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봐야 할 2030세대의 진심
조국과 딸 비판이 부당한 걸까
2030세대 가시밭길 알고 있는가

‘내편’이 아니었다면 조국(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을 감싸는 정치인이 있었을까. ‘남의 편’이었다면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고 온갖 비난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자신이 딸이 아니었다면 조국은 또 어떻게 쏴붙였을까. 참 이상하다. 조국의 딸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었는데, “괜찮다”“힘내라”“(조국 딸을 공격하는 건) 부당하다”는 말이 나온다. ‘내편’이어서일까,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그런 꽃길’을 만들어줬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네 2030세대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몰라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30세대의 한탄을 들어봤다. 실제 이야기이지만 익명으로 처리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 프리패스나 장학금 논란은 학자금 부담에 허덕이는 취준생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줬다.[사진=연합뉴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 프리패스나 장학금 논란은 학자금 부담에 허덕이는 취준생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줬다.[사진=연합뉴스]

# J씨는 또 떨어졌다. 면접 때 우물쭈물 대답한 게 실수였다. 서류라도 붙은 건 그나마 서울 안에 있는 A대 졸업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현장 경험이 있느냐는 말에 예전에 했던 아르바이트를 떠올리고 대답했지만 면접관들은 “다 좋은데 실무 경험이 없네”라고 평가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벌써 서울시청 앞. 전광판에선 오늘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뉴스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정치인(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기업에 자녀의 이력서를 직접 전달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기분 탓일까. J씨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부모님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스펙이 부족해서, 실무 경험만 있었어도….” J씨는 자책했다.

비정상적으로 스펙 쌓는 이유 

한번 면접에서 떨어지면 하루 동안은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지만 어김없이 ‘채용 알림’이 떴다. 마케팅 분야 인턴을 구하는 내용이다. ‘회사 내규에 따른다’고 적혀 있어 급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여기도 복사나 잔심부름만 시키는 ‘흙턴’일 가능성이 높다. 영양가 없는 일이라도 회사 생활 경험이 없는 J씨에게는 필요하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라도 알 수 있다면 면접 때 ‘대답거리’가 될 수 있을 거다. J씨는 주저 없이 ‘입사 지원’을 눌렀다.

흙턴. 잡무만을 하거나 최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인턴을 의미하는 속어다. 아무도 원할 것 같지 않지만 취업준비생 10명 중 절반가량은 흙턴이라도 감사하다. 사람인이 취업준비생 20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인턴에 참여하고 싶은 취준생은 64.9%였다. 이 중 ‘흙턴’이라도 좋다는 응답은 49.6%에 달했다. 그 이유는 기업이 ‘실무 경험’을 원해서다. 기업 인턴을 원하는 응답자의 41.7%는 ‘흙턴’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면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기력한 기분이 들었지만 J씨는 정신줄을 놓을 수 없었다. 오늘 오후만 해도 그래픽 학원에서 포토샵 강의를 들어야 한다.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지만 ‘영상 제작’ 기술을 우대하는 일자리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자격증 하나라도 더 추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J씨가 고른 ‘스펙’이었다. 함께 학원을 알아보며 자소서 대필 의뢰까지 맡겼던 대학 동기는 최근 공무원 시험으로 돌아섰다.

그래,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J씨와 친구는 비정상적으로 스펙에 몰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준생 사이에선 비정상이 곧 정상이다. 사람인이 성인 9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 시장 비정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이 가장 비정상적인 요소로 꼽은 건 ‘과도한 스펙 쌓기(52.7%ㆍ복수 응답)’였다. ‘공무원 시험 올인(40.4%ㆍ복수 응답)’ 현상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2위를 차지했다. 비정상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47.0%ㆍ복수 응답)’는 점이었다.

일그러진 취업 시장에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J씨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력서를 회사 대표에게 직접 찔러 넣어 줄 사람이 없으니 이력서에 채울 것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했다. J씨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조국 딸 참 부럽다.” 서글픈 혼잣말이었다. 

