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째 주요 이슈 삼킨 ‘조국 블랙홀’ 

여야 정치권이 ‘조국 난타전’에만 몰두하고 있다. ‘제발 정치가 경제까지 오염시켜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게 추석 민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사진=연합뉴스]
여야 정치권이 ‘조국 난타전’에만 몰두하고 있다. ‘제발 정치가 경제까지 오염시켜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게 추석 민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사진=연합뉴스]

8ㆍ9 개각 이후 대한민국은 한달째 ‘조국 블랙홀’에 빠져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관련 보도가 다른 현안과 이슈들을 덮었다. 언론은 연일 조국 후보자 사태 관련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조국 후보자 지명 이후 한달 동안 쏟아진 관련 기사 건수가 130만건을 넘어섰다는 통계까지 나왔을 정도다. 

6일 ‘지각 청문회’가 열리기까지 여야 정치권이 보인 행태는 국민을 절망시켰다. 자유한국당은 조 후보자에 대해 숱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증인 선정 문제로 예정된 청문회를 파행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시종일관 조 후보자 감싸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후보자가 ‘셀프 청문회’를, 야당이 반박 기자간담회를 각각 진행하는 희극이 연출됐다. 

당리당략 이전투구, 정치혐오 부채질 

국회가 국민에게 위임받은 검증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이 후보자의 딸이 다닌 대학들에서 입시 및 장학금 수혜 관련 의혹이 불거졌다. 대학생들이 성명과 함께 촛불집회를 했다. 여권 유력인사들이 후보자 딸이 받았다는 표창장과 관련된 대학 총장에 전화해 구설에 올랐다. 일부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나섰고, 현직 검사가 후보자 사퇴를 요구했다. 급기야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 검찰이 ‘수사 개입’ 논란으로 옥신각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이전투구는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채질하거나 대통령의 국정수행 및 정당별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여야 간 극심한 정쟁과 대통령의 리더십 결여로 인한 정치 불안정은 경제의 불확실성도 증대시킨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더욱 꼬이게 만들고, 기업의 투자심리와 가계의 소비심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한달째 이어진 ‘조국 블랙홀’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간 경제전쟁 이슈를 집어삼켰다. 통계청이 지난해 출산율을 0.98명으로 확정 발표하면서 ‘세계 유일 0명대 저출산국’으로 기록됐는데도 정부 정책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선 역대급 내년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왔는데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부족해 적자 보전용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은 정치가 국민의 삶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권 행태를 걱정하는 특이한 나라가 됐다. 국민이 자기 손으로 뽑은 대리인들, 국회의원과 이들이 모인 국회와 정당의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나면 주요 자리에 코드에 맞는 인물을 앉히는 등 자기편 챙기기에 바쁘다.

국민은 늦더위와 가을장마가 몰아닥친 8월 초부터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둔 9월 초, 한달여 정치권이 뭘 했는지 낱낱이 기억한다. 사람들이 종이신문이나 잡지, 지상파 TV를 덜 눈여겨본다지만, 디지털화한 정보통신기술(ICT)은 정치권의 행적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이 기간 생업에 종사하는 보통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면서 경제심리에 얼마나 큰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행여 일간ㆍ주간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나 정당 지지율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안도해선 안 된다. 촛불혁명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과 거꾸로 가고 있음에 따른 20대 청년들과 학부모들의 낙담을 어찌 치유할 것인지 고민해야 마땅하다. 

늦었지만 한가위 명절 이전에 법이 정한 국민과 국회의 권리인 장관 후보자 청문회 절차가 진행돼 그나마 다행이다. 조 후보자는 전문성 면에선 자질을 갖췄다고 볼 수 있지만, 도덕성 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인 표현대로 이미 만신창이 처지다. 장관에 임명된다고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 취임사 되새겨봐야 

이제 임면권자의 결단만 남았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할 것이다. 청문보고서 없이도 조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할지는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많은 국민이 기억하는 취임사의 그 구절-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을 되새기길 바란다. 추석 민심은 청와대 및 정치권에 ‘제발 정치가 경제까지 오염시켜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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