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 제약ㆍ바이오社 전수조사 해보니…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이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공시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제약ㆍ바이오기업들이 공개하는 정보가 충분치 않아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금감원의 발표 이후 제약ㆍ바이오기업들의 공시 실태는 개선됐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코스피ㆍ코스닥 40개 제약ㆍ바이오기업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단 20%만이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은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공시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은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공시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투자자들이 종목을 선택할 때 판단 근거가 되는 것 중 하나는 공시公示다. 공시는 투자자나 이해관계자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기업이 사업 내용ㆍ재무상황ㆍ영업실적 등을 알리는 걸 말한다. 공시가 정확하지 않거나 불충분하면 투자자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이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공시실태 및 투자자 보호방안’을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감원은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한 163개 제약ㆍ바이오기업의 사업보고서(2017년)를 살펴본 결과, 투자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제약ㆍ바이오산업이 신성장 산업으로 주목 받으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중요한 정보와 위험 요인을 알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가령, 제약ㆍ바이오기업의 연구ㆍ개발(R&D) 성과는 연구 인력의 능력에 좌우되지만,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연구 실적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임상시험의 중단ㆍ실패 여부를 공개하는 기업도 드물다. 회계처리 내역을 공시하지 않아 재무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곳도 수두룩하다. 다른 기업과 체결한 라이선스 계약에선 리스크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확보 가능한 계약금을 기재하지 않는 곳도 많다. 

이런 정보 불균형은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고질병이었다. 원금의 몇배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다줘도, 반대로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도 ‘왜 그런지’ 아는 투자자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2016년 6월 65만원대(장중가)까지 올랐던 한미약품의 주가가 반년 만인 2017년 1월 25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제약ㆍ바이오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신라젠은 한때 10조원을 넘어섰던 시가총액이 9개월여 만에 6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정보 불균형 고질병 언제까지…

투자 전문가들은 실패의 1차적인 원인이 투자자들에게 있다고 꼬집는다. 제약ㆍ바이오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기루’에 홀려 투자를 단행했다는 거다. 신약의 예를 들어보자. 신약을 개발하고 있거나 신약 기술을 글로벌 기업에 팔기라도 하면 주가는 훌쩍 뛰게 마련이다.

문제는 신약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걸 투자자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 기술을 팔더라도 계약서에 적힌 금액을 전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이 역시 투자자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이 때문에 투자 실패의 2차 책임은 기업에 있다. 통상 기업들은 위험요인뿐만 아니라 사소한 정보를 알리는 데도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개발 중인 신약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성공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외부 리스크는 없는지 등의 투자자들이 발을 뺄 만한 이슈는 웬만해선 공개하지 않았다는 거다. 작은 이슈 하나에도 주가가 널을 뛴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금감원이 꺼내든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공시실태 및 투자자 보호방안’에 수많은 이목이 집중된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금감원은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 제약ㆍ바이오기업의 의견을 받아 제약ㆍ바이오산업의 위험요소를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공시실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했다. 이른바 제약ㆍ바이오기업의 공시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신약 개발을 중단한 신라젠은 9개월여만에 시총이 약 9조원 빠졌다.[사진=연합뉴스]
신약 개발을 중단한 신라젠은 9개월여만에 시총이 약 9조원 빠졌다.[사진=연합뉴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제약ㆍ바이오기업이 공시해야 할 내용은 간략하게 이렇다. ▲라이선스 계약에서의 유의사항(상대기업ㆍ계약조건ㆍ임상단계 등) ▲연구개발조직의 세부사항(조직구성ㆍ인력현황ㆍ경력사항) ▲연구개발비용 회계처리 내역 ▲진행 중인 연구개발실적(경쟁제품ㆍ시장규모ㆍ진행결과 등) ▲완료된 연구개발실적 등이다. 특히 기업 간에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금감원이 제시한 양식으로 통일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제약ㆍ바이오기업들의 공시 실태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코스피ㆍ코스닥 시장 내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개 기업을 각각 뽑아 이들 기업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살폈다. 코스피 시장에선 셀트리온부터 삼진제약까지 20개 기업, 코스닥 시장에선 헬릭스미스에서 유틸렉스까지 20개 기업을 선정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행률은 매우 저조했다. 금감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시 강화 항목은 총 8개다. 라이선스아웃 계약ㆍ라이선스인 계약ㆍR&D 조직개요 ㆍR&D 인력현황ㆍR&D 핵심인력ㆍR&D 비용ㆍR&D 진행실적ㆍR&D 완료실적이다.