최악의 경쟁자는 낙하산 

# 대학 졸업 후 2년째 구직 중인 K씨. 수십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드디어 최종 면접을 앞뒀다. 꼭 다니고 싶은 회사였다. 어떤 질문이든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면접장에 들어섰다. 한 면접관이 옆자리 지원자에게 알은체를 한다. 낙하산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영어 질문이 들어왔지만 자기소개부터 머뭇거렸다. 천만다행으로 낙하산은 입도 제대로 못 뗐다. 

다음날,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K씨는 합격자 공지를 띄웠다. 없다. 몇번을 다시 봐도 K씨의 수험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졌다. 서류부터 면접까지 지난한 과정을 또 어떻게 거칠지, 대체 ‘취준’이라는 터널의 끝은 어딘지 아득했다. 문득 낯익은 수험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옆자리 낙하산의 번호다. 

과도한 스펙 쌓기는 ‘비정상적’으로 여겨지지만, 할 수 있는 게 스펙 쌓기뿐인 취준생도 많다.[사진=뉴시스]
과도한 스펙 쌓기는 ‘비정상적’으로 여겨지지만, 할 수 있는 게 스펙 쌓기뿐인 취준생도 많다.[사진=뉴시스]

거실 TV에선 조국 후보자 딸의 소식이 흘러나왔다. 고교 시절 인턴십 2주 만에 논문 제1저자에 올랐단다. K씨의 뇌리에 질문마다 실없이 답을 하던 낙하산이 스쳤다. 뉴스를 보며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부모님께 뭐라고 말할지, 마음이 복잡하다. 이게 어디 K씨만의 이야기랴. 구직자 2명 중 1명은 낙하산 등 채용 비리를 겪는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6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직활동 중 불공정한 채용을 경험한 이들이 절반(51.7%)에 달했다.

이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낀 원인은 ‘내정자가 있는 듯한 채용 진행(50.9%ㆍ복수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가족관계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질문(39.8%)’ ‘면접에서 특정 지원자에게만 질문 몰림(33.3%)’ 등도 있었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열망하는 취준생에게 낙하산은 최악의 경쟁자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346명에게 면접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경쟁자가 누군지 묻자 ‘내정된 낙하산(31.8%)’이 1위에 올랐다. 피하고 싶은 이들 중엔 ‘명문대 출신ㆍ해외파(8.7%)’와 ‘금수저(3.8%)’도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정당한 평가를 방해해서(31.2%ㆍ복수 응답)’다. ‘노력해도 넘기 힘들어서(30. 9%)’ ‘주눅 들게 만들어서(29.2%)’ ‘실력과 상관없이 주목받아서(22.3%)’도 마찬가지다.


부모 질문은 금기 아닌가요?

K씨가 절박한 이유는 또 있다. 구직 기간과 비례해 부모님께 받는 경제적 지원이 늘어난 탓이다. K씨는 부모님에게 빚을 졌다고 느낀다. 서울의 한 사립대를 나온 K씨는 학기당 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부모님의 손을 빌렸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니 장학금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이런 K씨에게 고소득층 자녀가 6학기 연속으로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아르바이트하랴 밤샘 공부하랴, 아등바등한 스스로를 생각하면 자괴감이 든다. 학비, 생활비, 구직 비용까지. 벌써 수천만원이다. 올해도 이 돈을 갚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K씨는 절망에 빠졌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2866명 중 95.4%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갚아야 할 빚으로 여겼다. 그 지원으론 ‘등록금 등 학비(58.5%)’가 가장 많았다. 장학금은커녕 부모님에게 학비 지원을 받는 이들이 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K씨의 부모 역시 조 후보자 뉴스를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K씨가 아직 취업하지 못한 게 본인들의 탓이라고 여겨서다. K씨의 어머니는 주부다. 아버지는 중소기업 영업직으로 30여년 일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배경이 좋았더라면 K씨를 어떻게든 좋은 직장에 취업시켜주지 않았을까라는 상념에 휩싸였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수많은 구직자는 면접 때 부모님 직업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구직 경험이 있는 4153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7.0%가 ‘면접에서 개인정보 질문을 받았다’고 답했다. 받은 질문은 ‘결혼 여부(30.0%)’ ‘출신지(23.0%)’ ‘부모 직업(20.0%)’ ‘용모(15.0%)’ 등이었다.

