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무엇이 문제인가

파생결합증권(DLS)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회사의 말만 믿고 투자를 꾀한 투자자가 원금을 날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높이는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파생상품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금융회사와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번에야말로 파생결합상품의 잔혹사를 끊을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파생상품을 해부했다. 

금융회사들이 파생상품을 불완전한 방식으로 판매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금융회사들이 파생상품을 불완전한 방식으로 판매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아내의 퇴직금까지 4억7000만원을 투자했는데 3개월 만에 1억9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4월 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로 1억원을 투자했다가 9000만원을 날렸다.”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는 은행 직원의 말만 듣고 투자했다.”

파생결합증권(DLS)과 파생결합펀드(DLF)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릴 위기에 몰린 개인투자자들의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의 ‘DLS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상품의 기초자산인 독일 국채(10년물) 금리, 미국(5년물)과 영국(7년물)의 이자율스와프(CMS) 금리가 하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독일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우리은행의 파생상품은 국채 금리가 -0.25%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4.0%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반대로 금리가 -0.25%를 밑돌 경우 하락폭에 250배를 곱한 비율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금리가 -0.35%면 25%, -0.45%면 원금의 절반인 50%의 손실이 나는 구조다.

독일 국채금리가 지난 13일 이후 -0.60% 아래로 떨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이미 원금의 90%가 사라진 셈이다. 미국·영국 CMS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S도 금리가 약정한 금리를 유지하면 3.5%의 수익이 나지만 그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

DLS 판매잔액 8224억원 중 88.0%(7239억원)은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독일 국채가 기초자산인 DLS는 판매잔액 1226억원이 전부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예상손실액(8월 7일 기준)은 1204억원(예상손실률 95.1%)에 이른다. 미국과 영국 CMS에 투자한 DLS도 3354억(예상 손실률 56.2%)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마저도 만기까지 현재 금리 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에서 계산한 추정치다. 금리가 떨어질 경우 손실은 더 커질 수 있다. 쉽게 말해, 3.0~4.0%의 수익을 내려다 100% 손실을 떠안게 됐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개인이 상품의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해 손해를 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장의 중론이다.

피해자의 대다수에게서 “안전한 상품이다.” “독일·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 “지난 10년간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등 은행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만 믿고 상품에 가입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고객의 투자 성향보다 공격적인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표준투자권유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객의 투자자 정보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파생상품 판매 자격이 없는 은행원이 상품을 권유·판매했다는 제보도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한 은행 직원의 블라인드 앱에서 실시한 설문조사(245명 참여)에서는 전체의 64.5%가 ‘자격증이 없는 직원이 고객에게 상담과 가입을 권유한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관련 소송에 돌입한 법무법인 한누리도 불완전판매의 소지가 크다고 꼬집었다. 한누리는 ▲기초자산인 독일·영국·미국 등의 금리하락세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상품판매가 이뤄진 점 ▲상품 수익구조의 불균형이 극심한 점 ▲적합성의 원칙과 설명의무·투자자보호의무 등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불완전판매의 이유로 꼽았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파생상품 논란

어쨌거나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부인한 채 금감원의 검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문제는 파생결합상품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2008년 키코(KIKO·Knock In Knock Out·KIKO) 사태가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파생결합상품이 불러온 피해 뒤에는 금융회사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2008년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 = 2005년 11월 우리은행은 우리파워인컴펀드 1호·2호를 출시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주부·퇴직자·고령자 등 2277명의 고객에게 1506억원을 판매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6년 만기였던 이 상품의 만기 수익률이 각각 -96.07%, -90.38%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은행은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라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 탓에 손실이 발생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원금 손실할 수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이었지만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국고채 수익률에 가산금리를 더해 확정금리를 지급하는 예금인 것처럼 판매했다. 우리파워인컴펀드 사건이 ‘서민 노후자금을 날린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불린 이유다. 펀드에 투자한 피해자가 건진 돈은 원금의 20~40%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5년이라는 지루한 법정공방을 거친 결과였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의 파생결합증권(DLS) 판매잔액 8224억원 중 7239억원이 손실구간에 진입했다.[사진=뉴시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의 파생결합증권(DLS) 판매잔액 8224억원 중 7239억원이 손실구간에 진입했다.[사진=뉴시스]

■2008년 키코 사건 = 키코 사건은 파생상품에 금융회사의 탐욕이 숨어있었던 사례다. 키코는 원·달러 환율이 일정한 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을 적용 받을 수 있게 설계된 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헤지를 위해 키코에 가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문제는 상품에 숨은 옵션이었다. 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약정 범위 아래로 내려가면 계약을 무효로 하는 단서를 달았다.

반대로 환율이 약정 범위를 한번이라도 웃돌면 환율 상승분의 2~3배를 지불하게 하는 콜옵션(Call Option)을 걸었다. 환율이 약정 범위를 넘을 경우 2년 동안 계약을 해지할 수도 없고 상한선이 없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았고(달러 강세)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고객보호는 뒷전인 금융회사

피해기업들이 키코가 환헤지가 목적이 아닌 불완전판매를 노리고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키코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금감원에 따르면(2010년 6월 기준) 675개의 중소기업이 3조224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키코 사태로 폐업·부도·법정관리·워크아웃 등으로 사라진 기업은 78곳(2009년말 기준)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금융회사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가 참혹했다는 얘기다.

■ELS 종가조작 사건 = 파생결합증권(ELS)의 기초 자산인 주가를 조작한 경우는 한두번이 아니다. 2009년 대우증권 ELS 종가조작, 2010년 한화 ELS 종가조작·도이치뱅크 옵션 쇼크 등이 대표적이다. ELS의 기초자산인 주가를 의도적으로 폭락시켜 부당이익을 취하거나 상품의 중도상환을 막아 고객에게 손실을 입혔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조작사건에 2012년 이후 증시마저 침체되면서 ELS의 인기가 시들해졌다”며 “저금리 기조까지 더해지자 투자자의 수요가 ELS에서 DLS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그는 “파생결합상품의 문제는 판매과정에서 많이 나타난다”며 “고위험 상품을 안전한 상품으로 소개하거나 원금손실 가능성을 숨기는 경우가 숱하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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