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건축학

❶신경희, 잠자는 도시-다리, 100x160㎝, 혼합매체, 2000년 ❷신경희, 수영복-기억, 77x77㎝, 모노타이프 실크스크린, 1991년
❶신경희, 잠자는 도시-다리, 100x160㎝, 혼합매체, 2000년 ❷신경희, 수영복-기억, 77x77㎝, 모노타이프 실크스크린, 1991년

1990년대 신경희의 등장은 화단의 관심을 모았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그는 일약 미술계의 ‘스타’가 됐다.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 여성작가로 뛰어난 활동을 보였던 그는 2010년부터 병마에 시달리다 2017년에 세상을 떠났다.

요절한 여성작가 고故 신경희(1964~2017년)의 개인전 ‘Memory-땅따먹기’가 개최된다. 작가의 작고 2주기를 기리는 전시로 400여점의 유작 중 대표작 40여점을 선보인다. 그가 활발히 활동했던 1990년대 작업과 마지막으로 국내 개인전을 열었던 2003년 이후 미발표 유작을 소개한다.

신경희는 재료 기법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회화·판화·평면·입체·설치를 아우르는 탈장르적 형식을 추구했다. 자신의 내밀한 기억을 보편적 내용으로 확장하는 등 독창적인 세계를 작품에 담아냈다.

판화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동시대의 조형언어를 폭넓게 수용하는 열린 형식을 주로 사용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 특유의 ‘기억의 건축학’이 조형언어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❸신경희, 퀼트 23, 133x103㎝, 수제 종이에 혼합매체, 2003년 ❹신경희,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방울방울, 162x112㎝, 혼합매체, 1997년 ❺신경희, 정원 도시, 117x90.5㎝,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6년
❸신경희, 퀼트 23, 133x103㎝, 수제 종이에 혼합매체, 2003년 ❹신경희,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방울방울, 162x112㎝, 혼합매체, 1997년 ❺신경희, 정원 도시, 117x90.5㎝,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6년

1990년대에 발표한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 시리즈는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된 다양한 이야기를 불러내 오늘의 삶과 연결한 그림이다. 신경희는 그림일기, 땅따먹기 같은 작은 이야기에서 출발해 ‘지금, 여기’ ‘나와 타자’의 문제로 내용을 확장한다.

구상과 추상, 이미지와 기호가 반복되는 다중적 구조, 평면·입체·판화·설치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수제 종이를 손바느질로 이어 짠 ‘퀼트(Quilt)’는 섬세한 감성과 조형 세계의 압축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0년대에는 ‘잠자는 도시(Sleeping City)’와 ‘정원 도시(Garden City)’ 시리즈를 발표했다. ‘잠자는 도시’는 기존의 병치 나열 구성을 유지하면서 자연과 도시 풍경을 추상화한 작품이다. 이후 작가는 ‘정원 도시’로 작품의 변신을 꾀했다. 이 시리즈는 자연을 현대 회화의 문법으로 해석한 그림이다. 꽃이나 식물 같은 구체적인 모티프가 등장하는 작품도 있지만 점과 선의 미세한 입자로 모든 자연을 압축한 추상 작품이 많다.

이번 전시는 신경희의 ‘정원 도시’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공개하는 자리다. 학고재 본관에서 9월 10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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