이중 구직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한 질문으로 ‘부모 직업(83.7점ㆍ5점 척도ㆍ100점으로 환산, 5점에 가까울수록 부담스러움)’이 1위에 올랐다. 금지했으면 하는 질문 1위도 ‘부모 직업(77.0%ㆍ복수 응답)’이었다. 구직자 실력과는 상관없는 부모 직업 평가가 아직도 면접장에서 횡행한단 얘기다. 

# 직장인 A씨는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를 켠다. 일종의 루틴이다. 출근 준비를 하며 듣는 채널에선 연일 조국 후보자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오늘은 A씨가 평소 좋아하던 논객이 출연했다. 조 후보자를 지원사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생들의 촛불집회를 두고 “물 반 고기 반”이라며 정치세력이 집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깎아내렸다. “그들은 2030세대가 분노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A씨는 씁쓸했다. 

출근 지하철에 몸을 실은 A씨는 8년 전 이맘 때를 떠올렸다. 의사를 꿈꿨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 작은 방을 잡고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가족도, 친구도 멀리한 채 시험준비에 매달렸지만 낙방했다. 14명을 뽑는데 126명이 몰렸고, A씨는 그 안에 들지 못했다. 합격 통지서를 들고 아버지께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두번째 시험을 준비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장 학원비며 생활비 지원이 끊겼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다. A씨는 의사가 되기엔 스스로 노력과 역량이 부족했다고 여기면서도, 근래의 뉴스에 맘이 아렸다. ‘나는 기를 쓰고 잘 보려 했던 시험이 누군가에겐 그저 형식이었구나’ 싶어서였다. 부모의 경제력은 자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수저 계급’은 실재한다는 거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성인남녀 13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18년), 전체의 90.3%가 “수저 계급론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고 답했다.


흙수저 A씨 입맛 껄끄러운 이유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7.1%가 ‘부모의 재력’을 꼽았다. ‘개인의 역량(18.1%)’보다 훨씬 앞선 수치였다. 흥미로운 건 2013년 실시한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에선 ‘학벌(26.1%)’이 1위로 꼽혔다는 점이다. 개인의 역량이나 학벌보다 부모의 재력이 성공을 좌우하는 사회가 됐다는 방증이다. 

구직자 2명 중 1명은 낙하산 등 채용 비리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구직자 2명 중 1명은 낙하산 등 채용 비리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A씨는 금수저도,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떳떳했고, 큰돈을 벌지 못해도 만족했다. 올해 초 사장 아들이 후배로 입사하기 전까진 그랬다. ‘후배님’이 들어오자 사무실 공기부터 달라졌다. 부장마저 후배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했다. 그날 점심 식사를 위해 부서원 모두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하필이면 TV에선 조 후보자 딸의 입시 ‘프리패스’ 논란이 흘러나왔다. 가장 당황한 건 부장이었다. 프리패스로 입사한 후배가 불편할까봐 애쓰는 부장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때 A씨의 휴대전화에 문자 한통이 도착했다. 전세자금 대출 원리금이 빠져나간 알림문자였다. A씨의 통장잔고는 초라해졌다. 그날 밥맛은 왠지 밥맛이었다. 

A씨뿐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직장인은 빚을 떠안고 살아간다.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 결과(2019년), 직장인의 66.4%가 “빚이 있다”고 답했다. 빚을 진 주요 원인으로는 ‘등록금 등 학비(22.8%)’가 가장 많았고, 이어 ‘전월세 자금(21.4%)’ ‘내집 마련비(21.4%)’ ‘생활비(12.9%)’ 등의 순이었다.

빚이 삶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빚 때문에 ‘미래 목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자는 76.5%에 달했고 ‘주거 불안정(29.1%)’ ‘결혼 미룸(29.1%)’ 등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빚을 갚지 못하는 직장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12월 기준) 중소기업 직장인의 평균 대출금액은 3190만원, 대기업 직장인은 6515만원이었다. 연체율은 중소기업 직장인이 0.88%로 대기업 직장인(0.27%)보다 훨씬 높았다. 더욱이 중소기업 직장인의 연체율이 전년 동월 대비 0.09%포인트 증가했다. 어느 엘리트의 말처럼 ‘조국만큼 갖지 못한 자’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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