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하위층부터 얼어붙어
정부 정책 탓으로 돌리긴 어려워
인구, 고령화 등 사회구조 변화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때

문재인 정부의 소득 분배지표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한편에선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완화됐다고 반박한다. 같은 숫자를 놓고 서로 다른 기준으로 해석한 결과다. 그럼 진영논리를 걷어내고 숫자만 냉정히 놓고 보면 어떨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지난 10년간의 1분위 가구 소득지표를 살펴봤다. 양극화의 골은 깊어졌지만 정책 탓만 하긴 어려웠다.

1분위 가구주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구조의 변화에 맞춰 정책의 틀도 바꿔나가야 한다.[사진=연합뉴스]
1분위 가구주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구조의 변화에 맞춰 정책의 틀도 바꿔나가야 한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소득 양극화의 해소다. 경제 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겠다는 ‘소득주의 성장론’에는 이런 의지가 담겨있다. 이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현안이기도 하다.

대선 공약에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목소리를 담았고, 여기에 동의한 서민들은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국민들이 느끼는 양극화의 심각성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성장주도 정책을 폈다가 서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이전 정부에 염증을 느꼈던 국민들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8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보고서에 이목이 쏠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담긴 통계들이 양극화의 수준을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먼저 보고서의 내용을 훑어보자. 

여기에 담긴 핵심 통계는 1분위(소득수준 최하위 20%)와 5분위(소득수준 최상위 20%) 가구의 소득이다. 두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졌으면 양극화 심화, 좁혀졌으면 완화란 의미다. 이견이 없을 만큼 간단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간단한 통계에서도 양 진영의 주장은 극단으로 갈리고 있어서다. 

한편에선 이 통계를 근거삼아 “정부의 양극화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유를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올해 2분기 5분위 가구의 소득(이하 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9만원가량 늘어났다. 반면 1분위 가구의 소득은 같은 기간 562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1분위에 비해 5분위 소득이 더 많이 늘었으니, 격차가 벌어졌다는 거다. 

하지만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성장주도특별위)의 주장은 반대다. 통계가 양극화의 완화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2분기 10.3%에서 올해 2분기 3.2%로 7.1%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1분위 가구는 같은 기간 -7.6%에서 0.0%로 7.6%포인트 개선됐다.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이 한풀 꺾이고, 1분위 가구의 마이너스 증가율이 플러스로 돌아섰으니 양극화가 완화됐다는 논리다. 쉽게 말하면,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줄었다는 얘기다. 두 주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서로 다른 기준을 두고 각자의 입맛에 맞춰 해석하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처럼 갑론을박만 거듭해선 한국경제에 닥친 문제를 냉정하게 살필 수 없다는 점이다. 진영논리를 내려놓고 숫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문제점과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지난 10년간(2009년 2분기~2019년 2분기)의 1분위와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과 소득5분위 배율을 길게 펼쳐본 것도 양극화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각 연도 2분기 소득을 기준으로 삼았다. 증가율은 기저효과에 따른 왜곡을 없애기 위해 기준연도를 2009년 2분기로 통일했다.[※참고 : 소득5분위 배율은 5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을 1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소득분배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배수가 높을수록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결과부터 말하면 2019년 소득 양극화는 더 심화했다. 2009년 6.4배였던 소득5분위 배율은 올해 7.1배까지 높아졌다. 이는 소득 증가율 추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009년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던 1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이 꺾인 건 2016년부터다. 기획재정부의 주장처럼 “분배지표가 악화하기 시작한 건 박근혜 정부 때”인 셈이다. 2015년 48.6%였던 소득 증가율은 2016년 39.6%로 줄었고, 올해는 32.5%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이전 정부 탓만 하긴 어렵다. 양극화 수준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줄곧 1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이 5분위 가구보다 높았지만 이 구도가 뒤집힌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완만하게 상승하던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이 지난해 부쩍 높아진 탓이다. 2013~2017년 20%대에 머물러있던 5분위 가구의 소득 증가율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43.3%, 47.8%를 기록했다. 1분위 소득 증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2016년이지만 5분위와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진 건 지난해부터라는 얘기다.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증가율이 크게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로소득은 올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율(-3.8%)을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보다 더 적게 벌었다는 뜻이다. 사업소득은 올해 11.1%로 개선됐지만 지난해엔 -4.1%까지 떨어졌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의 빈자리는 이전소득이 메웠다. 문재인 정부가 막 들어선 2017년 이전소득 증가율은 72.4%에 그쳤지만 올해는 125.0%까지 치솟았다. 이를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줄어든 반면, 불로소득에 해당하는 이전소득이 늘어난 건 그만큼 1분위 가구의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라서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근로소득ㆍ사업소득의 감소와 이전소득의 증가, 이로 인한 소득 양극화 확대는 인구 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2009년 1분위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55.8세였지만, 올해는 63.8세로 부쩍 높아졌다.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문제가 지속되는 이상 이런 양상은 더욱 심해질 공산이 크다. 양극화 문제를 단순히 최저임금과 일자리 관련 대책으로만 국한해선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득 양극화 문제가 악화된 책임을 정부의 정책 탓으로만 돌릴 때가 아니다. 양극화의 심화 원인을 직전 정부의 문제로 떠넘겨서도 안 된다. 지금은 한국경제의 구조를 봐야 할 때다. 인구, 고령화 등을 냉정하게 분석해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진영논리는 한국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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