하지만 금감원이 제시한 8개 항목 모두에서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곳은 총 8곳(코스피 3곳ㆍ코스닥 5곳)에 불과했다. 비중으로 따지면 20.0%다. 나머지 32개 기업은 한개 이상의 항목에서 금감원이 제시한 양식을 따르지 않았거나 정보를 누락했다는 얘기다.

항목별로 보자. 라이선스아웃ㆍ인 계약 항목에선 각각 23곳, 13곳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나머지 17곳, 27곳은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건데, 그중 1곳과 9곳은 계약 내용조차 명시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가이드라인 양식을 따르지 않거나 일부 정보를 누락한 기업들이다. 특히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지급하거나 지급받은 계약금을 기재하지 않은 곳이 가장 많았는데 “상대 기업과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게 공개하지 않는 이유였다. 

 

R&D 조직 부문은 크게 조직개요와 인력현황, 핵심인력으로 항목이 나뉜다. 각각의 항목에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은 곳은 17곳ㆍ9곳ㆍ15곳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장 많이 누락된 정보는 핵심인력의 연구실적이다. 제약ㆍ바이오기업의 회계처리 내역을 알 수 있는 R&D 비용 항목에서는 6곳, R&D 완료실적은 19곳이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R&D 진행실적이다. 제약ㆍ바이오기업이 개발 중인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시장성과 경쟁력이 있는지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약 개발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점은 성공확률과 트렌드, 경쟁력이다. 먼저 성공확률을 따지려면 앞서 언급한 R&D 부서의 연구능력과 함께 임상시험이 몇단계까지 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의무사항도 아닌데, 굳이…

트렌드도 중요하다.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신약개발에 성공해도 큰 수익을 내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경쟁력은 경쟁사가 개발 중인 같은 종류의 신약과 비교해서 얼마나 임상이 앞서 있는지, 얼마나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뜻한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약 개발이 도중에 중단되는 사례 중 상당수는 경쟁사에 밀렸을 때”라고 말했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임상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는 경쟁 약품보다 효능이 우월한지를 따져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금감원은 제약ㆍ바이오기업의 R&D 진행실적에 적응증을 비롯해 제품의 특성, 진행경과, 경쟁제품, 관련 논문, 시장규모 등을 공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40개 제약ㆍ바이오 기업 중 14곳은 여전히 이런 정보들 중 일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누락되는 정보는 경쟁제품과 관련 논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경쟁제품에 밀려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관련 논문은 해당 의약품의 트렌드와 시장성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다. 투자자로선 이 두가지 정보가 빠진 신약을 정확히 판단하기란 어려울 거란 얘기다.

 

지난해 금감원이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후 시장 안팎에서 기대했던 양상과는 다르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금감원의 개선안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시 모범사례는 권유와 독려 차원에서 제시한 것이지 강제하기 위한 게 아니다”면서 “꾸준히 두고 보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지, 당장 강제하고 그럴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처럼 강제사항이 아니다 보니 이렇다할 관리ㆍ감독 계획도 없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제약ㆍ바이오기업들도 해마다 사업보고서를 점검하는 데 그친다. 미흡한 부분이 발견돼도 수정해달라고 요청할 뿐이다. 

제약ㆍ바이오기업도 의무사항이 아니라면 굳이 독이 될 만한 정보를 실을 이유가 없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에 부정적인 정보를 알려서 좋을 게 없는데 뭣 하러 공개를 하느냐”면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신약 개발이라는 미래가치에 좌우되는 제약ㆍ바이오기업은 주가가 얼마나 오르고 내리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가장 쉽게 컨트롤하는 방법은 정보를 제한하는 거다. 정보 공개 여부의 결정권이 기업에게 있는 한 투자자 보호의 길은 쉽게 오지 않을지 모른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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