진=뉴시스]

✚ 분쟁조정 배상액이 피해액의 20~30% 수준이라는 예상이 나오는데.
“피해액은 기업의 사안마다 달라야 한다. 여기엔 지난 10년간의 피해도 포함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20~30%로 규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제외한 다른 해결 방법은 없나
“피해기업과 은행이 화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은행이 많이 하는 사회공헌활동 중 하나로 ‘키코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있다. 배상이 어려우면 조성된 펀드로 보상을 하고 저금리 대출로 피해기업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은행이 키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키코와 비슷한 DLS(파생결합증권) 사태가 터졌다. 한편에선 피해자의 책임도 크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 왜 그렇다고 보는가.
“키코 사태가 터졌을 때도 여론은 피해기업을 환투기 세력이라고 매도하지 않았나. 이번 사안 역시 정상적인 투자상품을 통해 투자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DLS 상품은 매우 기형적이고 불공정한 상품이다. 얻을 수 있는 수익은 4~5%에 불과한 데 손실 가능성은 100%에 이른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50~70대로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연령층이다. 투자성향을 조작하고 투자확인서를 임의로 작성했다는 사례는 물론 무자격자가 상품을 팔았다는 제보도 있다. 불완전판매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키코 사태도 이와 비슷하다. 둘다 정상적인 투자상품으로 보기 힘들다.”

“DLS 상품 기형적이고 불공정해”

✚ DLS·키코 사태와 같은 문제를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판매과정에서는 상품의 위험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요약본을 만들어 금융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상담·판매과정도 녹취하는 등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징벌적 과징금 부과 등 강력한 처벌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처벌이 약하니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 키코 사태보다 영향력이 커 보인다.
“키코 사태보다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DLS 문제는 손실이 확정되기 시작하면 불완전판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은행의 도덕적 해이로 금융소비자가 직접적인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 이번을 계기로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
“옳은 지적이다. 이번 사건이 국회에서 9년째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 통과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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