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 못하는 중소기업

4차 산업혁명기, 혁신적 디지털은 기업의 생사를 가늠할 만한 변수다. 국내 대기업이 디지털 혁신에 통 큰 베팅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투자 여력이 크지 않은 데다, 디지털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곳도 숱해서다. CEO 10명 중 8.5명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어떤 소프트웨어가 필요한지 모른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디지털 혁신을 못하는 중소기업의 문제를 살펴봤다. 

혁신기술을 중소기업에서 받아들여 성과로 연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사진=뉴시스]
혁신기술을 중소기업에서 받아들여 성과로 연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사진=뉴시스]

“2022년까지 국내 제조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 3만개를 도입한다. 도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마트공장의 단계별 고도화를 지원할 것이다. 중소기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국가·신산업 기반을 다지겠다.” 8월 26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년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ITS2019)’에 참석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말이다.

ITS2019는 한국의 대표 중소기업 기술 박람회다. 행사장엔 100여개의 중소기업이 갈고닦은 기술을 뽐내고 있었다. 공중엔 GPS를 장착한 드론이 안정적으로 비행하고 있었고, 경북 경주에 위치한 제조공장과 전시장을 연결해 공정의 실시간 제어를 시연한 기업도 눈에 띄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술과 제품을 선보인 기업도 많았다.

ITS2019 관계자는 “중소기업도 첨단기술에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ITS에 참가하는 기업 규모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중소기업이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경제의 현실은 ‘중소기업 9988’이다. 전체 기업 가운데 99%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전체 노동자 88%가량을 중소기업이 고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의 도약 없이 성장과 분배를 개선하는 건 어렵다.

분야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은 중소기업에 성장 사다리로 꼽힌다. 과거엔 자본과 노동력이 우월한 대기업에 유리한 경영 환경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다르다. 기술과 유연성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 때문인지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목표도 IT 기술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 장관이 언급한 ‘스마트공장 3만개 도입’엔 설비 투자자금 지원 2조원이 책정됐다. 정부는 스마트공장 3만개로 일자리가 6만6000개 늘어나고, 중소기업 매출 18조원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 계획대로 한국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모든 중소기업이 이런 첨단기술의 이기利器를 누리고 있는 건 아니라서다. 중기벤처부가 3700개 중소기업의 IT 인프라 구축 수준·활용도 등을 점수로 환산한 ‘중소기업 정보화수준 조사’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자료집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중소기업의 정보화 수준은 100점 만점에 61.05점의 평가를 받았다. 전년(59.97) 대비 1.08점 오르는 데 그쳤다. AI, IoT 등 각종 기술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던 걸 감안하면 신통치 않은 성적이다. 대기업(72.92점)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종사자 규모별로 따져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10~19인(-3.63점)’ ‘20~49인(-6.96점)’ ‘50~99인(-7.00점)’ ‘100~299인(-4.52점)’ 등 대부분 기업의 정보화수준 점수가 전년 대비 하락했다. 그나마 전년 대비 4.04점 오른 5~9인 중소기업이 선방하면서 평균을 소폭 끌어올렸다.

제조 중소기업 IT 수준은 후퇴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꾀해야 할 제조 중소기업의 정보화 수준은 60.96점으로 2016년 대비 3.86점이나 후퇴했다. 우리 중소기업이 IT 혁신에 투자한 금액 역시 마찬가지다. 2016년엔 연평균 5520만원을 투자했는데, 2017년엔 5210만원으로 5.6% 감소했다. 글로벌 사회가 ‘IT 혁신’을 외치는 가운데 한국 중소기업의 IT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인식 결여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중소기업 중 IT 전담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11.7%에 불과했다. 첨단 기술력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IT인력은 뽑지 않는다는 얘기다.

CEO 역시 기술혁신에 둔감했다.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추기 위해 당신의 회사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필요한지’를 인식하고 있는 CEO는 15.7%에 그쳤다. “관심은 있지만 정확히 뭐가 필요한지 모른다”고 답한 CEO는 절반(56.0%)을 넘었다. 아예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CEO 역시 28.3%나 됐다.

그렇다고 정부 정책이 중소기업의 혁신화를 제대로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숱한 지원책에도 정보화 추진계획을 실행하고 있거나 수립 중인 기업은 전체 3700개 기업 중 절반(54.6%)에 그쳤다. 이중에서도 계획대로 실행 중인 기업은 10.4%, 실행을 앞두고 있는 기업은 12.5%에 불과했다. [※ 참고: 8월 28일 기준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한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지원사업은 1021건이다. 이중 기술 관련 정책지원만 해도 344건에 이른다.]

정부의 정책 지원이 집중된 스마트공장을 바라보는 중소기업 업계의 시선도 차갑다. 조사 기업 중 4.4%만 스마트공장을 도입했다. 향후 스마트공장 도입계획이나 의향이 있는 기업은 8.5%였다.

오동윤 동아대(경제학) 교수는 “중소기업의 수가 많다는 이유로 비슷한 내용의 지원 정책만 쏟아지는 상황”이라면서 “이마저도 정치권에선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선 중장기 성장 전략을 세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오 교수는 “‘스마트공장 3만개 도입’ 같은 양에 집착하는 지원이 아닌 질에 초점을 맞춰 정책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계가 4차 산업혁명을 도약 기회로 삼기 위해 필요한 건 말만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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