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용납 않는 분위기 돼야

6만명. 학교폭력 피해학생 숫자다(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체 학생의 1.6%에 달하는 인원으로 1년 전 조사 때보다 1만명이나 증가했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매일 165명의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각종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학교폭력은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다. 피해학생 가족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왜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을까.

학교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학교폭력 사건들이 보도된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가족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소식도 심심치 않게 접한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각종 제도가 마련되지만, 학교폭력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6만명의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 결과 5만명보다 1만명이나 증가했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매일 약 165명의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던 셈이다. 

인터뷰나 강연,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왜 학교폭력이 끊이질 않느냐’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학교폭력을 애들 싸움으로 치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을 보자. 가해자 2명, 가담자 3명 등 5명은 2개월 전 피해자에게 영화를 보자며 거짓으로 유인해 불러냈다. 그리곤 알루미늄 사다리, 벽돌, 소주병 등으로 피해자를 폭행하고 담뱃불로 등을 지지기도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 남자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가해자 중 1명은 피 냄새가 좋다며 남자를 부를테니 자신이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하라고 협박했다.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더욱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또 자신들이 때려 피투성이가 된 피해자의 모습을 촬영해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이 공분을 산 건 경찰의 안일한 대응 때문이었다. 담당 경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있는 건 아니다. ‘태도가 불량하다’ ‘싸가지가 없다‘ 이런 사소한(웃음) 애들끼리 있을 수 있는 그런 이유다”면서 애들 싸움으로 치부해버렸다. 학교폭력으로부터 피해학생을 보호해야 할 해당 경찰이 이럴진대,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과 더불어 지난해 발생한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처럼 대중의 분노케 한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폭력이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변 학생들이나, 어른들 그리고 학교에서 이미 폭력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누구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건 피해학생이 주변에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해학생의 보복이 두려운 탓도 있지만, 애들 싸움으로 치부하는 어른들의 태도도 문제다. 어른들에게 사실을 터놔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피해학생을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결국 학교폭력은 반복된다. 


경찰의 안일함에 ‘공분’ 

필자는 학교폭력 전문변호사다. 이혼 전문변호사,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라는 말들 들어봤을 것이다. 의사 중에 정형외과, 정신과, 산부인과 등 전공의가 있듯 변호사들에게도 전문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전문 분야 등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변호사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의뢰인이 변호사로부터 법률 서비스를 받고자 할 때 어느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문 분야는 60여개로 세분화돼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학교폭력’은 변호사의 전문 분야로 마련되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2월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의 학교폭력 전문 분야 신설을 건의했고, 협회 측은 이를 수용했다. 지난 8월 필자가 국내 1호 학교폭력 전문변호사로 등록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은 담당 경찰의 안일한 태도로 공분을 샀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은 담당 경찰의 안일한 태도로 공분을 샀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여전히 학교폭력 변호사라고 하면 ‘학교폭력에 변호사?’라며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때로는 ‘애들 싸움에 무슨 변호사냐’며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폭력 전문 분야를 신설하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폭력이 전문 분야로 인정돼야 법적 제도와 조력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라는 무게감을 갖게 되고, 그래야 애들 싸움으로 가벼이 치부되지 않을 거란 기대에서였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은 짐작보다 심각하다. 지나가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얼굴을 맞았거나,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이유 없이 나를 때린 사람, 집에 침입한 강도와 단 한순간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학생들은 학교폭력을 당하고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매일같이 가해학생들과 마주쳐야 한다. 학교폭력 당사자에겐 성인 범죄보다 더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목격자 돼 줘야…

10여년 전 발생한 연예인의 학교폭력 사건 혹은 저 먼 곳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기사 보도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우리 주변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은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학교폭력에 눈감으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공부에 방해되니까” “괜히 연루될 수 있으니까”…. 아이에게 학교폭력 방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셈이다.

학교폭력은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폭력이 만연한 학교에선 내 아이도 언제든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학교에서 서로가 목격자가 돼 주고, 학교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야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다. 흉포화하고 잔인한 학교폭력을 막으려면, 우리 어른들이 학교폭력에 민감해져야 한다. 내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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