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양극화 벌어지나

통계의 힘은 세다. 수많은 숫자 중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와도 그럴 듯한 분석이 된다.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을 옹호하는 쪽이나 비판하는 쪽도 그렇다. 같은 숫자에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선 “유지하라” 혹은 “전환하라”고 외치는 식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지표를 두고도 말이 많다. 고용률·실업률·취업자 수 등 3대 고용지표가 큰폭으로 개선됐고, 정부는 이를 정책 성과로 자평했다. 수치상으론 얼어붙은 고용시장에 훈풍이 불어오는 듯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늘어난 취업자 수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자였고 ‘경제의 허리’인 30~40대 취업자 수는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재정을 풀어 노인층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용의 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런 갈등은 집권 3년차가 되도록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정책 효과가 엇나갔어도, 반대로 맞아떨어졌다 해도 삶은 팍팍할 따름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숫자에 등을 돌리고 눈을 감는다. 그사이 각각의 분석으로 서로를 헐뜯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도 통계를 봤다. 냉정하고 자세한 분석을 위해 7월 지표를 활용했다. 맥락에 따라 분석이 달라지는 문제에선 자유로울 수 없지만, 통계를 통해 누굴 옹호하거나 비난하겠다는 목표의식은 뺐다. 그러자, 완치가 어려운 한국경제의 고질병이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통계청의 2019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양극화가 개선됐다”며 칭찬을 늘어놓고, 다른 쪽에선 “소득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긍정평가를 하는 이들은 소득분배의 가늠자로 꼽히는 ‘팔마비율(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을 하위 40%의 점유율로 나눈 것)’을 예로 꼽는다. 올해 2분기 팔마비율은 1.34배로 지난해 2분기(1.35배)에 비해 소폭 개선됐다.

반대편에선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의 ‘소득절벽’을 꼬집는다. 1분위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68만1400원으로 2분위(141만73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전년 동기와 비교해서도 1.3%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가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친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게 반대편의 논리다.

핵심정책이 비판받자 정부도 입을 열었다. 기획재정부는 “분배지표는 지난 정권인 2016년부터 악화했다”면서 “고령화ㆍ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한국경제에선 1분위 소득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통계로 잡힌 같은 숫자를 두고 다투는 형국인데,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통계를 근거로 정부 정책을 판단하는데, 정반대의 해석이 얽혀있어서다. 과연 무엇이 사실일까. 우리네 소득이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경제의 고질병인 양극화는 완화되고 있는 걸까.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효과가 있긴 있는가.

같은 통계 두고 정반대 해석

더스쿠프(The SCOOP)는 이 질문의 답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구소득 통계를 새롭게 분석해봤다. 기준은 박근혜 정부 집권 직후(2013년 2분기) 대비 3년차(2015년 2분기)의 변화, 문재인 정부 집권 직후(2017년 2분기) 대비 3년차(2019년 2분기) 변화 두개다.

기준을 이렇게 정한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집권 당시와 비교해 지표가 얼마나 완화ㆍ악화됐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집권 3년차’는 정부의 정책 역량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다. 다만 외적 변수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4년 전 경제상황과 지금이 크게 다르다면 비교의 의미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시계추를 2015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S)’라는 재앙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었다. ‘북핵 리스크’ ‘중국증시 폭락’ ‘역대 최저 강수량’ 등의 변수도 체감경기를 악화시켰다. 2019년 한국경제 역시 미중 무역전쟁 등 숱한 변수에 휩싸여 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ㆍ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제조 생태계가 위험에 처했고,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업황도 밝지 않다.

양극화 지표 중 하나인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0배로 치솟았다.[사진=뉴시스]
양극화 지표 중 하나인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0배로 치솟았다.[사진=뉴시스]

세계경제 성장률 역시 큰 차이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2015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1%였는데, 올해 성장률 전망은 3.3% 수준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6%(2015년), 2.3%(2019년) 유럽 역시 1.5%(2015년), 1.3%(2019년)로 엇비슷하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시기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시기보다 “경제 상황이 월등히 좋았다, 혹은 나빴다”고 판단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자, 이제 통계를 보자. 두 정부의 정책효과는 집권 3년차에 어떻게 발휘됐을까.

