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디플레 진단
일시적 현상 vs 전조 뚜렷
한국경제 어디로 가나

경제학자들은 저성장·저물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학자들은 저성장·저물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D의 공포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라는 주장과 디플레이션 초입이라는 우려다. 경제학자 5명 역시 엇갈린 진단을 내놨다. 다만,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선제적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인지 일본식 장기불황은 물론 경제위기를 걱정하는 의견도 나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경제학자 5인에게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물어봤다. 

“8월에는 지난해 폭염으로 농축수산물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기저효과와 최근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공급 측 요인의 물가 하방압력이 확대됐다. 연말에는 이런 효과가 사라지면서 (물가가) 빠르게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한국은행이 내놓은 진단이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하락한 건 일시적인 요인이라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의견도 비슷했다. KDI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수요 위축에 공급 측 기저효과가 더해져 0%까지 하락했다”며 “하지만 일시적인 요인이 소멸되는 연말 이후 0% 후반으로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진단하는 눈은 달랐다. 한은은 물가 하락이 광범위하지 않는다는 점과 소비자가 가격 하락 기대에 소비를 미루는 자기실현적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가 매우 낮음 단계에 있다는 것도 근거로 꼽았다. 올 1분기 기준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는 0.18(0.2점 미만이면 매우 낮음)을 기록했다.

반면, KDI는 현재 상황을 디플레이션으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가능성이 높아진 건 부정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국경제에 D의 공포가 드리우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신세돈 숙명여대(경제학) 명예교수는 “디플레이션이 되려면 마이너스 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돼야 한다”며 “지난해에 비해 채소가격이 많이 떨어지면서 8월 소비자물가상률이 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며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도 “경제의 흐름이 디플레이션으로 향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말을 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저물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도별 변동이 심한 농산물과 유가를 제외하면 0.9% 정도의 물가상승률이다. 최근 물가상승률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디플레이션 공포도 커진 것이다.”

반면, 디플레이션 초입에 이미 진입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올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지난해 9월·10월·11월·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각각 2.1%, 2.0%, 2.0%, 1.3%였다”며 “12월을 제외한 남은 기간의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물가의 원인은 수요에도 있다”며 “GDP 디플레이터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고 꼬집었다. 

저물가가 계속될 경우,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저물가가 계속될 경우,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이나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산업경영학과) 교수는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 가계는 소비를 줄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며 “소비감소와 저물가, 경기둔화 등이 겹치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실제로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소비를 줄이는 가계가 늘어났다”면서 “이런 요인이 디플레이션의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일본식 장기불황보다 경제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산업구조가 소수 대기업과 산업에 집중돼 있어 위험의 덫에 걸리기 쉽다는 논리에서다. “2010년부터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저물가·저성장이 계속되면 2~3년 내 경기침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디플레이션이든 장기불황이든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하루빨리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첫째 해결책은 재정을 푸는 것이다. 통화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적극적으로 펼치기엔 부담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공통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국내 통화정책의 방향성이 미국을 따르고 있는데다, 자본유출 우려 등의 영향으로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추는 과감한 정책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재정정책의 방향이다. 전문가들은 ‘소득 이전’이 아닌 ‘시장 활성화’에 재정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영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소득 이전 정책으로는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소비든 투자든 실물 쪽으로 자금이 흘러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 복지에 쓰고 있다”며 “정부지출을 하더라도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세돈 교수는 “정부가 돈을 투입해야 할 부분은 자영업·중소기업 등 경쟁력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며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둘째 해결책은 산업 구조조정이다. 김상봉 교수의 말이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 경기침체를 겪었다. 미국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쓰지 않고 산업 구조조정만 했다. 반대로 일본은 구조조정은 뒤로 밀어놓은 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경기침체를 벗어나려고 했다. 결과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일본은 20년 넘게 침체에 빠져있다. 더 늦기 전에 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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