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상품권 무엇이 문제인가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목적을 갖고 발행됐다. 2009년 첫 발행 이후 판매액 규모는 100억원에서 1조4000억원대로 143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이 전통시장을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지는 의문이다. 명절만 되면 강매 의혹, 깡 논란 등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온누리상품권에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온누리상품권의 고질병을 취재했다.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로 도입된 온누리상품권이 제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로 도입된 온누리상품권이 제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현금으로 구매하면 50만원까지 5% 할인을 적용받을 수 있다. 지난 설에는 없어서 못 팔았지만 이번 추석에는 물량에 여유가 있다. 아마 10% 할인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은행 직원이 건넨 말이다. 이날 영등포구에 있는 온누리상품권 판매 금융회사 7곳을 돌아본 결과, 상품권을 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올해 설엔 새벽부터 줄을 서도 구하기 힘들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2009년 7월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온누리상품권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2009년 104억원에 불과했던 판매액은 지난해 1조4916억원으로 143배가 됐다. 올해(7월 기준) 판매액은 1조295억원에 달한다.

회수율도 높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은 2009년 이후 올해 7월까지 7조870억원이 판매됐다. 회수된 상품권은 6조8554억원으로 회수율은 96.73%를 기록했다. 판매량과 회수율만 놓고 보면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이 가파른 성장세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상품권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절마다 들려오는 상품권 강매 논란이다. 상품권 판매를 위해 자치단체·기업·유관기관·기업 등에 온누리상품권을 떠넘기고 있다는 거다. 올 1월에는 공무원에게 온누리상품권 강매를 막아 달라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했다.

사실 강매 논란이 일 만도 하다.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 평가항목(상생·협력 및 지역발전) 중 온누리상품권에 할당된 점수(계량적)는 0.3~0.5점이다.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 평가항목의 계량적 총점이 3점이란 걸 감안하면 꽤 높은 비중이다. 온누리 상품권이 강매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 참고: 상생 협력 및 지역발전 평가항목의 점수는 총 5점이다. 계량적 총점은 3점, 비계량적 총점은 2점이다. 온누리상품권은 계량적 평가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깡’이다. 할인가격으로 구매한 뒤 전통시장에서 사용하지 않고 현금화하는 건 온누리상품권의 고질병이다. 일반적으로 설이나 명절 직후에 기승을 부린다. 할인율이 평소 5%(1인당 30만원 한도 현금구매 시)인 상품권을 명절엔 10%(1인당 50만원 한도 현금 구매 시)나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더구나 ‘깡’의 방법도 어렵지 않다. 50만원어치 상품권을 10% 할인된 45만원에 구입한 뒤 상품권 판매소에 46만을 받고 되팔면 끝이다. 판매소는 이 상품권에 1만~2만원의 마진을 붙여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에 팔고, 가맹점은 이를 액면가인 50만원으로 환전해 1만~2만원의 차익을 남긴다. 싸게 구입한 온누리상품권을 사고 되팔아 2~4%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현금을 받고 되파는 것도 쉽다. 인터넷이나 백화점 근처의 상품권 판매소를 이용하면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 상품권 깡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온누리상품권에 혈세가 투입되고 있어서다. 할인금액을 모두 혈세로 보전하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 발행 비용은 물론 금융회사에 줘야 하는 판매·회수 수수료까지 발생한다.

끊이지 않는 강매 논란

상황이 이렇다보니, 온누리상품의 혜택이 전통시장 상인에게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통시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결제수단별 매출에서 온누리상품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 교수는 “온누리상품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막대한 혈세를 투입했지만 전통시장이 살아났는지는 의문”이라며 “사용처도 전통시장보다는 일반 가맹점이 더 많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명절마다 강매·상품권 깡 등의 논란을 일으키는 데다 효과도 미미하다. 상품권 유통에 쓰이는 혈세로 전통시장을 직접 지원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먼산 불구경만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부정유통으로 적발되면 가맹취소와 함께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부정유통 신고 포상금을 최대 100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대규모 거래가 아닌 이상 상품권 깡을 적발하긴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권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매출 자료 없이 환전할 수 있는 상품권의 한도를 월 10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낮추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상인들의 반대에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매출 증빙 없이 환전된 상품권이 어디서 흘러와 어떻게 사용됐는지 파악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상품권 깡의 규모는 어느정도 감소하겠지만 근절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현금처럼 오가는 상품권 판매소와 가맹점의 거래를 밝히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일 출시한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을 활성화해 부정 유통을 막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중기벤처부 관계자는 “모바일 상품권은 기명식으로 거래돼 유통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며 “불법유통 근절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바일 상품권이 온누리상품권의 주 소비층인 중장년층에게 유효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전통시장에서 모바일을 활용한 결제가 원활하게 이뤄질지도 장담할 수 없다.


사는 것보다 쉬운 깡 절차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온누리상품권 깡을 막으려면 처벌 강화, 사용기간 설정 등의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상품권 불법유통이 결국 전통시장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할인정책에만 의존해서는 온누리상품권이 전통시장 활성화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할인제도가 아니더라고 상품권이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