■먹고살 만해졌나요? = 표면적으론 이전보단 먹고 살만해졌다. 전체 가구 소득증가율에서 문재인 정부가 앞섰다. 문재인 정부 2년간 8.2%가 늘었고, 박근혜 정부에선 5.7% 증가했다. 소득증가율에 기여한 건 기초연금ㆍ근로장려금 등이 포함된 이전소득이었다. 같은 기간 무려 32.0% 증가했는데, 박근혜 정부의 증가율은 15.1%에 불과했다.

이는 정부의 중요한 재정정책 역할 중 하나인 ‘소득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방증이다. 사회 안전망 시스템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에서 이전소득 수준을 끌어올린 건 긍정적인 성과다. 하지만 소득에서 세금ㆍ보험료 등을 빼고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의 증가율은 박근혜 정부(6.0%)가 문재인 정부(4.1%)를 앞섰다. 국민건강보험ㆍ국민연금 보험료 등 사회복지, 이자비용을 비롯한 비소비지출의 증가폭이 소득 증가분을 앞지른 결과다.

전체 가구의 비소비지출은 문재인 정부 들어 2년간 26.1%나 늘었다. 같은 기간 박근혜 정부의 비소비지출 증가율은 4.4%에 불과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득은 늘었을지 몰라도 ‘쓸 돈’은 줄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 통계 전문가는 “비소비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에는 대출이자 증가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난 정권에서 가계대출 규모를 워낙 키워놓은 데다 최근에도 소득 대비 대출 증가세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 통했나요? =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 강화로 저소득층 소득을 높여 ‘소비 증가→경제 성장→분배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거다. 정책 효과는 어땠을까. 다행히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 증가’란 첫 단추는 잘 끼웠다. 2년간 1분위 근로자가구의 근로소득은 8.3%나 늘었다. 박근혜 정부 증가율(6.0%)을 웃돌았다.

문재인 정부의 전체 1~5분위 가구 근로소득 증가율도 10.1%로, 박근혜 정부(5.9%)보다 높았다. 최저임금 상승이 근로소득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만큼, 정책 효과를 ‘제로’로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효과를 두고는 이견이 생긴다. 박근혜 정부가 1분위 가계소득을 15.1% 끌어올리는 동안, 문재인 정부의 1분위 가계소득은 -7.6%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1분위 가처분소득 역시 문재인 정부 2년간 감소율이 10.7%나 됐는데, 박근혜 정부 땐 20.1%로 껑충 뛰었다.

쪼그라든 가처분소득

근로소득이 늘었는데 왜 최하위계층의 가계소득은 후퇴했을까. 해답은 ‘근로자외 가구’에 있다. 여기엔 자영업자 가구와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무직가구 등이 포함된다. 2019년 2분기 1분위 가구 중 근로자외 가구의 비중은 70.2%나 됐다. 2ㆍ3분위에서 탈락한 자영업자 가구가 1분위 가구로 편입된 영향이다.

문제는 이들의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는 점이다. 1분위 근로자외 가구의 소득은 박근혜 정부 3년차 때 32.2% 증가했지만, 문재인 정부 3년차 땐 16.9% 감소했다. 저소득층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17년 2분기 대비 2019년 2분기 2ㆍ3분위의 근로자외 가구 소득도 각각 10.9%, 1.1%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 땐 2ㆍ3분위 근로자외 가구의 소득이 10.8%, 4.9%로 늘었는 데도 말이다. 이런 숫자들은 생계형 영세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소득증진 없이 임금근로자의 근로소득만 끌어올려선 ‘전체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에 방점이 찍힌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던 이유다.

가령, 자영업 가구의 소득 수준은 임금근로 가구에 견줘서도 점차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2015년 2분기의 근로자외 가구의 소득은 근로자 가구 소득의 78.6% 수준이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72.2%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소득 하위 분위로 갈수록 자영업과 임금근로 가구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 수치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의 영향이다”고 단정하는 건 오류다. 과당경쟁 상황에 만성화된 내수부진, 대기업 골목상권 진출 등으로 자영업계 위기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건, 최근 들어 그 위기의 수준이 심각해졌다는 거다.

