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혁신 아직은 먼 이야기
스마트공장 이해 못하는 기업 숱해
착한 디플레이션 성립조건
유통혁신+제조혁신+공정경제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자 디플레이션의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반론도 있다. 일시적 물가하락에 불과하다는 건데, 개중엔 ‘유통혁신에 따른 착한 디플레이션’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회장(동덕여대 교수)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김익성 유통학회장은 “유통기업이 돈을 못 번다는 건 유통혁신이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사진=천막사진관]
김익성 유통학회장은 “유통기업이 돈을 못 번다는 건 유통혁신이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사진=천막사진관]

✚ 디플레이션(디플레) 우려를 어떻게 보나. 
“굉장히 다양한 대내외 변수들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한마디로 어떻게 다 정리하겠나. 다만 소비자물가지수나 소비심리 하락만으로 디플레 우려를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 디플레 우려가 과하다는 건가.
“우려가 과하다기보다는 숫자에 치우치면 현실이 안 보인다는 거다. 예컨대 소비자물가지수가 떨어져도 국민의 체감물가는 결코 낮지 않다. 디플레라는 용어도 적절한지 모르겠다.”

✚ 무슨 말인가. 
“디플레로 볼 만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건 사실이지만, 디플레로 볼 수 없는 상황들도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류비나 에너지비용, 농축수산물 물가는 하락했지만 여가생활 물가는 오르기도 했다. 또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구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소비가 줄어든 것 역시 사실이다. 디플레이션은 소비자물가만 낮아지는 게 아니라 제품 원가나 임금도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최저임금은 더 올랐다. 그게 적정수준이냐 아니냐는 논외다. 핵심은 디플레를 규정하는 조건들이 딱딱 안 맞아떨어진다는 거다. 그러니 분석도 의견도 제각각이다.”

✚ ‘착한 디플레’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단언하는 근거가 뭔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제조혁신을 따져보자. 원래 제품가격은 제조혁신이 있어야 내려간다. 그런데 제조혁신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컨대 ‘스마트공장’의 경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상당수의 기업들이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공장은 생산ㆍ제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전 공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공장 자동화(무인화)’로 오해하는 기업인들이 부지기수다. 정부도 공장 자동화 지원을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이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 것 같나. 이전 단계의 혁신조차 일어나지 않은 제조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혁신을 통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실제로 기업들은 제조혁신보다는 낮은 인건비를 좇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유통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값싼 제품을 수입한다. 제품가격이 낮아질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이 있다는 거다. 

유통공룡 적자인 이유 따져 봐야

✚ 다른 하나는 뭔가.
“유통혁신이 있었느냐다. 물론 유통혁신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일례로 TV를 보면서 제품을 주문하면 인공지능(AI)이 소비자의 패턴을 분석해 제안도 하는 세상 아닌가. 기술개발도 되고 있고, 결제방식도 바뀌고 있고, 소비자 편익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혁신에 따라 가격이 낮아진 건 아니다.”

✚ 그 이유는 뭔가.
“유통혁신으로 가격이 낮아졌다면 마진을 줄였다 하더라도 유통기업이 수익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상황을 보면 대표적인 유통기업들이 모조리 적자를 냈다. 독점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제 살 깎기’ 경쟁을 한다는 거다. 여기엔 시장점유율을 일정 비중 이상 확보하면 그때부터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어서 가능한 현상이다.” 

 

유통공룡으로 불리는 기업들이 모조리 적자를 내고 있다.[사진=뉴시스]
유통공룡으로 불리는 기업들이 모조리 적자를 내고 있다.[사진=뉴시스]

✚ 혁신을 통한 ‘착한 디플레’라고 하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한가. 
“기술혁신을 통해 제조혁신과 유통혁신이 뒷받침되고 경제력 집중을 막는 공정경제까지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착한 디플레’도 가능하다. 거듭 말하지만 착한 디플레라는 용어가 합당한지는 모르겠다.”

✚ 주제를 좀 넓혀 보자. 현재 한국 경제를 어떤 상황이라고 보는가.
“어느 한가지 논리로만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지금이 디플레냐 아니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오히려 저성장 기조 속에서 우리가 분석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둬서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 알면 무서울 게 없다. 모르니까 무서운 거다.”

✚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 어떻게 접근하는 게 맞다고 보나. 
“우선 한국 경제의 근간인 수출부터 보자. 우리 내부 상황과는 무관하게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다. 그들이 왜 무역분쟁을 하겠나. 내부의 경기부양 정책만으로 살아남으려니 힘들다는 방증이다. 다시 말해 글로벌 경기가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수출이 막히면 한국의 경기순환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내려갔다. 그렇다고 모든 물가가 하락한 것도 아니다. 항목별로 혹은 지역별로 격차가 매우 크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연령별 혹은 소득별로 차이가 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혁신은 잘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런 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를 봐야 한다.”

✚ 어떤 의미인가. 
“디플레라고 해서 뭘 하고, 디플레가 아니라고 해서 또 뭘 하고 그럴 상황이 아니다. 각각의 상황과 지역, 연령 등에 맞는 처방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잣대로 상황을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곳곳에서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다.” 

수출 정책 만들 컨트롤타워 필요

✚ 그럼 지금 필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각 부처별 혹은 지자체별로 경제를 보는 관점이 너무나 다르고, 정책도 다르다. 그러니 경제의 큰 그림을 잡기가 힘들다. 한국 경제의 근간이 수출에 있는 만큼 수출과 무역에 관한 정책을 상시적으로 만들고, 조율하고, 전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단순히 조직 하나를 더 만들자는 게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너무 고부가가치에만 연연하는데, 과거 설비들도 저개발 국가에선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너무 큰 시장만 기대하지 말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 또 필요한 게 있나. 
“있다. 컨트롤타워와는 별도로 각종 이슈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고, 다양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각각의 현안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다.”

✚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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