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증오와 혐오 거대한 전선
[Economovie] 증오와 혐오 거대한 전선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54
  • 승인 2019.09.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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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헤이트풀 8(Hateful 8) ❶

‘헤이트풀 8(Hateful 8)’은 내놓는 영화마다 화제를 몰고 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여덟번째 작품이다. 2015년에 공개한 이 영화는 역시 타란티노스럽다. 타란티노의 브랜드와도 같은 ‘복수’ 코드는 빠져 있지만 이를 부득부득 가는 듯한 ‘증오’ 코드는 전작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우리 마음속에 살고 있는 괴물과 귀신은 ‘증오’와 ‘혐오’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1861~ 1865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아마도 1870년대 어느 시점인 듯하다. 조지아, 앨라배마, 사우스 캐롤라이나처럼 남북전쟁의 광기가 집중적으로 할퀴고 지나가지는 않은 궁벽진 와이오밍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타란티노의 증오극의 막이 오른다. 

와이오밍 주의 몸을 숨길 곳조차 없는 허허벌판에 지독한 혹한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용무가 무엇이 됐든 그런 날씨에 길을 나선다는 것은 곧 죽음에 가깝다. 그 근방을 말 타고, 혹은 마차를 타고 지나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긴급대피소를 찾듯 ‘미미네 여관’으로 몰려든다. 평상시라면 절대로 한 지붕 아래 머물지 않을 8명이 미미네 여관의 넓지 않은 홀에서 원치 않은 ‘일행’이 된다. 

그중에는 북군 장교로 활약했던 워렌 소령(새뮤얼 L. 잭슨)이 있다. 흑인으로 소령 계급까지 오르고 링컨 대통령의 친서까지 신줏단지 모시듯 품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그 활약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군복무 경험을 살려 전쟁이 끝난 후 현상금 사냥꾼으로 나서 전국을 돌며 현상수배범과 탈옥범들을 ‘사냥’한다.

그러나 워렌 소령은 단지 현상금만을 위해 사냥에 나선 생계형 현상금 사냥꾼은 아닌 듯하다. 현상수배범을 죽여서 데려가든 산 채로 데려가든 받는 돈은 같음에도 워렌은 붙잡은 수배범을 굳이 산 채로 데려가 교수형당하는 ‘꼴’을 보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와이오밍 주의 한 여관에 서로 다른 증오를 품은 8명이 모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와이오밍 주의 한 여관에 서로 다른 증오를 품은 8명이 모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죽여서 시체를 싣고 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한 길이건만 흉악범을 산 채로 끌고 가는 불편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일견 강직해 보이지만 그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흉악범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총알 한방으로 간단히 처단하기에는 증오심이 너무 깊다. 목에 밧줄이 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목이 매달리는 꼴을 보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워렌은 최악의 사이코패스 여자 살인마의 사냥에 성공한다. 그 정도 신출귀몰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죽여서 데려가는 것이 백번 안전할 텐데 워렌의 증오심은 그 살인마를 묶어 동행하는 위험을 택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난장판이 거기에서 시작된다. 혹한과 눈보라를 피해 미미네 여관에 대피한 또 다른 인물은 남북전쟁은 끝났지만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증오의 상대가 된 남군 출신 백인 장교와 병사들이다. 남군 출신 백인과 북군 출신 흑인의 ‘잘못된 만남’이 좁은 여관 홀에서 이뤄진다.

여관 밖은 단 10분도 견딜 수 없는 혹한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우리는 세상에 괴물이나 귀신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국 스릴러 소설의 최고 작가인 스티븐 킹은 스릴러 작가답게 괴물과 귀신이 세상에 실재한다고 말한다. 괴물과 귀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살고 있으며 가끔은 그 괴물과 귀신이 우리를 이긴다고 믿는다. 우리 마음속에 살고 있는 괴물과 귀신은 다름 아닌 ‘증오’와 ‘혐오’가 아닐까.

 

최근 일본을 두고 일촉즉발 증오와 혐오의 거대한 전선이 형성됐다. [사진=뉴시스]
최근 일본을 두고 일촉즉발 증오와 혐오의 거대한 전선이 형성됐다. [사진=뉴시스]

그 괴물과 귀신들이 스티븐 킹이 그려내는 온갖 끔찍하고 엽기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이다. 와이오밍 주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허허벌판의 작은 미미네 여관에 증오와 혐오라는 괴물과 귀신들을 마음속에 간직한 8명이 모인다. 그 결말은 역시 타란티노답게 엽기적인 피떡칠이다.

증오와 혐오의 전선이 미미네 여관에 모인 8명의 인종과 북군·남군 사이에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계층과 지역 사이, 남한과 북한 사이, 그리고 요즘에는 세대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까지 무시무시한 전선이 형성된다.

미미네 여관만큼이나 좁은 나라에 모여 살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 증오와 혐오의 전선이 어지럽다. 최근에는 일본을 두고 일촉즉발의 증오와 혐오의 거대한 전선이 새롭다.

혹여 우리 사회의 증오와 혐오가 미미네 여관의 피떡칠과 같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질식할 듯한 증오와 혐오에 치를 떨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안타까운 호소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사랑만이 증오를 몰아낼 수 있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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