■양극화 정말 완화됐습니까? = 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눠 분배 정도를 표현하는 ‘소득 5분위 배율’은 2019년 2분기 5.30배다. 박근혜 정권 집권 3년차인 2015년 2분기엔 4.19배에 불과했다. 적게 버는 사람과 많이 버는 사람의 격차가 과거엔 4배, 지금은 5배가 넘게 벌어졌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 양극화가 심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최하위 가구의 소득을 끌어올리지 못한 데다, 상위 20%의 소득 증가폭을 낮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간 5분위 가구의 소득은 13.8% 늘었다. 돈이 돈을 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닌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땐 5.2% 증가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5분위 가구의 가처분소득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9.4%, 박근혜 정부에선 5.8% 증가율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지금이 고소득층에겐 더 먹고살 만한 시대란 얘기다.

박근혜 정부 양극화 해소했을까

이를 두고 한편에선 문재인 정부의 분배정책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쏴붙인다. 차라리 그럴 거면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이윤주도 성장을 펴자는 주장도 나온다. 낙수효과를 통해 경제 밑단을 따뜻하게 만들자는 거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모순이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이윤주도 성장 전략은 신통치 않은 성적표만 남겼다.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방향을 바꾸라는 건 합리적인 지적이 아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부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특정 시점의 한국경제가 임금주도인가, 이윤주도인가를 정확히 판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성장은 통화정책, 재정정책, 증권시장 활황, 환율 변화, 외국의 성장률 등과 같은 수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득 5분위 배율’이 나빠진 이유가 반드시 정책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구조적인 변화도 적용해봐야 한다.

자! 통계를 다시 들여다보자.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 동안 모두 ‘증가세’를 보인 통계가 있다. 가구주의 평균연령이다. 두 정부 모두 1~5분위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변화가 더 극적이다. 가구주 평균 연령이 53.41세로 3.50세가 늘었다. 박근혜 정부의 증가폭은 1.8세였다.

연령별로 쪼개서 살펴보자. 급격한 변화를 보인 층이 있었는데, 바로 ‘경제 허리’인 30~40대 가구주다. 3040 가구가 전체 가구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분기 53.02%에서 2019년 43.55%로 9.47%포인트나 줄었다. 한창 경제 활동을 펼쳐야 할 연령대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2017년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00년 고령화사회(7% 이상)에 들어간 지 17년 만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이런 인구구조 변화를 통계와 연결해서 해석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송민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번 정부 들어 취업자 수 증감이 악화된 걸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큰 폭의 감소를 기록한 40대 취업자 수 증감지표가 고용 부진의 근거로 인용됐다. 하지만 취업자 수 증감은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 가령 해가 바뀌면서 49세였던 연령층이 50대가 되면 40대 취업자를 집계할 때 제외되는 식이다. 경제활동인구 규모가 늘던 과거엔 취업자 수 증감이 유효한 통계였지만, 지금은 고용상황을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삼기 어렵다.”

인구효과 소득통계 만나면…

벌어지는 소득격차 역시 인구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출산ㆍ고령화 탓에 발생하는 소득 감소분이 상당해서다. 실제로 1분위 가구의 평균연령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2015년 2분기 1분위 가구주 평균연령은 59.46세로 50대에 걸쳐 있었는데, 올해는 63.84세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노년층에 접어들수록 경제활동 역량이 낮아지는 만큼, 1분위 전체소득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득지표 악화가 소득주도 성장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건 잘못된 정치적 프레임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각종 대내외 리스크에 인구구조의 변화까지 고려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를 두고 “이전 정부 때부터 그랬다” “정부 노력으로 더 벌어질 격차를 줄였다”고만 설명하는 건 안일한 태도다. 무엇보다 숫자를 기계적으로 다뤄선 정책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정확한 통계를 추구하되, 숫자를 과신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보고 싶은 통계만 보는 것도 곤란하다. 이제는 변화를 이해하고 정확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는 우리 경제 성장의 중요한 변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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