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리스크 ‘실적’ 갉아먹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내 원양선사는 현대상선과 SM상선만 남았다. SM상선은 설립한 지 이제 2년여가 지났고, 현대상선은 8년 연속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다. 2020년 하반기 현대상선이 흑자전환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적자가 길어지는 건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현대상선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찾아봤다. 

2020년 하반기엔 현대상선이 흑자전환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사진=현대상선 제공]
2020년 하반기엔 현대상선이 흑자전환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사진=현대상선 제공]

현대상선이 올 2분기까지 17분기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연간 실적으로 따지면 2011년 이후 8년 연속 적자다. 적자폭도 커졌다. 현대상선의 올 2분기 영업손실은 1129억원. 지난해 2분기 실적과 비교하면 손실 규모가 869억원 줄었지만, 올 1분기에 비해선 다시 72억원가량 늘었다.

현대상선이 좀처럼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잇따른 글로벌 이슈로 컨테이너 시황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중동항로 화물이 급감했고,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미국과 아시아를 오가는 물동량이 타격을 입었다.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현대상선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현대상선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직접 화물을 실어 나르진 않는다. 하지만 국내 제조기업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시장이 위축되면,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화물에도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국내 해운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살아날 만하면 악재가 터진다”면서 “대외 이슈들이 해운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를 얼마나 위축시키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대상선이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는 둘째 이유는 규모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데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타격을 입은 해운업은 ‘속도의 경쟁’에서 ‘규모의 경쟁’ 체제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물동량이 줄고 운임이 떨어지자,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살길을 모색한 거다.

 

이는 큰 배를 보유하지 못한 현대상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유럽노선에선 이 문제가 더 두드러진다. 이 노선엔 1만5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2만TEU급 이상의 대형선들이 주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컨테이너선 중 가장 큰 사이즈는 1만3100TEU다. 

외부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내부 리스크도 숱하다. 가장 큰 문제는 비싼 용선료다. 글로벌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전체 선복량(화물적재공간) 38만6892TEU 가운데 68.3%인 27만8846 TEU가 ‘빌린 배’다. 세계 컨테이너선사 순위 10위 안에 있는 기업 중 현대상선(9위)보다 용선(빌린 배) 비중이 높은 건 8위의 양밍(70.6%)밖에 없다. 

문제는 현대상선은 용선료가 한창 높았던 호황기에 배를 빌려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앞으로 갚아야 할 용선료는 2조여원에 달한다(2019년 상반기 기준).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선사들에 비해 원가경쟁력이 낮은 현대상선이 이익을 내기가 더 어려운 이유다.

이런 리스크 탓에 현대상선이 당장 흑자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드물다. 대다수 전문가는 현대상선의 흑자전환 시기를 2020년 하반기 이후로 전망하고 있다. 엄기두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도 “큰 대외 변수만 없다면 2020년 하반기에는 영업이익 흑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상선의 흑자전환 시기를 2020년 하반기로 꼽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 세 리스크 중 두가지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우선 2020년 4월부터 2만3000TEU 컨테이너선 12척이 차례로 인도된다. 2021년엔 1만5000TEU 컨테이너선 8척을 받는다. 


현대상선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배들의 단위당 원가는 현재 글로벌 선사들이 운영하는 어떤 배들보다 싸다. 원가경쟁력을 앞세운 글로벌 선사들의 물량 공세에 맞설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2020년부터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의 정회원이 된다는 것도 기대 요인이다. 해운동맹과 선복을 공유하면 더 많은 노선에 배를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진다는 건데, 이는 화주 영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현대상선의 설명에 따르면 비싼 용선료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2020년 하반기께부턴 일부 선박을 반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용선 계약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선시킬 수 있는 조건의 선박이 생긴다”면서 “비싼 용선료를 내고 있는 건 가급적 바로 반선시키고, 용선료가 낮은 배로 대체하면 고비용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니다. 대외 변수라는 리스크가 남아있다. 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 이란 경제제재 등 글로벌 경기를 흔드는 이슈는 여전하다. 원가경쟁력을 높이고, 포트폴리오를 강화해도 시황이 회복되지 않으면 이익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무리스크도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다. 용선료 외에도 나갈 돈이 많다. 현대상선이 비싼 용선료를 내고 있는 선박들을 반선시킨다고 치자. 현재 현대상선의 리스부채는 총 4조8920억원이다. 2조원가량의 용선료를 전부 제외해도 3조원여의 부채가 남는다. 4532억원에 이르는 차입금과 1조원가량의 사채도 있다. 

언급했던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면서 부채가 더 불었다. 현대상선이 많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부채를 갚는 데만 허덕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업계 안팎에서 2020년 하반기를 주목하고 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업계에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지금보다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겠냐”며 기대를 드러냈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와 리스크도 많다. 2020년 하반기 현대상선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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